날마다 지나는 길에서 뜻밖의 모습을 만날 때가 있다.
만나는 그 순간의 감정으로 작품성 없는 사진을 찍곤 했다.
그 사진을 바라보며 그 사물에 내 생각을 주입하여 말을 걸기도 하고
또 다른 그 무엇과 연계하여 바라보면
사물들은 다정한 말로 내 친구가 되어주곤 하는 것이다.
토요일 늦은 오전,
참으로 오랜만에 오른 뒷산에서 난 그렇게 느닷없는 풍경을 만났고
그 풍경은 요즈음의 내 마음을 안다는 듯
조금은 슬픈 모습으로 다가왔다.
우리 뒷산 한 곳에
마치 분화구처럼 깊은 웅덩이가 제법 넓게 형성되어 있는 곳이 있는데
그곳에 커다란 오동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그 오동나무는 해마다 변함없이
봄이면 고개를 쳐들고 바라보아야 할 높은 가지에 꽃을 피워
울 어머니가 즐겨 사용하시던 분 냄새의 향기로 내 그리움을 자극하니
그곳을 지날 때면 코를 킁킁거리는 내 모습을 보았을 것이고,
여름 태풍철이면 바람에 휩쓸려 떨어진 넓은 초록 잎으로 오솔길을 뒤덮고
차마 발걸음을 내딛지 못하고 이리저리 애써 피하는 내 모습을 보았을 것이다.
늦가을이 되면 넓은 오동잎은 어느 시인의 말처럼
잘 구운 가자미처럼 노르스름한 잎으로 또 한 번 오솔길을 수 놓아주며
내 마음에 윤기를 더해주곤 했던 오동나무가
그만 딱 부러져 쓰러져 있는 것이다.
놀란 마음에 한참을 서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부러진 부분은 아주 날카롭게 각이 서 있었고
열매가 달린 가지 끝은 오솔길을 건너 옆 산등성에 넘어져 있었다.
울 어머니 생각이 났다.
울 어머니도 저렇게 마른 뼈 골절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셨는데…
자꾸 무언가가 울컥울컥 한다
며칠 전, 모든 의욕을 잃고
널브러진 내 마음을 일으키고자,
나를 부여잡고자,
무엇이라도 해 보고 싶은 마음으로
책 읽기를 선택하고
올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의 소설 한 권을 인터넷 주문을 하고
그 책 또한 다 읽은 터,
그런데 막연히 아무것도 모르고
다만 문학상 받은
작가의 책이라는 것에 선택한
‘아침 그리고 저녁’이라는 책은
우연하게도
삶과 죽음에 관한 내용이었다.
참 이상한 마음이 들었다.
150페이지 분량의 가벼운 책은
1, 2장으로 나누어 있었다.
1장은 주인공이
태어나는 순간의 이야기이고
2장은 주인공이
맞이하는 마지막 날의 이야기이다.
2장을 읽기 시작한 처음에는 나는 주인공이 죽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 읽어 내려가다
아, 주인공은 지금 영혼의 세계에 있구나! 하는 것을 아는 순간
마음이 꽉 조여 오는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작가의 문장은 특이했다.
마침표가 없었다. 다만 쉼표만 있을 뿐이었다
처음 나는 왜 문장에 마침표가 없을까?
번역 오류일까? 생각하면서
삶과 죽음이라는 경계선이 이토록 모호한 것이구나! 를
내 나름대로 느꼈는데
마지막 옮긴이의 말을 읽으며 더욱 공감했다.
작가의 문장은
똑같은 말을 되풀이하는 듯싶었는데(반복적인 삶의 형태처럼)
전혀 지루함을 모르고 읽었다
그렇게 읽기에 몰두할 수 있었음은 내가 모르는 그 무엇을
작가는 글로, 문장으로 알려주려는 의도가 숨어져 있었던 건 아닐까 혼자 생각했었는데
나는 이렇게 오솔길에서 만난 뜻밖의 모습에
내 마음속 이야기들과 연계해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하였다.
아침과 저녁의 변화는 둥근 지구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이다.
저 오동나무도 살아있을 때는 부드러운 둥근 곡선의 줄기였다.
우리 사람 역시 자궁 속에 있을 때부터 둥근 곳에서 자라왔다.
그에 느닷없이 만난 저 날카로움의 직선은 둥근 삶의 부드러움을 파괴하고 있는 것인가?
나와 사물과 책의 만남은 우연이 아니라
내 마음결 따라 바라본 일상이었다.
▼ 뒤늦게 우리 아파트 나무들도 단풍이 들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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