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가을을 반납하겠다는 나의 건방진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 주겠다는 듯
가을답지 않은 날씨를 보여주고 있던 가을! 이 갑자기 추워졌다.
달력상 가을의 마지막 달인 11월은
나로서는 가을 쓸쓸함의 극치를 보듬고 있는 달이기도 하다
인디언들은 11월을 ‘모두 다 사라진 것은 아닌 달’이라고’ 한다니
참으로 자연의 이치에 맞는 말이지 않는가!
그렇게 가을은 나에게도 모두 다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조금씩 보여주며
늦가을의 정취를 조금이나마 느껴보라 한다.
우리 집 관엽식물 콩고도
그렇게 또다시 한송이가 아닌 두 송이의 꽃봉오리를 올리며 내 마음편이 되어주고 있다.
꽃송이로 근 20여 일을 지내는 콩고이기에 느긋한 마음으로 꽃을 기다리는데
또 한송이를 올리며 세 송이를 한꺼번에 보여주며 내 낯을 환하게 해주고 있으니
그동안 내 모습이 어지간히 추레해 보였나 보다.
많은 꽃송이를 한꺼번에 올리느라 영양분을 손실하고 있었는지
커다란 잎 두 개가 누렇게 변색되면서 툭툭 떨어지고 있다
가엾은 마음에 영양제 주사를 꽂아주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내 일상에 게으름을 피우다 보니
고추장 담그는 시기를 지나쳤다
지난 토요일 아침 일찍부터 고추장을 담고 오후에 우리 지역의 청암산을 찾아갔다
금방이라도 비가 내릴 듯싶은 날씨였지만 억새가 보고 싶었다.
억새밭을 걸어 돌아 산으로 올랐다.
그리 높지 않은 산이지만 호수 둘레를 이루고 있는 산 능선을 걷다 보면
세 시간 정도 걸어야 하는 만만치 않은 길이기도 하다.
산길을 걷는데 소나무의 갈잎들이 큰 나뭇잎을 스치며 떨어지곤 하니
살아있는 그 무엇의 움직임 같은 소리가 고요를 흔들면서 가을 소리를 빚고 있다.
아, 정말 좋다.
단풍이 채 들기도 전에 잎을 내려놓는 나무들의 빈가지가 추워 보인다.
하지만 나무들은 잎들과 함께 겨울을 나기보다는 떨구어 내며 헤어짐을 선택한다.
그래야 봄의 희망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쉽지만 단호하게 잎을 떨구면서 겨울 동안 제 몸의 영양분을 지켜내고 있는 것이다.
준비하는 마음이다.
가을 산은 그래서 더 아름답다
예쁜 빛으로 치장하여 떠나보내는 나무의 속 깊은 마음을 바라보며
나도 준비하며 살아가는 마음을 세워 보아야겠다.
오랜만에 산길을 걸으며 가을 산의 예쁜 열매들의 모습을 만나고 보니
나도 부지런히 한 가지라도 더 결실을 맺고 싶다
고추장 담고 남은 엿기름과 메주가루가 있어 처음으로 막된장에 도전해 보았다
동안 부지런하신 블친님들의 솜씨를 흉내 내 보았는데
고추장과 섞어 쌈장을 만들어 먹어보니 처음해 본 솜씨로는 맛이 썩 괜찮았다.
무언가를 먹으며 살아가는 우리이다. 하니
음식 속에는 우리의 정서가 스며있을 뿐 아니라
조상님들의 지혜를 배울 수 있는 것이기에 잘하지는 못하지만 좋아한다.
내 솜씨로 버무린 고추장, 된장을 사진 찍어 동생한테 자랑했다.
뒤늦게 맞이한 가을 한 자락에서 오래된 미래를 만났다.
'단상(短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다가온 매 순간을 최선으로 살아갈 뿐인데~~ (39) | 2023.12.05 |
---|---|
아침 그리고 저녁 (41) | 2023.11.25 |
49일 만에 다시 어머니를 만나고 (0) | 2023.10.09 |
일상의 소소함 속에 (46) | 2023.09.15 |
만국기는 펄럭이는데 (0) | 2023.08.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