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49일 만에 다시 어머니를 만나고

물소리~~^ 2023. 10. 9. 23:25

 

어머니

어머니 돌아가신 후 49일 만에 어머니를 만나러 갔습니다.

 

어머니 만나러 가는 길은 언제나 마음이 따뜻해지곤 했는데

오늘도 역시 그러했습니다.

스치는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노랗게 익어가는 가을 들판은 차분하면서도 풍요로웠습니다.

 

길가의 코스모스들은 살짝 지나는 바람결에도

제 몸을 하늘거리며 내 지난 시절의 정감을 모두 알려주는 듯

다정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막 익어가기 시작한 벼들의 옆에 불쑥 나타난 듯 서 있는

뚱딴지의 농익은 노란 꽃이 너무 멋져 보입니다.

 

 

지나는 길을 일부러 국도를 타고 달렸어요

그 길을 따라나서면 아버지께서 마지막 근무를 하셨던 학교 곁을 지나게 되는데

그 학교는 이미 폐교가 되었다고 어머니는 몹시 서운해하셨지요.

곳곳에 어머니의 모습이 그려져 있네요.

웃는 모습도, 바삐 걷는 모습도요

 

그런데 어머니, 제가 위도에 다녀온 며칠 후 어머니 꿈을 꾸었었어요.

어머니는 그토록 정성을 다하셨던 절에 누워계셨습니다.

저는 그 머리맡에서 연거푸 큰절을 올리며

“어머니 아프지 말라고 했는데 왜 아프고 힘들어하셨느냐”며

어찌나 슬프게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 슬픔은 잠에서 깨어난 후에도 계속 흐느껴 울도록 깊었습니다.

 

그날 뒤, 저는 모든 일에 무기력한 마음이 되어버렸습니다.

제가 행하는 모든 행위의 의미가 없어져 버렸습니다.

자꾸만 꿈을 되새겨 보았습니다.

 

왜 어머니는 절에 누워 계셨을까?

 

생전에 제가 아침 문안 인사를 드리면서 일어나셨냐고 물으면

어느 땐 "아직 자빠져 있다" 라고 대답하시던 목소리가 자꾸 귀에 맴돌곤 하였지요

어쩌면 가장 편한 자세의 시간이실 거라는 믿음과 함께요

그렇게 어머니는 절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자빠져 계셨던 것이라고 억지 해석을 하면서도

이승의 그 무엇을 못 잊고 계시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의 나날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더욱 어머니를 위해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임해야겠다고 했어요.

어머니를 중심으로

우리 형제는 물론 사촌들까지도 또다시 다 함께 모였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특별한 날이었을까요.

어머니와 함께 절을 다니시던 신자분들이 대거 참석을 하셨더군요.

제가 잠깐 절 뒤쪽에 있는 화장실에 다녀오는데

그 귀퉁이 한쪽에 모여계시던 신도 복을 입은 보살님들 말소리가 들려왔어요.

 

"우리에게 흑산도 아가씨라는 노래도 가르쳐 주시고

나를 보리밥집이라고 불러주시던

참으로 다정하신 분이셨는데 이렇게 가셨구나 " 하는 이야기를 저는 들었어요.

 

모르는 척 저는 얼른 지나쳐 왔습니다.

그곳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맑은 물의 작은 계곡이 있었습니다.

그 계곡가에 구절초가 왜 그리도 예쁘게 피어 있는지…

 

그 작은 절 곳곳에는 어머니의 흔적이 쟁여 있었습니다.

 

 

어머니의 재가 시작되었습니다.

위패와 영정 사진이 재단 위에 올려져 있었어요

평소 절의 스님과 함께 또 다른 스님 두 분이

어머니의 극락왕생을 위해 의식을 치르는데 어느 쯤에서 바라춤 의식이 있었어요

장삼에 붉은 가사를 두른 스님 한 분의 바라춤이 시작되는데

그냥 눈물이 핑 돌면서 경건한 마음이 들었어요

중간중간 스님이 외우는 불경을 따라 앞에 놓인 불경 책을 더듬어 따라 읽어야 하는데

뜻도 모른 채 따라 했답니다.

스님들은 진심인데 제 마음은 건성이었어요.

저는 어머니 사진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어머니의 유품을 소각하기 위해 모두 소각장 앞으로 나갔답니다.

위패와 함께 어머니의 통장과 도장, 그리고 각종 서류,

늘 어머니 손에 들리던 작은 손가방과 한 번도 입지 않은 옷 등을 소각했어요.

 

생전에 어머니는 당신 죽으면 재 올려 달라고

천만 원을 절에 맡겨 놓으신 것을 뒤늦게 알았어요.

그래서인지 제법 격식이 갖추어진 의식이 되었는데

이는 모두 남아 있는 자손들을 위한 어머니 마음이라는 것을 알았지요.

 

2시간여 진행된 49재 의식을 마치고 이제 우리는 다시 돌아와야 했어요

우리는 다시 그곳에서 가까운 학교,

아버지 교장 승진 초임 근무지였던 학교를 찾았습니다.

학교는 예전 모습이 아닌 많이 변화된 모습이었지만

학교 운동장 가를 빙 둘러 서 있는 은행나무들은 여전했습니다.

아버지께서 근무하시던 시기에 심어 놓은 나무들이라고 어머니는 자랑스럽게 이야기하셨지요.

우리도 물론 뿌듯한 마음이었고요~

우리는 그곳에서 헤어져 각자의 차를 타고 각자 다른 방향으로 달렸답니다.

 

어머니~ 허허롭기 짝이 없는 마음이에요.

하지만 어머니 가셨다고 해서 모든 게 다 없어진 것은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우리의 마음 받아줄,

그래서 그리움을 해소할 수 있는 곳들이 곳곳에 있는 한

오래도록 함께 할 것입니다.

지금 느끼는 허허로움은 가을이 주는 허허로움일 것이니

마냥 허허롭기만 한 것이 아닌 줄 알겠습니다.

 

이제 어머니 부디 그곳에서 행복한 시간 누리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저는 내일부터 또 열심히 일을 하며 그렇게 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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