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산책을 하고 있는데 아파트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이는 내가 매일 그 시간대에 운동하는 것을 알기에 대뜸
지금 운동 중이냐고 묻는다. 그렇다고 하니
끝나고 집에 들어가기 전 잠깐 자기 집에 다녀가란다.
8시가 넘는 시간인데요? 했더니 괜찮단다.
집에 다다를 즈음 전화를 하니 그이는 벌써 내려와 있었는데
손에 커다란 검정비닐봉투를 들고 있다.
시골에 밭 조금 있어 심심풀이로 조금씩 채소를 가꾸고 있는데
상추가 많아서 주려고 그랬던 것이다.
얼마 전에는 완두콩을 주어서 잘 먹고 있는데…
집에 와 풀어 보니 상추는 물론 풋호박도, 치커리도, 쑥갓도, 아욱도 조금씩 있었다.
그중 제일 많은 것이 상추였다. 많은 상추를 보니 조금 걱정이 된다.
남편은 상추를 아주 좋아하지만 나는 별로이기 때문이다.
상추를 야채박스에 넣기 위해 신문지에 잘 싸고 있노라니 한 생각이 스친다
나로서는 절대 잊히지 않는, 상추에 얽힌 나만의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상추쌈을 좋아하지 않게 된 이유이기도 한 그 사건을…
그 시절 우리는 아버지 근무지 따라
주로 학교관사 생활을 했기에 언제나 학교와는 가까운 거리에 살았다.
점심시간에도 다른 아이들처럼 도시락을 가지고 다니지 않고
잠깐 집에 와서 밥을 먹고 나가곤 하였다.
초여름인 듯하다. 그날도 어느 때와 다름없이 점심시간에
집에 와서 어머니와 함께 마루에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유난히 싱싱한 상추와 풋풋한 고추가 먹음직스럽게 상에 놓여 있었고,
나는 대문 쪽을 등지고, 어머니는 대문을 바라보는 쪽을 향하고 앉아 밥을 먹고 있었다.
어머니가 상추쌈을 만들어 입을 크게 벌려 막 입 속에 넣으셨는데
갑자기 그 동작을 서둘러하시면서 자리에서 일어나셨다.
웬일인가 하며 뒤 돌아보았는데……
세상에! 우리 반 반장 아이가 그곳에 서 있었다.
순간 나는 부끄러워 몸 둘 바를 몰랐다.
우리 어머니가 상추쌈을 크게 벌린 입에 넣는 모습을
그 애가 보았을 것 같은 생각에 너무 부끄러웠다.
그 아이는 우리 집에 아버지 심부름을 온 것이었던 것이다.
당시 교감선생님이셨던 아버지는 나를 찾으러 교실에 갔지만 내가 없으니
반장을 불러 집에 가서 무언가를 가져오라고 하셔서
그 아이가 우리 집에 왔는데 어머니와 나는 그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고 말았던 것이다.
그 일 때문에 한동안 나는 그 애를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고,
그 후로 나는 상추쌈을 거의 먹지 못했다.
지금도 나는 쌈 종류의 음식을 자유롭게 먹지 못하니
그때의 충격은 가히 상상을 뛰어넘었다고 할 수 있다.
친정식구들도 상추를 좋아하여 식구들 모여 고기를 먹을 때도
유독 나만 상추를 먹지 않으니 언니는 나보고 별나다고 말하곤 했었다.
하지만 나는 그 이유를 말하지 못하고 지냈다.
그러면서 상추를 바라보면 늘 그 생각이 떠오르는 것이다.
상추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 밥상에 빠질 수 없는 식재료이며
그 효능은 일일이 열거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옛날에는 상추를 천금채라고 했는데
이는 상추 씨앗을 천금을 주어도 구하기 어렵다는 연유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그만큼 유익한 상추였는데!!!
하니 상추를 꼭 쌈이나 셀러리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섭취할 수 있을 거란 생각에 검색을 해보니 과연!이었다
그동안 등한시 해 왔던 상추가 나를 깜짝 놀라게 한 것이다.
하루가 지난 저녁식사 때 상추 겉절이를 해보니 정말 맛이 좋았다
입을 크게 벌리지 않아도 먹을 수 있는 참 좋은 상추였던 것이다.
야채박스의 많은 상추가 금방 동나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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