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일!!
아침 일찍이 조기를 게양하고 바라보는 산야가 참으로 청명하다.
아, 날씨가 참 좋다. 그 좋음을 하늘이 먼저 알려준다.
태극기와 하늘과 구름과 산의 나무들의 어울림이 더없이 평화롭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평화로움은
현충일을 맞이하여 기리는 영혼들이 있어서일 것이라 생각하니
왠지 먹먹한 마음으로 젖어든다.
전쟁을 치르며 희생하셨던 분들은 일 년에 한 번이지만
나로 하여금 전율이 일 정도로 기억되고 있으니
어쩌면 지상 어느 곳에 살아계시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지울 수 없다.
어떻게 사는 것이 기억되는 것일까.
진정 나는 최소한 우리 가족들에게 만이라도 과연 무엇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가끔 답 없는 질문을 나 혼자 던져보기도 하지만
이런 생각 앞에서는 전율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내가 아무리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 하여 절대 그렇게 되지 않는다.
내가 살아낸 만큼 기억할 것이니 참으로 어려운 일 아닌가.
제대로 살아야 훗날 나오는 기억되는 모습이란 답을 내기 위해
지금은 식을 찾아 열심히 풀어 나가고 있는 것이다.
오늘 나에게 의로운 영혼으로 기억되는 분들에게 문득
우리 가곡 ‘저 구름 흘러가는 곳’ 들려주고 싶어 흥얼거렸다.
저 구름 흘러가는 곳
김용호 작시 김동진 작곡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아득한 먼 그곳
그리움도 흘러가라 파아란 싹이 트고
꽃들은 곱게 피어 날 오라 부르네
행복이 깃든 그곳에 그리움도 흘러가라.
저 구름 흘러가는 곳 이 가슴 깊이 불타는
영원한 나의 사랑 전할 곳 길은 멀어도
즐거움이 넘치는 나라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저 구름 흘러가는 곳 내 마음도 따라가라
그대를 만날 때까지 내 사랑도 흘러가라
아침 일찍 이어서인지
창문을 한참 열고 서 있으니 살짝 몸에 한기가 느껴진다.
창문을 닫으려 시선을 내리는데 저 아래의 한 풍경이 내 눈에 들어온다.
우리 아파트와 주택의 경계에서 자라는 대나무가 누렇게 변해진 잎을 매달고 있는 모습이다.
아! 죽추(竹秋) 현상이로구나.
길에서 바라보면 알 수 없는데
우리 집이 13층이어서 아래로 내려다보이는 풍경이다.
현충일인 오늘은 절기상 망종이다.
한자어로 망(芒 까끄라기 망) 종(種 씨앗 종)으로
보리를 수확하고 벼나 곡물의 씨를 뿌리는 시기라고 하니
바야흐로 모내기철이 되었고 농부들은 가장 바쁜 날들을 보내는 절기일 것이다.
눈코 뜰 새 없이 바빠
발등에 오줌을 쌀만큼 가장 바쁘다는 뜻의 속담도 전해오고 있는 절기로
천지만물이 생장하며 온 세상을 꽉 채우는 시기,
이 좋은 시기에 우리 뒷산 초입의 대나무가 누렇게 변한 채 시들하다.
사철 푸른 잎은 물론 꼿꼿한 기상으로 뭇 선비들의 사랑을 받는 몸인데
왜 제 몸을 누렇게 변하게 했을까.
이는 봄이면 솟아나는 죽순에게 영양분을 보내기 위해
제 몸을 돌보지 않는 까닭이란다.
마치 산모가 태아에게 영양분을 보내느라 빈혈이 일어나듯
제 몸의 영양으로 죽순에게 젖을 먹이는 대나무~ 진정한 모성애가 아닌지…
이 안쓰러운 모습을 죽추(竹秋)라 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있으니
자연의 섭리는 참으로 묘하다.
죽순은
우리에게 계절의 별미를 안겨주는 귀한 먹거리로 기억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대나무의 희생이 있었음을 생각하니
내가 제대로 살아가야 하는 조심스러운 마음 자세 하나를 답으로 받은 듯싶다.
계절의 길목마다에 가득한 삶의 귀함을 놓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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