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 초여름의 바람은
바뀐 계절의 산차림이 궁금한 듯 살짝 엿보고 있었는지
산등성이 나뭇잎들이 제법 살랑이고 있다.
작은 바람에도 잎을 이리저리 뒤척이는 나뭇잎의 움직임이 마냥 부드러운데
내 얼굴에 와 닿는 바람의 감촉이 어찌나 좋은지…
새들도 마냥 좋은 듯 지난밤의 안부를 물으며 서로가 부지런히 재잘거린다.
모든 것들이 예뻐 보이면서
내 마음도 저절로 차분해지니 참 좋은 날이다.
요즈음의 우리 아파트 화단 곳곳에는 수국 꽃들이 피어나고 있다.
그 중 내가 제일 반겨하는 수국은
빙 돌아 아파트 뒤 화단에 조용히 참한 모습으로 피어있는 산수국이다.
배구공 모양 둥글고 탐스럽게 피어나는 수국 꽃과는 달리
보랏빛인가, 청람색인가, 신비의 색으로
어스름한 새벽녘의 빛을 발하는 산수국 꽃이 너무 예뻐
내 마음이 자꾸만 맴돌고 있다.
자디잔 망울들이 진짜 꽃인데 꽃이 너무 작아 꽃 역할을 못할 듯싶으니
산수국은 그럴듯한 꽃잎으로 참꽃을 빙 둘러 피워낸 헛꽃으로 벌 나비를 유혹한다.
헛꽃은 화사한 모습으로 벌 나비들을 모아들이지만
그 곤충들로 하여금 자신이 아닌, 못생긴 참꽃에 머물게 하여
씨앗을 만들 수 있도록 자기의 책임을 다하는 꽃이다.
참꽃이 수정을 마치면 헛꽃은 꽃잎을 팽! 돌아 앉아 모른척한다.
자신한테는 아무런 득이 없으면서, 못생긴 자디잔 꽃들을 위하여
그렇게 활짝, 곱고 밝은 모습으로 피어있는
헛꽃의 모습이 자꾸 눈에 어른거린다.
나는 누구를 위하여 그렇게 예쁜 모습으로 희생할 수 있을까?
내 모습 또한
남이 대신해 줘야 만이 온전한 생활을 하는 자디잔 망울의 꽃은 아닐 런지...
바람 부드러운 창가에 서서
내 마음의 헛꽃을 피워 본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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