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력상 봄을 일컫는 달(月)중 이제 마지막 5월이 어느새 하순을 걸어가고 있다.
봄꽃들은 차례로 제 모습을 아낌없이 보여주며 피고 지고 있다
귀퉁이 한 줌의 땅이라도 개의치 않고,
쓰레기더미에서도 피어나는 꽃들의 자태는 해맑다 못해 청순하다
이 많은 꽃들을 예찬하기에는 내 마음은 턱없이 부족하기만 하다.
그 마음을 채우고 싶으니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다.
토요일 오전, 아들한테나 다녀오려고 시간을 청하니 이미 다른 약속이 있단다.
그래? 어차피 나서려 했던 마음이기에 차를 몰고 천천히
요즈음 한창 뜨고 있는 삼례 문화예술촌을 한 번 찾아가 보자 작정한다.
내비에 길을 물으니 친절히 알려준다.
나는 이색적인 모습부터 만나고 싶었는데 내비는 번잡한 주차장으로 먼저 안내한다.
주차를 하고 마주 보이는 비스듬한 건축 사이를 지나 걸어가니
과연 낡은 창고가 보이는 것이다,
아주 평범했던 시골마을이
낡은 창고 7개를 변신시키며 이색 문화공간으로 태어난 곳이다.
이 창고들은 일제 강점기시대에
넓고도 넓은 호남평야에서 생산하는 쌀을 수탈하기 위해 지은 창고였다.
유난히 눈부신 마지막 봄볕이 새롭게 탄생된 예술 공간을 축복해 주는 듯싶었다.
역사는 지워지지 않는다. 다만 그 시간을 기억해 주는 것이다.
역사의 교훈을 잊지 않고 새로움을 만날 수 있는 공간,
한 작은 마을의 변신이 참 고맙게 느껴진다.
가정의달이라서 그런지 작은 마당에 마련한 무대에서는 노래자랑이 진행되고 있는데
대여섯 팀이 될까 말까 한 그야말로 신청자들만이 앉아서 순서대로 노래를 부른다.
진행자의 목소리가 공허함으로 울리는데 노래하는 사람들은 아주 열정적이다.
그래 바로 시골스런 풍경이다. 지나는 사람들의 웃음 띤 얼굴들이 정겹다.
나는 오늘 문을 열고 있는 1전시관과 4전시관을 둘러보았다.
전시관으로 변신한 창고들은 옛 창고의 천장이나 구조를 유지하며 멋스러움을 살렸다.
1 전시관
위 건물과 문화예술촌 로고가 닮아 있다
옛 창고의 지붕만을 파란 페인트 칠한 모습이
로고가 되었으니 의미가 있었다.
제4 전시관
4 전시관에 전시하고 있는 그림의 작가도
종이컵에 차 한 잔을 들고 노래자랑 무대를 구경하고 있다
수더분한 모습이셨다.
슬그머니 전시실에 들어가 작가의 말을 읽어보니
“어떤 환경이나 현상은 우리에게 각각의 감정 선을 자극시킨다.
삶의 경험치에서 쌓인 결과물들이 다르기 때문이다 "
이 말에 격한 동감이 일렁인다.
어쩌면 지금의 이 역사적 장소가 속삭이는 말을 들은 것처럼 표현하였다.
집으로 돌아와 저녁식사를 하고
다른 때보다 조금 일찍 나선 산책길의 메꽃이 나를 반긴다.
늘 다니던 시간의 어둠으로 그냥 지나치곤 했을 거란 생각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차츰 짙어지는 노을빛아래의 꽃창포도 멋스러운 자태를 보이고 있다
오늘 하루도 역사 속으로 숨어 들어가겠지...
먼 훗날 반짝 빛나기를 소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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