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오래된 기록들을 보관하는 상자 하나가 있다.
그 상자는 어느 해 명절에 선물로 들어온 한과를 담았던 상자로
그냥 버리기 아까워 내 소지품들을 보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 안에는 내 학창 시절의 성적표와 상장 들,
그리고 서울에서의 공무원 시절 내 행색들이 보관되어 있는 것이다.
아주 옛날 사진 하나를 찾기 위해
그 상자를 열어보니 아, 그곳에는 우리 아버지 퇴임식 책자도 있었다
이것 저것 뒤적거리다가 낡은 지갑 하나를 열어 보니
지금 화폐가 나오기 전 구(舊) 지폐가 권 종 별로 들어 있었다.
만 원, 오천 원, 천 원, 등은 크기가 조금 작아진 형태로 지금도 사용되고 있지만
오백 원 지폐는 없어지고 대신 동전으로만 통용되고 있으니
나름 귀한 지폐임에 틀림없으니 관심이 확 당기는 것이다.
오백 원 지폐에는 거북선을 배경으로 이순신 장군 초상이 있고
뒷면은 현충사의 그림이 들어가 있는 지폐였다.
이 오백 원 지폐에는 일화가 있다.
1970년대의 우리나라는 몹시 가난해서
큰 사업을 하려면 외국에서 차관을 들여와야 했던 시절이다.
당시 정주영 회장은 조선소를 짓기 위해
영국 최고 은행과 큰 금액의 차관도입을 협의했는데 은행 측은 거절을 했다.
이에 정 회장은 최고 은행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선박 컨설턴트 회사인 애플도어 롱바텀 회장을 찾아갔다. 그 또한 고개를 가로저으니
이때 정 회장은 지갑에서 지폐 한 장을 꺼내 들었다.
거북선 그림이 그려져 있던 500원짜리 지폐였다.
정 회장이 말하기를
“우리가 만든 거북선입니다.
당신네 조선(造船) 역사보다 300년이 앞선 시기에 이 철갑선을 만들어 일본을 혼낸 민족이라오.
그 후 우리의 나라 사정으로 경제발전이 늦었을 뿐
우리 국민의 아이디어와 능력은 그대로 남아 있답니다. 우리를 믿어 주세요.”
이 말을 들은 롱바텀 회장은 은행을 설득하여 차관 도입을 성공했다는 일화는
아마도 관심 있는 모든 분들은 다 알고 있는 사실 일 것이다.
이 후 들여온 차관으로 현대조선이라는 이름으로 기공식을 했고
2년 만에 조선소를 완공하고
이제 세계 제일의 조선소로 우뚝 서서 자랑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일화를 통해 나는 정주영회장의 뚝심과 배짱이 참으로 훌륭하다는 생각을 했었다.
새로움에 대한 도전자이면서 뛰어난 리더십과 추진력으로 일궈낸 경제부흥으로
현재 내가 편하게 잘 살아가고 있음을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다.
그 이전에 위대한 이순신장군이 계셨고
그 위업을 길이 기념하고자 화폐의 인물로 선정했으며
훗날 우리의 기업가는 재치로 이를 인용하여 큰 사업을 이룩했다는 사실은 자랑스럽기 한이 없다.
무릇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회를 만들고 그 기회를 잃지 않기 위한 추진력과 발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하여 많은 사실을 알고 배워야함을
우리 아이들한테도 이 일화를 통해 들려주기도 했었다.
문득 만난 오백 원 지폐 한 장을
이것저것 널브러진 틈에 앉아 한참을 바라보면서 여러 생각에 잠겨보았다.
아, 그러고보니 오늘이 이순신장군 탄신일이었구나!!
그래~ 우리 민족의 훌륭함을 어찌 잊을 것인가!
작은 애국심 한 자락에 그냥 으쓱해지는 밤이다.
지금의 내 자리에서 열심히 살아가는 일이 나로서는 최고의 방법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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