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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나먼 나라 이집트(12) : 장제전, 투탕카멘

물소리~~^ 2023. 3. 22. 15:30

 
투탕카멘의 무덤과 또 한 명의 파라오 무덤을 관람하고 장제전으로 갔다.

장제전 입구에서 건물 앞까지 상당한 거리여서 미니트레인을 타야 했고

장제전을 둘러보고 왕가의 계곡을 벗어났었다.

나는 지금 사진의 순서를 보며 추측하면서 몹시 혼동스럽다

사실 남편이 많이 힘들어 해서 나마저 정신이 없었다. 장제전에서는 더욱 그러했다.

나 혼자 다니다가도 행여 잘 기다리고 있는지 여간 마음이 쓰이지 않았다.

하니 지금 내가 생각하는 순서가 뒤섞여 있음에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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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학적으로 이집트의 신왕국 18 왕조는 기원전 1550~기원전 1070년까지의 시대를 말한다.
하니 지금으로부터 근 3,800년 전의 이집트의 한 시대를 이끈 하트셉수트는
여왕으로 신왕국 18 왕조가 번영하도록 기초를 쌓은 여왕이었다고 한다.
 
투트모세  2세가 사망한 후
투트모세 3세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40세였다는데 어린 나이?)
투트모트 2세의 왕비였던 하트셉수트는 섭정을 하게 되면서 정치의 실권을 잡았다.
하트셉수트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하기도 하고 각종 축제를 성대하게 거행했는가 하면
웅장하고 화려한 장례신전, 왕가의 계곡에 있는 왕의 무덤,
거대 오벨리스크 등을 건설하는 등 많은 업적을 쌓았으며
이러한 정치 시스템이 훗날 번영으로 이어졌다고 하니 참으로 대단한 여왕이었다.
 
거대한 오벨리스크를 채석장이 자리한 나일강 상류의 아스완에서
큰 배에 실려 운반되었다는 사실이 여왕 장례신전 벽면에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훗날 여왕이 사망한 후
그녀의 아들이었던 투트모세 3세는 그녀의 업적등을 많이 삭제하고 파괴하였다고 하는데
자신을 섭정하다 왕의 자리를 차지한 그녀에 대한 원한이라고도 하고
여자는 왕이 될 수 없다는 사실에 두고
여왕이라는 예를 없애 왕위 계승을 정당성을 강화하려고 했다는 설도 있으니...
 

 

 

▲ 하트셉슈트가 선물 받아 심었다는 나무의 뿌리

 

▲ 저 절벽 뒤로 왕가의 계곡이 있다.

 

 

 

▲ 투트모세 3세가 세운 신전이었는데 무너지고 하트셉슈트의 것만 남아 있다고

 

▲ 신전의 부조들을 투트모트 3세의 역사 지우기 공작으로 모두 지워졌다고 한다.

 

▲ 나는 건물 뒤 저 바위들의 웅장함에 자꾸만 눈과 마음이 쏠린다. 동쪽에서 해가 뜰때면 황금빛으로 빛날 것이니!!

 

▲ 여왕이라서 볼에 색칠화장까지 했다

 

 

 

 

 
 

▲ 투탕카멘 무덤을 찾아가는데 저 앞의 사람들이 공사를 하고 있는데 일주일 전에 무언가를 발견했다는 설명이었다.

 
 
 

황금가면의 주인  투탕카멘(기원전 1318)

 
왕가의 계곡은 도굴을 막기 위해 생겨난 신왕국 파라오들의 묘소이다.
그럼에도 귀한 보물들은 도난당했고 미라는 마구 짓밟혔다.
그 가운데 유일하게 도굴을 면한 왕묘가 있었으니 바로 투탕카멘의 묘이다.
발굴 번호는 KV 62,
거의 원형에 가까운 상태로 이 왕묘를 발굴했을 때 그곳에 소장된 막대한 보물은
고고학박물관 2층을 꽉 채우고도 넘쳤다 하니 얼마나 많은 부장품들을 묻었을지 놀랍기만 하다
덕분에 이집트 고고학 발전에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고 한다
 

 
노무자들이 람세스 6세의 무덤을 조성하면서 쿠탕카멘 묘소 입구 근처에 숙소를 지었고
퍼낸 흙을 쌓으면서 투탕카멘의 무덤을 덮어버린 것이다.
하니 도굴꾼들도 약 3천 년이 지나는 동안 이 무덤을 찾을 수 없었던 것이다.
 

 

카터는 영국 사람으로 당시의 발굴현장 감독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1922년 람세스 6세의 무덤을 만들던 노무자들의 숙소밑을 파 내려가다가
왕묘로 통하는 계단을 발견하고 왕의 봉인이 된 출입문을 열자
엄청난 양의 금으로 장식한 관, 미라의 케이스, 침대, 옥좌 등으로 꽉 차 있었고
벽에 새겨진 화려한 벽화와 조각들은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고 한다.
 
더욱 엄청난 일은 대발견이 있은 지 불과 5개월 후에 발굴에 참여한 인물들이 
하나둘씩 사망에 이르자 세계인들은 파라오의 저주라 말하며 놀라워했다.
하지만 총지휘자였던 카터는 천수를 누렸다고 한다.
이 죽음들을 면밀히 조사한 결과 발굴과는 관계없이
무덤 안에 있던 곰팡이류의 병균들이 외부의 공기와 접촉하면서 저항력,
즉 면역력이 약한 이들이 감염되어 사망에 이르렀다는 결론도 있었으니
이래저래 투탕카멘의 무덤은 더욱 명성을 얻었고 그 덕분에
이런저런 사실들을 익히 듣고 궁금해하던 우리 남편도
사막 기후에 힘들지만 투탕카멘 묘만큼은 꼭 봐야 한다며 이겨내고 있었던 것이다.
 

 

 

 

 

▲ 입을여는 의식이라고 한다

죽은 자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말도 할 수 없고
음식을 먹을 수도 없으니 입을 열게 하는 의식의 벽화라고 하는데
표범가죽을 두른 이는 '아이'로 쿠탕카멘의 후견인이었지만
왕이 되기 위해 쿠탕카멘을 암살했을 가능성을 제기했으나
쿠탕카멘의 무덤에 후계자로 매장되었다고 한다
 
사실 벽화의 모습에 그려진 아이의 모습에서는
의식을 행하는 신을 특징할 만한 무엇도 내 눈에는 띠지 않았으니
내 눈을 의심해야 할까? 고고학자들이 말하는 진실이 알고 싶다는 욕망이 꿈틀댄다.
 

쿠탕카멘을 겹겹이 감싸고 있던 황금빛 관들은 고고학 박물관에 진열되어 있었고
박물관의 쿠탕카멘 방에서는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서 눈으로만 보고 왔었다.
 

 

투탕카멘의 미라를 만나고 깜짝 놀랐다.
19세 나이의 어린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라로 만들면 미라 역시 세월의 변화를 따라가는 것인지 참으로 놀라운 마음이었다
 
사진촬영이 안 되는 미라지만 앞에서 누군가가 1달러를 쥐어 주었는지
연이어 들어와 사진 찍는 사람들을 제지를 못하고 있었다. 안 하고 있었을까
 
저 발가락을 좀 보세요!!
갑자기 눈시울이 시큰해지는 까닭은 무엇인지....

 

▲투탕카멘의 황금가면이 새겨진 금목걸이를 크루즈에서 남편이 사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