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푸 신전을 나와 버스를 탑승하고 우리는 다음 여정지인 왕가의 계곡으로 향했다
기대감이 차오른다.
가는 도중 딱 한 번 화장실에 들렸다
화장실에 갈 때마다 1달러씩을 내는데 2~3명씩 짝을 이루어 이용할 수 있다.
버스에 오르기 전, 도로변에서 대추야자 판매상을 보았다,
저울로 달아 파는 것 같았는데 저울의 모양이 신기했다. 옛날 우리 방식을 보는 듯싶었다.
가이드는 될 수 있으면 거리의 상품들은 구매하지 말라고 한다
위생상 매우 안 좋다는 것이다.
우리 차는 점점 사막을 향해 가는 듯싶은데 온통 모래 빛깔의 웅장한 산들이 펼쳐지고
곳곳이 파 헤쳐 있는데 유물발굴현장이라고 한다
저 거대한 사막아래 묻혀 있을 5천 년 전의 유물들은 언제 어떻게 빛을 볼까
사실 새벽에 둘러본 에드푸 신전도
모래 속에 묻혀 있던 것을 20세기 초에 발굴 수복했다고 하니
앞으로도 무궁무진한 보물들이 나올 것 같은 이집트의 사막이다.
룩소르에 위치한 왕가의 계곡은 많은 파라오들의 무덤이 집중되어 있는 곳이다.
나일강을 중심으로 떠오르는 해를 먼저 받는 동안(쪽)은 신들을 모신 신전이 있고
해가 지는 서안(쪽)은 왕들의 무덤이 있어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나일강을 중심으로 구분 짓고 있었다
이 계곡에서 신왕국의 파라오와 왕자의 무덤이 현재까지 65기가 발굴되었으며
발굴된 순서에 따라
KV(King Valley) 1~65번까지 번호를 붙여 관리하며 9기가 개방되었다고 하는데
그 유명한 람세스 2세의 무덤은 유지보수 중으로 문을 막아 놓았다.
입장권을 끊으면 자신이 선택하는 3 곳을 방문할 수 있으며
무덤 앞에서 한 번 들어갈 때마다 입장권에 펀치를 해 주고 있었다
투탕카멘 무덤은 따로 입장료를 내야 하며 우리는 선택 관광으로 잡혀 있었다.
고대 이집트 역사를 고왕국, 중왕국, 신왕국으로 구분하는데
고왕국시대 파라오들은 피라미드로 했지만 눈에 보인다는 이유로 도굴이 빈번하니
신왕국 즈음에는 보이지 않는 거대한 암석 아래 무덤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도굴을 막을 수는 없었다.
피라미드나 무덤에는 워낙 귀중한 부장품이 함께 묻혀있기에
이집트의 도굴은 피라미드 시대와 함께 있어왔는데
고고학자들의 추정은 아마도 그 무덤들을 만든 사람들이 도굴꾼일 것이라고 짐작한다고 한다.
그렇게 꼭꼭 숨긴 장소를 어떻게 알고 찾아낼 수 있겠는가를 추정하면 그렇다는 것이니
혹자들은 왕들의 무덤은 도굴꾼들의 현금인출기라는 표현을 했다.
왕가의 계곡에 들어서면 걸어서 다녀야 하는데
엄청 덥고 쨍한 햇볕 아래를 걷는다는 일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아마도 남편은 이즈음부터 몸이 힘들었나 보다
그곳에서 엄청 땀을 흘리면서 딱 한군데 들어갔다 나와서는
그늘에 앉아 있으면서 나보고만 다니라고 하지 않는가.
투탕카멘 무덤에 갈 때는 들어간다고 한다.
우리는 왕의 계곡에서 약 1.5km 떨어진 왕비의 계곡부터 탐방했다.
우리 가이드는 사람들이 밀리는 현상을 매우 싫어하면서
용케도 한가한 곳을 먼저 점하는 실력이 있었다
우리의 처음 선택 무덤은
왕비의 무덤 중 사랑꾼 람세스 2세의 부인 네페르타리 무덤이었다
안내판을 보면 QV66 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그렇다면 Qeen Valley 66 일 테니 발굴된 왕비들의 무덤 중 66번째 발굴되었다는 표시일 것이다
사실 왕비들의 무덤이 왕의 무덤보다 더 많이 발굴되었지만(80여 개)
피해 정도가 너무 심해 보존 가치가 없다는 설명이다
실제 이곳을 가축우리로 사용했다는 말까지 나왔단다.
그럼에도 네파르타리 무덤은 얼마나 화려한지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람세스는 얼마나 왕비를 사랑했기에 무덤까지 이렇게 화려하게 해 주었을까
엊그제 칠한 것처럼 화려한 색채감과 화려한 무늬의 이 벽화가
3 ~ 4천 년을 넘는 것이라는 추정을 할 수가 없었다.
▼네파르타리 무덤
네페르타리 무덤에는 우리팀 외 한 팀만이 있었다
내부 사진 촬영 시 1달러를 내야해서 그럴까?
나와 남편은 문지기?한테 1달러를 주니 우리 둘의 사진을 엄청 많이 찍어 주었다^^
잠시 쉬고 우리는 티티의 무덤를 찾았다.
쿠탕카멘의 직전 왕이었던 아큐네탄은 왕족이 아닌 사람을 왕비로 맞이했다.
고대 이집트의 3대 미인 중 최고의 미인이라 불리는 네페르티티였다
네페르티티에 대한 설은 구구하니
역사의 중심에 선 자들의 비밀스런 모습에 더욱 힘을 주는 이야기들이 아닐까.
사실 왕과 티티 왕비는 종교개혁을 실시했지만 실패를 했는데
그만큼 이집트인들은 신들에 의지하는 생활을 하면서
사후세계에의 염원을 중요시 한 것이라는 점을 시사한다고……
티티의 묘는 한 때 나귀들의 우리로 바뀌었었고
막연히 파라오 부인의 무덤일 것이라는 추측을 했었는데
왕궁의 조각가 공방에서 티티의 흉상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파스텔톤 벽화가 이채로웠다.
어쩌면 티티는 자신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은은함으로 표현하며 살아왔던 게 아니었을까
나 혼자만의 생각을 하면서 벽화 앞에 서 보았다.
▼ 네파르티티 무덤
고대 이집트인들은 다른 문명세계의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죽음과 내세에 지대한 관심을 쏟았다. 그들은 나일강 유역등에 사멸하기 쉬운 자제를 써서 집을 짓고 살았지만 죽은 몸은 석재같이 영구한 것으로 무덤을 만들어 그곳에 묻혔다. 사후 세계에 대한 믿음과 안전한 무덤이 있어야만 사후에 영생할 수 있다는 생각은 고대 이집트인들로 하여금 일종의 독특한 문화적 신앙을 갖게 했다. 하여 그들은 소유하고 있는 재원과 능력의 많은 것들을 오직 매장과 장례의 실행에 바치려 했다. - 이집트역사 다이제스트 100에서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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