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분 절기를 며칠 앞 둔 요 며칠 날씨는 다시 여름이 오려는 듯싶게 덥다.
하지만 아무리 과학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하여도
절기 변화를 막을 수 있는 것은 그 무엇도 없다.
이런 절기의 변화 앞에서 내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움을 느끼는 절기는 하지이다.
매년 6월 21일이나 22일이면 낮의 길이가 가장 길고 그림자는 가장 짧다는 날인데
나는 하지가 다가오면 이상하게도
연말이 되어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그런 어떤 의식보다도 더 큰 아쉬움을 매번 경험하며 지낸다.
그 이유는 단지,
하지가 지나면 하루 1분씩 낮의 길이가 짧아진다는 아주 단순한 이치 때문이다.
막연히 낮의 길이가 1분씩 짧아진다는 것은
이제 일 년이 고비를 넘겨
하향 곡선을 그리는 시기라는 생각에 마냥 아쉬워지는 것이다.
하루 종일 책상앞에 앉아 있다 집에 와서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설거지까지 부리나케 하고 나면 오후 7시 무렵~
나는 언제나 음식물 쓰레기통을 들고나와 처리한 후 곧바로 저녁 산책을 시작한다.
1시간여를 걸으면서 아들들, 친정 식구들, 또 친구들과
가끔 통화하는 시간이기도 하니 내 몸이 활성화되는 시간의 시작이기도 하다.
한 여름의 오후 7시는 환한 대낮이지만
시나브로 하루 1분씩 짧아지는 낮의 길이는 하지로부터 근 80여일이 지났으니
1시간 반 만큼이나 짧아진 낮 시간인 만큼
처서 지난 요즈음은 어둠이 깊게 내려앉은 시간이다
점점 어두워지는 시간에 왜 이리도 아쉬움이 표출되는지 모르겠는데
호수 위를 가로지르는 물빛다리의 조명은 어둠으로 더욱 화려해지며 눈길을 끌어간다.
그런데 요즈음 다리에서 새롭게 발견한 그 무엇이 있어 즐겁다
다리의 난간에 숭숭 뚫린 공간은 거미들의 세상이 되어
거미들은 그곳에 거미줄을 치고 먹잇감을 사냥하고 있는데
그 거미줄이 물빛다리의 바뀌는 조명 따라 절로 색을 달리하며 보여주고 있으니
마치 무슨 축제장에 거미 자신들이 만든 작품들을 선 보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갑자기 만나는 거미의 흉칙한 모습에 흠칫 놀라며 몸을 사리던 나였지만
다리의 조명따라 변하는 거미줄 앞에 앉아 변하는 색마다 한 컷씩 사진을 찍고 있노라니
한 어린아이가 다가와서 옆에 쪼그리고 앉는다
왜 사진 찍어요?
거미들이 색깔을 바꾸고 있는게 예뻐서~
나는 무서워요! 한다.
앞서 간 아이의 엄마가 아이를 부르며 빨리 가자 하니 얼른 일어나 달려간다.
정말 거미는 무섭다
이른 아침 뒷산 오솔길의 거미줄에 느닷없이 스치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 끈끈함에 소스라치도록 놀라곤 했는데
거미의 흉측스런 모습과 거미줄은
한 여인이 신의 저주를 받아서 거미가 되었다는 신화에서 비롯 된다.
옛 리디아 땅에 아라크네라고 하는 길쌈하고 베 짜는 솜씨가 좋은 처녀가 살고 있었다. 아라크네는 자신의 베 짜는 솜씨가 여신보다 더 나을 거라고 뽐냈다. 여신은, 신들을 함부로 대하는 아라크네를 그냥 둘 일이 아니라 생각하고 노파로 변장하고 찾아가 은근히 여신께 용서를 빌라고 타일렀다. 하지만 아라크네는 오히려 여신과 베 짜기를 겨뤄 보자고 나온다.
베 짜기를 겨루던 여신은 그녀(아라크네)의 솜씨에 탄복하였으나 베 폭에 신들을 모독하는 그림으로 수를 놓은 그녀를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어 그녀가 짜놓은 베 폭을 찢었다. 그제야 잘못을 깨달은 아라크네는 스스로 목을 매 자살하려 했지만 여신은 그녀가 늦게나마 잘못을 깨달은 것을 가엾게 여겨 끊어지려는 명줄을 이어주며 타일렀다. "살아나서 영원히 실을 내고 베나 짜거라. 그리고 신과 겨루기를 하면 어찌 되는지 끔찍한 꼴로 만들어 주겠다" 고 하며 독초 즙을 뿌려 거미가 되었다고 한다. 사람들이 거미를 싫어하는 것은 그때 여신이 저주를 내리면서 아주 흉하게 변한 모습 때문이라 한다.
아라크네 이야기는
제 솜씨를 자랑하며 아테나 여신과 비교하고자 했던 오만으로
결국 자신을 파멸로 이끌었다는 사실과,
타인을 무시하는 자는 언제나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같았다.
아라크네는 죄 값으로 평생 거미줄을 엮으며 살아가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엮어가는 거미줄 망 따라 전 세계를 연결해 주는
인터넷주소 www( 'Word Wide Web')를 탄생케 하여 그 거미줄(인터넷)을 통하여
이렇게 글로 표현한 내 생각을 지구상 어느 곳에서든 읽을 수 있고,
그에 따른 마음을 나눌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준 위대한 공로자이기도 한다면 지나침이 있을까?
혹자는 신화를 고대인의 지혜를 담아놓은 그릇이라고 한다
비록 혐오스런 모습으로 공포심을 느끼게 했지만
오늘만큼은 예쁜 거미줄을 만나 신의 이야기를 들었으며
자만으로 뭉친 모습은 얼마나 흉한 모습의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다시 한 번 깨달았다.
단순히 먹이를 구하기 위한 수단이라기보다는,
한 마리 벌레와 인간(아라크네)과의 관계를 연결시키면서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정도의 길을 걷는 방법을 암시해주듯
견고하게 가로 걸쳐있는 화려한 거미줄에 얽힌 이야기를 아이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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