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꽃게철이다.
봄은 암게철이고 가을은 숫게철이다.
나는 알이 많은 암게보다는 살이 많은 숫게를 더 좋아한다.
여기저기서 꽃게 소리가 들려오니
아이들도 좋아하는 생선이라서 추석에 모이면 같이 먹을까 싶어
한 번 구입 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어제 남편 지인이 꽃게를 보내왔다.
아무리 수확이 많은 꽃게철이라 해도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커다란 스티로폼 상자가 묵직했다.
열어보니 살아있는 싱싱한 꽃게 33마리가 들어 있는 것이다.
구입하고 싶었던 꽃게이기에 반가웠지만
이걸 그대로 냉동실에 넣을 수 없으니 일일이 손질해야 하는 어려움에 걱정이 앞선다.
얼음속에 넣어왔기에 밤새 그대로 두고
일요일 아침 일찍 7시 30분부터 손질하기 시작했다
게는 분홍빛이 돌면서 싱싱함을 보였다. 나는 간장게장 담는 법을 모른다.
또 담는다고 하더라도 날 것을 잘못 다루어서 낭패를 볼 수 있기에
아예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하니 한 마리 씩 등껍질을 벗기고, 이물질을 씻어내고, 다리의 불필요한 부분을 잘라내고,
가운데를 잘라 손질한 게 4마리를 한 묶음으로 냉동실에 넣기를 반복하노라니
10시 20분경에 끝났다. 손목과 손가락이 얼얼하다.
손질하는 도중 간혹 몸에 그물망이 감겨있는 게의 모습이 보이면 안쓰러웠다
아, 이 굴레를 벗어나려고 얼마나 애태웠을까.
살아나려고 몸부림치다 더욱 그물에 말려든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에
칭칭 감겨진 그물망을 천천히 벗겨주노라니 한 그림이 떠오른다.
김홍도의 ‘해탐노화도’ 라는 그림이다.
게 두 마리가 갈대꽃을 붙잡고 있다.
갈대는 분명 게의 먹이는 아닐진데 왜 이런 그림을 그렸을까.
여기에는 깊은 뜻이 있단다.
‘게가 갈대꽃을 탐하는 그림’ 해탐노화도 에서
게 두 마리가 갈대꽃을 물고 있는 것은 소과 대과 과거시험에 모두 합격하라는 의미로
과거시험을 앞둔 사람에게 그려주곤 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는
갈대의 한자어는 蘆(로)인데 발음은 臚(려)와 비슷한데서 비롯한다.
궁중에서 과거시험 합격자를 호명하는 의식을 전려(傳臚)라 하는데
'려' 와 '로' 를 동일시하여 갈대와 게를 과거시험에 비유한 것이라고 한다.
사소한 그림 한 점이 이런 큰 의미가 있었다니!!
옛 사람의 정성과 멋이 스민 정서가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작은 마음에 얼마나 큰 감동을 안겨주었는지 모른다.
그래서 그물망이 감겨있는 게의 모습에서
갈대 대신 그물망을 꼭 쥐고 있는 모습으로 억지 생각을 했는지도 모르겠다.
선물로 들어 온 꽃게는 나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나는 게 선물을 받고 먹기에 바빠 손질하느라 고생했고
저녁식사에 두 마리로 게탕을 끓이고
세 마리는 살을 발라 갖은 양념으로 버무린 다음
등 껍질에 담아 찜솥에 익혀내니 남편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한다.
아, 오랜만에 음식솜씨 발휘하라는 꽃게의 특별한 의미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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