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생각에 지배되는 인간의 육체는 얼마나 나약한 것일까.
시간 가는지조차 헤아릴 수 없는 단조롭고 적막한 일과에 묻혀
점점 말을 잃어가는 내 모습이 안타까운지
토요일 아침 남편은 단풍 구경하고 오라고 한다.
혼자 다녀오라는 여운으로 나를 잠시 해방시켜 주는 듯싶은 배려가 느껴지면서
갑자기 내 마음이 화들짝 열린다.
고창 문수사에 다녀 오란다.
어쩜! 며칠 전 지역 신문의 지면에서 그곳을 소개하는 글을 읽었고
한 번 다녀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얼른 검색을 해보니 우리 집에서 자동차로 1시간 15분 정도면 도착한다고 한다.
물론 고속도로를 경유하는 길 안내의 시간이었기에
오늘 차들이 밀리지 않을까? 하는 염려로 간단히 물 한 병만 챙겨 나섰다.
고속도로는 의외로 한가 했고
씽씽 달리는 차들은 주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앞서 나간다.
들녘은 가을로 가득했고
추수 끝난 논들에서 하얗게 포장된 곤포 사일리지들이
세태 변화에 따른 풍경을 이루고 있다.
그 옛날 볏짚들의 따뜻한 정겨움이 그립다고 늙은 푸념을 전해 본다..
남고창 인터체인지로 빠져나와 국도로 접어들면서부터는 시골 풍경으로 빠져 든다.
빈 논둑에 외롭게 서서 하늘거리는 억새도
길가에서 가을 햇살을 받으며 피어있는 들꽃들의 자태도 더없이 사랑스럽다.
바쁠 것 없이 천천히 문수사를 찾아가는 길~~
고창 문수사의 단풍은 애기단풍으로 유명하다
일주문부터 문수사 절에 이르는
80m 도로 양측에 자생하는 단풍나무(애기단풍나무)는
약 500여 그루로 나이는 100년에서 400년을 헤아리는데
지난 2005년 9월에 그 일대의 단풍나무를
천연기념물 제463호로 지정했으니
단풍나무 숲으로는
유일하게 처음으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역사가 깊은 곳이다.
그 유명한 내장사의 단풍길도
올해 8월에서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사실에 비추어 보면
문수사 단풍 숲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는 곳인데도
전국적으로 알려진 명소라기보다는 지역주민들에게 알려진 소박한 곳이다.
주차장에서 걸어올라 일주문에 도착!
햇살이 구름에 가려 조금 아쉽다.
단풍의 제 빛을 바라볼 수 없을 것 같았지만 나름의 운치를 보여줄 기대를 하며 걸었다.
숲의 보호를 위해 단풍 숲으로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지만
문수사까지 이르는 길을 따라 걷기만 해도
그들의 화려한 자태에 내 마음도 환하게 물들어 간다.
이 길을 걸으면서 사진을 찍지 않고 그냥 즐기기로 나 혼자 약속했지만
나는 이를 지키지 못하고 폰의 카메라를 누르고 또 누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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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풍나무숲 길에 들어서서~~
단풍나무 외에도
고로쇠나무, 졸참나무, 개서어나무, 상수리나무, 팽나무, 느티나무 등의
노거수가 어우러진 것도 이채롭다.
그들은 제잎들을 모두 떨어트린 나무줄기만으로
단풍나무의 잎을 돋보이게 하면서 충분히 이 숲의 아름다움을 이루고 있었으니
무릇 숲은 잡목이 있어 더 아름답다는 말이 생각난다.
문득 지금 저 숲은 교향악을 연주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색색의 빛으로 서 있는 애기단풍나무들은
아마도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악기를 켜고 있을 것이고
잎을 떨치고 유연한 몸짓으로 우뚝우뚝 서있는 검은빛 나무줄기들은 관악기들이겠지.
오보에, 클라리넷, 바순, 호른, 트럼펫, 트롬본을 들고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다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연주할 것이니
그 기다림의 시간동안 얼마나 많은 긴장을 하고 있을지.....
지금 저들은 무슨 곡을 연주하고 있을까.
아, 신세계교향곡?? ♬ 꿈속에 그려라 그리운 고향~~
나 혼자 흥얼거리노라니 또 울 어머니 생각이 난다.
울 어머니의 고향은 어디실까?
문수사에 당도할 즈음 단풍은 절정을 이룬다.
시간이 많아 주변 문수산에도 오를까 했는데
입산통제를 하고 있다.
문수사는 백제 의자왕 때인 644년에 세운 사찰로
오래되어 허물어진 사찰을 조선시대 효종, 영조 시대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르렀다는 사실처럼 대웅전의 목조 건물은 매우 낡아있었다.
오래되어 낡아 있음은 초라함이 아닌
낡음으로 인해 실제보다 더 강한 환상의 힘으로 대중을 사로잡는 것은 아닌지
나도 모르게 합장을 하고 경내를 돌아볼 수 있는 자비를 베풀어 주십사 했다.
문수사 대웅전은 보물 제1918호로 지정되었으며
목조 석가래 삼불좌상을 모시고 있다는데
나는 사찰에 가면 왠지 모르게
대웅전 안 불상의 사진 찍는 것이 미안해서 찍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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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다시 내려가는 길
사찰 주변을 맴돌다 내려오는 길~~
오르면서 만난 단풍과 내려오면서 만나는 단풍의 자태가 다르다.
햇살에 따라 밝음과 어둠이 섞여
때론 푸른 그늘이 내려지면서 더없이 마음을 차분하게 해 준다.
긴 시간 제자리에 서 있는
저들의 고운 자태의 숨은 비결을 끝내 해독하지 못하고
단풍나무숲을 벗어나서
길가에 바짝 붙어있는 작은 개울가에서 혼신을 다 해 살아가는 물봉선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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