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부터 10월을 상달이라고 했다.
절기상으로 해석하는 의미이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휴일이 많은 달이어서 그렇다고 농담 삼아 이야기를 했었다.
연이어 닥쳐오는 연휴, 그리고 대체휴일
무기력으로 다가오는 날들~
어딘가 다녀오며 마음의 활력을 찾아보자고 나선 길
지난 일요일 이른 아침 6시 50분, 통영 비진도행 첫배를 탔다.
바다 백리길 6코스 중, 3코스에 해당하는 길일뿐더러
통영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의 섬이라고 익히 알려진 곳이다
근 3개월 여 만에 나선 외출길,
마음 한 구석에 어머니에 대한 미안함이 차오름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새우깡에 길들여진 바다 갈매기들은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받아먹고, 채 먹기 위해 배 꽁무니를 따라 나선다
이른 아침 시간의 사람들은
새우깡을 던져주지 않아서인지 갈매기들이 몇몇만 따라오고 있다
그나마 어린아이 한 명이 던져주는 새우깡을 받아먹고 있으니
새우깡에 길들여진 갈매기들은
바다 새우가 아닌 인스턴트 새우를 먹어서인지 비만해 진 듯싶다
오래 전 한 지인이, 이야기 도중 갈매기살을 맛있게 먹었다고 하기에
나는 날아다니는 갈매기의 고기인 줄 알고 놀라워했는데
세상에~~ 돼지고기 한 부위의 이름이 갈매기살이란다.
나는 오른쪽의 바다 백리길을 택해 걸었다.
선유봉까지 3.2km로
왼쪽으로 올라가는 1.7km 보다 훨씬 더 걷는 길이지만
오래 전 들었던 비진도의 역사 한 페이지를 확인하고 싶었다
남편은 왼쪽 길로 올랐는데
나중에 말하길 거의 수직으로 된 오르막길을 오르느라 죽을 뻔 했다고…
나의 선택이 탁월했다고 말 한다.
수크렁은 사자성어 결초보은(結草報恩)을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이는 중국에서 유래되는 이야기로
한 노인이 장수에게 큰 은혜를 입었다.(딸을 살려 준 은혜)
전쟁에서 그 장수가 패할 위기에 처하자
노인은 그 장수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길가에서 자라던 이 풀(수크렁)을 잡아 매어두고
적군의 말과 사람들이 풀에 걸려 넘어지게 했고
결국 장수는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다는 내용으로
풀을 묶어(結草) 은혜(恩)를 보답(報) 한데서 ‘결초보은’ 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이 풀은 뿌리 힘도 강해 논 밭두렁의 무너짐 방지를 위해 식재하기도 한다니
어찌 길가에서 아무렇게 자라는 풀이라고 하찮게 여길 수 있을까.
숨겨주고 달래주는 묘한 아련함으로 내 마음을 이끌어 가는 풍경
이 길은 수포마을로 가는 길이기도 하다
배에서 내린 사람들 모두는 가파르지만 빠르게 정상을 오르는 길을 택해서 걷느라
이쪽 길로는 나 홀로 걷고 있다.
잠깐 속세를 버리고 마음을 비우고 바다가 보이는 조용한 흙길을 따라 걷노라니
숲으로 들어서기 전의 길가에는 잔잔한 꽃들이 피어 있다.
바다 바람을 맞서 살아가려고 그러는지
육지와 같은 꽃인데도 더 커 보이고 튼실하다.
이 작은 꽃들이 있어 얼마나 아름다운 삶을 되돌아 보고 있는지!!
이 길로 들어서면 동백나무 숲을 만난다더니 과연 동백나무는 물론,
비자나무, 후박나무들이 울창하여 컴컴한데
내 인기척에 놀란 듯 보이지 않는 새소리가 숲의 고요를 더욱 더 고요케 한다.
사람 자취 없는 흙길을 걷노라니
끊임없이 재잘대는 새소리와 바람에 일렁이는 나뭇잎 소리,
쏴아악 밀려오는 파도소리, 그리고 간간이 들려오는 고기잡이 배의 통통 소리까지
모두 자연의 소리라고 흙길이 알려 준다.
정말 좋다. 마스크를 잠깐 내리고 심호흡을 하노라니 바다 내음이 훅 들어 온다.
얼마쯤 걸었을까 굳게 닫힌 대문을 만난다.
어엿이 번지수까지 걸린 집인데 아무도 살지 않은 듯
잡풀들이 집의 키를 재고 있다.
조금 더 걸으니 비진암이라는 자그마한 암자가 보인다.
폐가를 이용한 암자라는데 역시나 사람의 자취를 느낄 수 없다.
수포마을이라는 어엿한 이름을 지닌 곳인데 왜 사람들이 살지 않고 있을까.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강제로 마을을 떠나야 했단다
연유는 1977년 통영호 남북 사건이 있었는데 그때 이곳 어부 1명이 남북 되었단다.
그 사건 후 정부에서는 외딴섬과 섬마을에 대한 소개령을 내렸고,
이곳 마을 사람들도 모두 집을 떠났다고 한다.
고향을 잃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최근 한 사람이 들어 와 살았지만 오래 살지 못하고 떠났으니
아마 저 닫힌 대문의 집이 그 사람이 살던 집이 아니었을까
수포 마을을 지나고도 울창한 숲은 계속 컴컴했고
흙길은 멧돼지가 파헤친 듯싶은 흔적들이 곳곳에 있으니
개구리가 나뭇잎 위를 폴싹거리는 소리에도 무서움이 일어 걸음이 자꾸만 빨라진다.
아, 드디어 햇살이 환한 산등선이 보이는가 싶더니 슬핑이치 였다.
얼마나 장쾌한 풍경인가.
저 아래 까마득한 절벽 아래의 갯바위에서는 낚시꾼들이 낚시를 하고 있다.
바다 물빛이 환상적이다.
저 낚시꾼들은 고기를 낚을까. 바다 물빛을 낚고 있을까
쪽빛바다와 가파른 절벽의 해안절경이 펼쳐지는
이곳 노루여전망대에서 바다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가슴이 뻥 뚫린다.
이른 아침 시간의 바다는 아직도 안개 커튼을 걷어내지 않고 있으니
한낮 햇살 좋은 시간에는 쪽빛 바다를 여한없이 바라볼 수 있겠다.
과학이 차고 넘치는 시대에 살아가면서도
이런 저런 전설과 신화에 관심이 가는 것은
마음 안에 잠재 되어있는 신앙의 힘이 아닐까
바다를 생활 터로 삼아 살아가는 어촌에는
유독 이런 신기한 이야기들이 많이 전해 오고 있으니
비진도의 아름다운 이 길을 걸어가며
커다란 바위 하나에도, 우람하게 자라는 나무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며
기대고 싶어 하는 민초의 마음일 것이라고 가만히 마음잡아 보는데
갑자기 까마귀 한 마리가 까아악 날아오르며 삭정이 하나를 떨어뜨린다.
어쩜 저 삭정이에도?? 웃음이 번진다.
다시 외항 선착장에 도착
저 아름다운 해변을 걸어 외항 마을로 갔다.
물이 갈라져 있고,
왼쪽은 모래사장, 오른쪽은 몽돌로 전혀 다른 모습일 뿐 아니라
오른쪽 몽돌해변 쪽은 파도가 거세였다
세찬 파도가 밀려오면서 모래를 함께 옮겨오니
모래톱(사주)가 자연적으로 발생해
두 섬을 이어주며 하나의 섬, 비진도를 만들어 주었으니…
해수욕장 바로 앞의 외항마을에 도착하여
잠시 오래된 마을을 구경했다.
팬션도, 민박도, 음식점도 모두 이곳에 있었지만
낡음을 버리지 않고 살아가는 모습들이 정겹기조차 하니
문득 이곳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솟는다.
이 작은 섬에서 이런 다양한 수종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다니….
외항에서 시작하여 약 5시간 40분 동안 섬을 돌아 걷고 내항에서 배를 타고 비진도를 떠났다.
통영에 다다르자 금호리조트가 보인다
어느 해인가 어머니 생신을 맞아
친정 식구 모두 모여 일박을 하며 즐겁게 지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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