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일주일이 훌쩍 지났다.
우리 친정 자매는 언니, 나, 동생으로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세 자매이다.
작년, 우리는 모처럼 자매끼리 6월에 떠나는 유럽여행계획을 세우고
여행사에 계약금까지 걸어두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돌연 코로나19 전염병이 돌면서 여행은 취소되고 말았다.
여행을 가네, 못가네 설왕설래가 난무하던 시기
잘못하여 위약금이 발생할까 봐
언니와 나는 일찍이 취소를 하면서 계약금을 날려버렸는데
동생은 끝까지 버티더니 계약금 30만원을 환불받았었다.
그 동생이 지인을 통해 제주도 15일 머무는 일정으로 펜션을 예약했고
그에 우리의 동참을 원하면서 그간 소원했던 마음의 회포를 풀자고 한다.
우리 세 자매와
둘째 올케와 부산에 사시는 고모님이 참석했다
언니는 차를 가지고 완도에서 배를 타고 오고
나머지는 각 위치에서 비행기 타고 와서 합류하기로 했는데 날짜도 제각각이었다.
그 중 내가 제일 많이 시간 제약을 받았다
하여 금요일 오후 비행기를 타고 가서
일요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오는, 토요일(15일) 딱 하루 머무는 일정이었다.
나는 그간 제주도에는 대여섯 번 다녀왔기에
그날은 지금까지 가보지 못한 영실코스로 한라산을 오른다고 일찌감치 말해 놓았었다.
코로나 때문에도 먼 산, 높은 산에 가는 기회를 놓치며 살아가고 있었기에
오랜만에 산을 오르고 싶었었다.
동생과 올케가 함께 올라가기로 했는데
아,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비가 내린다고 한다.
간밤에 천둥 번개가 요란하더니만 토요일 아침이 되니 잠잠해진 날씨다.
우리는 많은 비가 아니니 그냥 진행하자고 했다.
다행이 입산통제는 하지 않았다.
영실매표소를 지나 휴게소까지 차로 올랐다
비는 그리 많지 않았는데 안개가 어찌나 짙은지
가까이 있는 휴게소 건물도 흐릿하게 보인다.
모두들 기념사진?을 찍고 출발했다
언니와 고모는 천천히 오르면서 철쭉군락지까지만 오르고 내려간다고 하였다.
이 코스로 오르면서 기암절벽과
병풍바위라 불리는 바위의 멋진 풍경을 꼭 보리라고 했는데
아쉽게도 포기해야만 했다.
대신 산죽 밭에서 뛰어가는 노루를 보았고
청량한 새들의 소리에 마음을 씻을 수 있었다
날씨 탓인지 등산객들은 어쩌다 만날 뿐~~ 참으로 고즈넉한 산길이었다.
여행을 하다보면
풍경을 바라보는 그림여행이 있는가 하면
유적지를 찾아가서 배우고 익히는 교과서여행이 있다고 흔히들 이야기한다.
그런데 오늘 우리는 고개 숙이며 걷는 여행을 하고 있었다.
비에 젖은 길이 미끄럽기도 했지만 1,500m 고지를 지나면서부터는
내 몸을 날릴 만큼의 강풍이 불어오니 그림도, 교과서도 찾아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도 구상나무 군락지를 지나면서부터는 바람이 조금 잦아드니 정신이 들기도 했다.
지금 어디쯤에서 백록담이 보여야하는데..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다 설앵초 군락을 만나니
그 높은 곳에서도 이렇게 예쁜 모습으로 살아가는 이들의 강인함이 참으로 어여쁘다.
갑자기 만난 강풍에 나는 속이 메스꺼워지며 소화불량증상이 나타나
이러다가 내려가지 못하면 어쩌지? 걱정 했었는데
꽃들을 보니 내 엄살이 부끄러워진다.
간신히 윗세오름대피소에 도착했지만 풍경은 역시나 오리무중~~
대피소 안에서 바람에 엉망이 된 매무새를 고치고
간단한 간식을 챙겨먹고 곧바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어리목 방향으로 하산하기 시작했는데
길도 훨씬 완만하고 직 바람을 맞지 않아서 좋았다.
도란도란 이야기하면서 다시 2 시간여를 걸어 내려오노라니
차츰 안개가 걷히는 듯싶다.
걷히는 것이 아니라 낮은 곳이어서 안개구름이 내려오지 않은 것이다.
어리목탐방센터에 도착하니 해가 쨍쨍하다
그곳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택시를 불러 사려니 숲길로 갔다.
그곳에서 모두 만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사려니숲길~~ 이름이 예뻐 퍽 신비스러운 곳으로 상상했었는데
생각보다 그리 장엄하지는 않았다
다만 그 숲의 넓이에 놀랐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숲의 기운을 느끼며 걷기도 하고
숲속에 비치된 의자에 앉았거나 누워서 숲의 기운을 취하고 있기도 했다.
나는 계속 속이 좋지 않아
올케가 사다 준 따뜻한 생강차 한 잔을 마시고 숲속에 놓인 의자에 누웠다.
정말 편하고 좋았다.
일행들은 왕복 두 시간 정도 걷다가 돌아왔다.
나만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오는 일요일 아침 9시 40분 비행기~
행여 기후로 인하여 비행기가 뜨지 못할까봐 걱정했는데
다행이 이륙을 했지만
창밖의 풍경은 온통 구름이 만든 흰도화지 였다.
어느 순간 기류현상으로 비행기가 심하게 흔들리자
모두들 비명을 지르기도 했다. 정말 무서웠다.
이렇게 하루의 제주도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니
일상의 일들이 나를 얼른 붙잡고 졸졸 따라 다니고 있다.
그들을 하나하나 떼어내며 만나는 순간의 시간들이 참으로 소중하다.
우리 뒷산의 때죽나무는 꽃을 주렁주렁 매달고
길섶의 메꽃은 수줍은 듯 반가움을 보이고
노린재나무는 제 몸을 마음껏 부풀리고 있었다.
뒷산과 호수의 풍경들이
나를 반겨주니 참으로 안온한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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