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나무

물소리~~^ 2021. 4. 27. 10:51

▲ 베어나간 오리나무가 뿜어내는 액

   봄꽃들이 마치 마라톤 시작점을 출발하여 달려가듯

   서로의 존재를 의식하면서도

   앞서 가려는 마음을 숨기며 피어나더니

   이제 마악 마지막 결승점 테이프를 끊었을까

 

   이제 오솔길에는 꽃들의 뒤를 이어 나무들이

   아침과 저녁이 다를 정도로 연두 잎을 피우고

   연두를 초록으로 바꾸면서 넘실대고 있다.

 

   그 틈에 덜꿩나무들은

   흰 꽃봉오리를 올리느라 내 작은 발걸음소리에도

   덜컹거리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서 있고

   팥배나무들도 꽃 피울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쯤 되면 나는

   나무들이 뿜어내는 삽상한 기운을 어쩌지 못하고

   우리 조상님들이 부르던 노래를 흥얼거린다.

 

   바람 솔솔 소나무

   십리 절반 오리나무

   칼로 베어 피나무

   대낮에도 밤나무

   죽어도 살구나무

   방귀 뀐다 뽕나무

 

   나무들이 제 모습을 잃지 않고 오랜 세월 변함없이 살아갈 수 있음은

   어쩌면 우리 조상님들의 이런 다정한 마음을 닮아서가 아닐까.

   발맘발맘 걸어오는 완연한 새벽 봄길을

   나는 서붓서붓 걸으며 나무들을 바라보는데

   오리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온다.

 

   이 부근의 오리나무들은

   여름이면 담쟁이덩굴들에 휘감기어 괴기스런 모습으로 보일 때도 있는데

   언제부터인가 담쟁이덩굴을 제거해 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오솔길 가까이서 자라고 있던 오리나무 한 그루가 함께 베어진 것이다.

 

   정리차원에서 베어나간 나무라고 쉽게 생각했었는데

   세상에~ 십리절반 오리나무가 칼로 베어 피나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오리나무는 백가지 독을 푸는 해독제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그 해독제는 한 곳에서만 자라는 자신들을 방어하기 위해

   나무 스스로 만들어내는 성분인데

   우리 사람들한테도 아주 유익한 성분이라고 한다.

 

   오리나무 껍질에는 붉은색 색소를 품고 있는데

   껍질을 벗기거나 줄기에 상처를 내면

   상처가 난 부위가 빨갛게 된다는 것이다.

   나는 이 모습을 보며

   나무는 스스로 제 몸에 빨간 약을 바르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에 미친다.

 

   요즈음 코로나라는 전염병의 횡행으로

   우리 모두 어지러운 세상살이를 하고 있는 요즈음

   나무 스스로 깊은 상처를 치유하느라 뿜어내고 있는

   오리나무의 빨간 진액을 보며

   우리도 우리 스스로

   마음과 바이러스를 치유하는 능력을 지녔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다.

 

   가만히 서 있는 나무에게서 꿈틀거림이 느껴진다.

 

▲ 예덕나무

 

▲ 콩제비꽃

 

▲ 덜꿩나무

 

▲땅비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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