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마지막 오름 오솔길이다.
이곳을 오르면 곧장 내려가는 길을 만나고
오늘 하루의 코스를 다 했다는 뿌듯함이 밀려올 것이다.
경칩이 지난 봄날인데도
산속 풍경은 아직 겨울이다.
모두 제 안에 봄을 품기 위해 열심히 물을 올리고 있어서일까.
산등성의 낙엽들이 촉촉이 젖어 있음이 마냥 정겹기만 한데
내 거친 숨소리를 받아내는 길섶의 굴참나무의 낯선 모습을 발견했다.
튼튼한 줄기 하나가 잘려 나간 것이다.
왜 잘랐지?
동절기에 나무 손질을 하는데 그 틈에 베어진 듯싶다.
잘려나간 줄기의 나이테가 선명하다
어쩜! 나이테 모양이 그냥 둥근 것이 아니라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듯 글씨처럼 보이는 것이다.
大 자 같기도 하고
太 자처럼 보이기도 했다.
나무는 비록 제 몸이 잘려 나갔지만
큰 뜻을 품고 크게 자라고 있었다고 말하는 듯싶었다.
나이테 한 줄마다에 나무의 생성과 성장이 새겨져 있을 터,
한 자리에 서서 움직일 수 없는 몸이지만
땅에 의지하여 하늘을 우러러보고
햇빛으로 영양을 채우고, 달빛으로 곱게 다듬은 곡선이 참으로 정갈하다.
우주를 품은 나이테가 날카로운 톱날에 놀랐을까
그만 커다란 협곡을 만들고 제 안의 한을 그려내고 있었으니
나무의 큰 (大) 뜻이 오롯이 내 안에 전해진 이른 아침 시간이었다.
'단상(短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상처를 스스로 치유하는 나무 (0) | 2021.04.27 |
---|---|
봄길을 걸으며… (0) | 2021.03.19 |
까끔살이 생활여행 (0) | 2021.02.22 |
아, 그리운 아버지 (0) | 2021.01.27 |
한 해를 보내며 새 길을 달리다. (0) | 2020.1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