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 중, 온전한 하루를 얻어
여행길에 나서는 일은 나에게는 복권 당첨만큼이나 큰 행운이다.
주말이면 가능한데 일주일 동안 밀린 가사 일과
무엇보다도 아이들이 오는 날이면 종일 종종거리는 날이 주말이다.
하니 아이들이 주말에 오지 않는 날이면
남편이 제일 먼저 하는 말은 ‘우리 어디 다녀오자’ 라는 말이다.
지난 17일 토요일이 그러했다.
섬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는 남편이
신안의 ‘가보고 싶은 섬, 기점 소악도’ 라는 tv 프로를 보았나 보다
그곳에 다녀오자며 준비를 하라고 하니…
일찍이 울 언니가 다녀왔다는 이야기에 부러운 마음으로
나는 언제나 가볼까 했는데 마침내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전남 신안군에는 1004개의 섬이 있어
천사의 섬으로 불리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얼마 전 천사대교 개통도 있었으니
많은 섬은 이제 관광자원으로 몫을 톡톡히 하고 있다.
1004개의 섬 중 썰물 때면 드러나는 노둣길로 이어지는 작은 섬들이 있으니…
대기점도, 소기점도, 소악도, 진섬이며
그에 썰물 때면 걸어갈 수 있는 딴섬까지 모두 5개의 크고 작은 섬이 이어진 곳이다.
그냥 섬이었을 뿐 별 볼일이 없었던 곳이었지만
단 하나, 썰물 때면 노둣길로 섬들이 이어지고 있는 특별함이 있었다.
그 특별함은 지자체에서
40억 원을 지원하는 ‘가보고 싶은 섬’ 사업 공모에 덜컥 선정되게 하였다.
병풍도의 새끼 섬들이었는데 덩치가 큰 병풍도는 빠지고
자잘한 섬 4개가 당첨되고 나서부터
기획자들의 노력으로 섭외하여 참가한 예술가들은 자신들의 예술적 감성을 불러
네 개의 섬을 잇는 12km의 길에 예수의 12사도를 상징하는
12개의 작은 예배당을 짓고 그 예배당을 찾아 걷는 순례길을 만들었으니
방랑자(섬)가 순례자가 되었다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스페인의 산티아고처럼 우리나라 ‘신안의 섬티아고’ 라 하는 연유이다.
스페인의 산티아고 길은 우리 누구나의 염원이 아닐까
그 염원을 우리나라의 섬티아고에서 조금이나마 풀 수 있다니
꼭 가보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소원을 풀었다.
노둣길은 물이 빠지면 옆의 섬에 가기 위해
주민들이 갯벌에 돌을 던져가며 만든 징검다리였는데
지금은 그 위에 콘크리트 포장을 하여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정도의 길이지만
섬 주민들은 편리하게 다닐 수 있는 길이라고 한다.
이 길들은 물이 들어오면 바닷물에 잠기어 다닐 수 없지만
썰물 때만 건널 수 있는 길인 것이니 물때를 잘 알아보고 가야 한다.
17일의 물때를 알아보려니 기점소악도의 물때는 나와 있지 않아
옆 병풍도의 물때를 참고 해보니
오전 7시 40분부터 오후 2시 46분까지 간조(썰물)시간이었다.
하니 늦어도 2시까지는 걷기를 마쳐야 했기에
우리는 6시 50분에 출발하는 첫배를 타기로 하고 집에서 새벽 4시에 출발했다.
이곳 섬의 작은예배당은 한 종교인만을 받아 주는 곳이 아닌
각자 믿음의 마음으로 자유스럽게 찾아 오는 곳이기에
나는 섬의 하늘과 갯벌 빛으로 안내판을 만들어 부제의 뜻을 새기며
나만의 믿음으로 걷고자 했다.
물론 작은예배당의 건물 모습과
한 사람 정도 들어갈 수 있는 내부 공간의 기도장소도 중요하지만
다음 작은예배당을 찾아 걸으며 만나는 풍경들의 감흥이 만만치 않았으니
하나하나 올려 보려 한다.
우리가 내릴 곳은 대기점선착장이다.
소기점을 지나자 나는 뱃전으로 나왔다.
배가 선착장에 닿기 전, 베드로의 집 예배당이 멀리 보인다.
보이는 모습만으로도 신비하다
아무것도 없는 망망대해에
진한 푸른빛 지붕과 눈부시게 흰 회벽 건물은그대로 한 폭의 수채화였다.
예배당과 옆의 작은 화장실이 예뻤고
순례를 시작하며 치는 작은 종이 앙증 맞았지만
배에서 한꺼번에 내린 사람들의 북적거림으로
제대로의 모습을 담을 수 없어 시작 종을 한 번 땡! 치고
멀리 걸어와 조금 높은 곳에 올라 길게 이어진 노둣길과 함께 작은예배당을 바라보았다.
이른 아침 섬 선착장의 고요함은 사람들의 들뜬 목소리도 삼켜 버린다.
이제 2번 안드레아의 집의 찾아 순례길을 걷는다
순례길은 1번 부터 시작해도 되고, 12번 부터 시작해도 되는 양방향이다.
물때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이다.
세 번째 야고보의 집을 찾아가는 순례길에서~
네 번째 요한의 집으로 가는 순례길에서~~
다섯 번째 필립의 집을 찾아가는 순례길에서~~
여섯 번째 바르톨로메오의 집을 찾아가는 순례길에서~~
바다 위에서 하루종일 하늘과 구름과 바람만을 바라보는 이 섬들에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찾아와
마음의 평안을 가질 수 있는 곳이라는 주제로 만들었다는 순례길은
기독교인들에게는 교회이기도 하고,
천주교인들에게는 성당이기도 하고,
불교인들에게는 암자이기도 한 작은 예배당 열두 개를
우리나라를 비롯한 세계적인 예술가들의 혼으로 지었으니
누구나 고요히 묵상하면서, 걸으면서
자신만의 특별한 장소로 남겨진다면 참으로 훌룡한 순례길이지 아닐까.
일곱 변째 작은예배당 부터는 다음 편으로 이어집니다.
'마음따라 발길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연대도 . 만지도 (0) | 2020.12.14 |
---|---|
방랑자가 순례자가 되는 길, 섬티아고(2) (0) | 2020.10.23 |
들꽃 길, 가을에 젖어 오르다 (0) | 2020.10.03 |
수중 공주(樹中公主) 자작나무 숲에서 (2) | 2020.09.21 |
선마을에서 마음의 위로를 (0) | 2020.09.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