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마을에서 인제 자작나무숲까지
1시간 30분정도 소요 된다는 내비의 안내를 열심히 따라 나섰다.
오후 3시까지 입장할 수 있으며
6시까지 이용할 수 있다고 하니 부지런히 다녀야 했다.
새벽에 비가 내렸으나
인제 쪽으로 갈수록 바람만 있을 뿐 비는 내리지 않아 안심했지만
이곳에 와서 느낀 것은 지형적인 특색 때문인지 날씨 변화가 변덕스럽다는 것이다.
원대리 주차장은 토요일인데도 한산하다. 코로나의 영향 때문이리라.
주차장에서 자작나무숲까지 3.8km로 1시간여를 걸어야 한다니
왕복 2시간 30내지 3시간을 이곳에서 보내야 한다.
11시 20분경부터 걸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약간 쌀쌀한 기운이었지만 걸으면 괜찮아 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우산도 챙기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조금 걸어 안내소에 이르니 마스크를 써 달라는 당부와
코로나 영향으로 일방통행을 해야 한다며 왼쪽으로 들어가라고 안내해 준다.
입구에는 자작나무로 여러 조형물을 만들어 놓고 우리의 관심을 이끌고 있다.
초반의 길은 평평하고 알맞은 굴곡으로 조금은 단조로웠다
걸음이 늦은 남편에 맞춰 나는 천천히 짙푸른 숲속 길을 걸으며
이쪽저쪽 해찰하느라 내 눈은 오랜만에 호강을 한다.
보고 싶었던 야생화들이 보이면 쪼그려 앉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계곡에서 앙증맞은 폭포를 이루며 흐르는 물소리도 듣노라니
무언가에 쫓기듯 살아온 지난 8개월여의 답답함을 보상 받는 것 같다.
숲길은 바람이 없는 듯싶은데
예쁜 꽃들을 만나 사진을 찍으려고 하면 바람이 나타나곤 한다.
하늘이 맑았다 흐렸다하니
긴 옷을 입고 나서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늘하다.
얼마쯤 걸었을까.
자작나무숲까지 1.1km 남았다는 이정표가 보였는데
그곳부터는 완전한 등산 수준이었다.
빨리 자작나무를 보고 싶다는 조바심이 지루함을 앞세운다.
남편은 천천히 오르겠다며 먼저 올라가서 마음껏 사진도 찍으며 구경하란다.
계곡에서는 거침없이 물이 흘러내리며 나를 응원한다.
비 끝의 숲속 길 은 질펀했다
땅을 바라보며 요리저리 피해 걷노라 숨이 제법 가빠지고 있는데
쭉쭉 뻗은 나무줄기들이 보인다. 고개를 들어보니 아! 자작나무 숲이다.
참으로 신비하다 어떻게 저렇게 곧게 자라는지…
어떤 성분으로 이토록 하얀 껍질을 유지하는지…
하얀 피부는 짙푸른 나뭇잎 색을 끌어내려 버무리는 듯
부드러운, 연한 녹색으로 빛나게 하였다.
놀랍다. 이 신비스러움이라니~!
무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곳이 해발 800m라고 하니
이 높은 곳에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꼿꼿하게 살아오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이 모습을 얼마나 만나고 싶어 했는지 모른다.
나무 하나하나를 바라보며 계단을 올라 자작나무 곁으로 다가선다.
나무는 나를 수줍음 머금고 환영하는 듯, 가녀린 모습으로 조신하다.
영화 닥터지바고에서 자작나무 숲을 보았던가
그래서인지 순결한 사랑과 자작나무의 이미지는 참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정상부근에 인디언 집도 지어놓고 정자도 있고, 조망대도 있었다.
그 주변으로 여러 갈래의 길이 있었다.
올라온 사람들이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는데 나는 남편을 기다리며
생태공원 코스도 들어가 보고
치유 코스에서 나무에 기대어 보기도 하고,
탐험 코스에서 수피를 만져보기도 하였다.
우리가 배웠던 정비석의 산정무한(山情無限)에서는
자작나무를 나무 중의 공주로 표현했다.
‘비로봉 동쪽은 아낙네의 살결보다도 흰 자작나무의 수해(樹海)였다.
설 자리를 삼가, 구중심처(九重深處)가 아니면 살지 않는 자작나무는
무슨 수중 공주(樹中公主)이던가!’
산정무한이라는 제목만을 더 중히 여기며 배워놓고서는
오늘 이렇게 깊은 내용을 새삼 음미하게 되다니~~
뒤늦게 올라 온 남편 역시
힘들다는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나무를 바라보며 연신 감탄만 할 뿐이다.
비가 긋기 시작한다. 비 피할 곳이 없으니
뽀얀 피부의 수중공주를 뒤로하고 내려오는 길~
불에 탈 때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고 해서 자작나무라 불리는데
오늘 나를 맞이한 자작나무는 비를 맞으며 조용히 손을 젓고 있다.
안녕~~ 자작나무야
내려오는 길은 임도를 따라 왔다.
자작나무 숲에서 조금만 내려와도 숲속에는
완전히 다른 수종들이 자리 지키며 살아가고 있었다.
어떻게 저 나무들은 자작나무 자리를 침범하지 않고 지켜주며 살아가고 있을까
세찬 비는 아니었지만
1시간 내내 비를 맞으며 걸어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3시가 다 되어간다.
배도 고프고
겉옷에서는 빗물이 줄줄 흘러내렸지만 마음만은 더 없이 충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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