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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따라 발길따라

들꽃 길, 가을에 젖어 오르다

물소리~~^ 2020. 10. 3. 22:11

▲ 2014년의 노고단 : 노고단 정상이 공사중으로 어수선하여 옛 사진을 가져왔다.

 

   추석이다.

   올해는 여느 때와 달리 간단히 보내자는 명절이니

   큰집 행 없이 우리 식구끼리 간단히 보냈다.

 

   그래도 추석 상차림은 해야 하니 몇 가지 음식을 준비하긴 했다.

   송편과 과일은 기본,

   아이들이 좋아하는 한우 갈비찜을 거금을 들여 준비했는데

   갈비찜 맛이 좋다며 아침 식사 때 인기였으니 다행이다.

 

   작은아들이 어제저녁에

   오늘 추석에 드라이브하자며 장소를 정하라는 말을 듣는 순간부터

   내 머리에는 줄곧 노고단만이 맴돌고 있었으니

   아침 식사 후 지리산 노고단에 다녀오기로 하였다.  순전히 꽃 때문이었다.

 

   작은아이는 회사인이라 움직임에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는데

   교사인 큰 아이는 코로나 때문에

   자신의 행동반경에 아주 예민해져 있는 터, 가지 않겠다고 한다.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란다.

   은근슬쩍 추석 용돈 봉투를 건네더니

   갈비찜 남은 것을 싸 달라고 하여 담아주니 냉큼 들고 제 거처로 간다.

   큰 아이가 떠난 후, 우리 셋은 간단한 먹을 것을 챙겨 차에 올랐다.

 

▲ 주차장에 들어가지 못한 차량들의 행렬

   지리산 노고단은 해발 1,507m 이다

   성삼재 주차장(1,100m)에서 출발하면 왕복 3시간에

   부담 없이 다녀올 수 있는 곳일 뿐만 아니라

   그곳에 이르면 갖가지 야생화들을 만날 수 있으니 마냥 들뜨는 마음이다.

   물론 지금은 시들어 가는 꽃이 더 많은 시기이지만

   시들어 가는 꽃들의 자태가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곳 노고단은

   천상의 화원이라 불릴 만큼 야생화의 천국이다.

   2014년에 노고단을 올랐으니 6년 만의 행보다

   출발할 때에는 흐린 하늘이었으나 차츰 안개가 걷히며 맑아지고 있다.

 

   구례에서 천은사 입구까지는 그래도 평탄한 길이다

   천은사 입구서부터 성삼재 주차장까지는 굽이굽이 돌아 오르는 길로

   차 안에 앉아서 오르는데도 숨이 찬다.

   스쳐 지나는 산등성의 울창한 숲은

   자동차의 숨 가쁨이 안타까운지 온순하게 가을빛을 머금고 조심스럽다.

 

▲ 만복대 입구의 쑥부쟁이

   시암재를 지나면서부터는 도로가에 차들이 주차되어 있으니

   아마도 성삼재 주차장은 지금 시간, 만차가 되어 입장할 수 없을 거란 예감이 들었고

   아닌 게 아니라 주차장 입구에 도착하니 안내원이 우리 차량을 아래로 유도한다.

   정령치 가는 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서는 차들의 행렬 끝에 간신히 주차했다.

   아마 1km는 족히 내려온 것 같다

   우리는 다시 1km를 걸어 성삼재 주차장에 도착한 후 노고단에 오르기 시작했다.

   오전 11시 40분이다.

 

▲ 정영엉겅퀴

 

▲ 참취

 

▲ 성삼재 주차장에서 노고단 오르는 길

   추석 연휴를 맞아 많은 사람이 노고단을 찾아 오르고 있었다.

   이 공기 좋은 곳을 찾아와서도

   마스크와 손 씻기의 기본 방역을 해야 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했지만

   사붓사붓 걷노라니 어느새 내 마음은 가을 길에 젖어 마음이 충만해진다.

 

   높은 가을 하늘과 쑥부쟁이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환상의 짝궁을 이루며 가을의 대명사로 군림한다.

   길가 곳곳에 보랏빛 꽃이 있는 가을 길~~ 마음이 한없이 맑아진다.

 

▲ 열매 맺은 노루오줌

 

▲ 이질풀 : 촛대처럼 생긴 열매집이 멋있다.

 

▲ 장대여뀌

 

▲ 까치고들빼기

 

▲ 투구꽃

 

▲ 큰뱀무

 

▲ 꼬리풀

   노고단 오르는 길가에는 시든 모습의 꽃들이 간간이 눈에 뜨일 뿐이었지만

   자신의 낡은 모습에 닿는 내 눈길이 부끄러운지

   자꾸만 숨어드는 그들의 모습은 영락없는 가을이다.

 

▲ 무넹기 전망대에서 : 멀리 섬진강 물줄기가 S자로 굽어 흐르고 있다

이 풍경을 바라볼 수 있는 곳은 ‘무넹기’ 라는 곳인데

코로나로 오른쪽 전망대의 출입도 막아놓고 있었다.

 

지명의 유래를 살펴보면 1929년 구례군 마산면에 큰 저수지를 준공하였으나

유입량이 적어 만수를 하지 못해 가뭄이 들었다고 한다

마을 주민들은 그 이듬해인 1930년에 해발 1,300m 고지 노고단에서

전북으로 내려가는 물줄기 일부를

구례 화엄사계곡으로 내려올 수 있도록 유도수로 224m를 개설,

유수량을 확보하여 지금까지도 매년 풍년 농사를 이루고 있다고 한다.

하니 물을 넘긴다는 말의 뜻에서 ‘무넹기’ 라고 불리고 있다고 한다.

 

실제 화엄사로 내려가는 작은 계곡의 물줄기에서

사람들이 손을 씻기도 하면서 시원하다고 연신 즐거워하고 있었으니~~

 

 

▲ 꽃향유

 

 

▲ 노고단 대피소에 이르는 쉬운길과 돌길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하여 간단한 요기를 하고 나니

   남편은 여기까지만 오르겠다고 하며 우리 둘이 정상까지 다녀오라고 한다.

   지천에 내려앉은 가을빛에 남편의 마음도 흡족한 듯하니

   아들과 나는 걱정 없이 계속 산을 오른다.

 

▲ 노고단 대피소

 

 

▲ 물봉선

 

▲ 노고단 삼거리

 

▲ 지리산 종주 시작 점

 

▲ 노고단 출입구

   드디어 노고단 삼거리에 도착했다.

   왼쪽 노고단고개 저곳을 통과하면 지리산 종주 길이 시작된다.

   우리는 오른쪽 노고단 들어가는 입구에 이르러

   탐방 예약하고 받은 QR코드를 인식하니 막대 문이 풀어지며 우리를 통과시킨다.

   생태보존을 위해 탐방객 예약을 해야만 오를 수 있는 곳으로

   그만큼 자연 생태가 좋은 곳, 노고단이다.

 

 

▲ 반야봉

   들어서서 바라보이는 첫 번째 풍경은 반야봉이었다.

   저곳의 높이는 1,732m로 지리산에서 천왕봉(1,915m) 다음으로 높다.

   6년 전,  2014년에 저곳을 올랐었다.

   두둥실 흰 구름이 드리운 그림자를 받아 한층 편안하게 보이는 반야봉은

   다시 한번 오르고 싶은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구름과 한 몸이 되어 나를 향해 가득히 달려든다.

 

▲ 멀리 보이는 노고단 정상

 

▲ 물매화

   반야봉과 인사하고 몸을 돌려 계단 길을 오르는데 세상에~~

   오른편 계단 아래 풀숲에서 물매화 한 송이가 나를 반긴다

   얼른 눈높이를 낮추며 반색하니

   넘 늦게 왔다며 살짝 토라진 모습이다. 보름 전에만 왔어도

   제 고운 모습을 여한 없이 보여주었을 텐데…

 

▲ 둥근이질풀

 

▲ 이 넓고 평화롭고 고운 절경을 어느 붓으로 그릴 수 있을까

 

▲ 구절초

 

▲ 만복대 : 그냥 쉬었다 가는 것만으로도 만복을 누리는 것이라고...

 

 

▲ 산오이풀

 

▲ 수리취

 

 

▲ 구름 그림자를 벗어난 반야봉

 

▲ 구름은 제 그림자로 산을 색칠하며 입체감을 나타내고 있다.

 

 

▲ 산오이풀

 

 

 

▲ 노고단 정상에서

 

▲ 웅크리고 비비고 포개어 서있는 산. 산. 산.

 

▲ 물매화

 

▲ 내려가는 길 : 울 아들이 온갖 것에 해찰하느라 자꾸만 뒤처지는 나를 기다리고 있다.

 

▲ 구절초

 

▲ 쉬운 길

 

▲ 과남풀

 

▲ 쑥부쟁이 일까 구절초일까

쑥부쟁이와 구절초를

구별하지 못하는 너하고

이 들길 여태 걸어왔다니

나여, 나는 지금부터 너하고 絶交다!

 

안도현 / 무식한 놈

 

 

▲ 참빗살나무

 

▲ 구절초와 쑥부쟁이의 어울림

 

▲ 마지막까지 온 몸을 불사르며 ~~: 털중나리

   

   봄, 여름에 피어난 꽃들은 이미 열매를 맺어가고 있는 시기에 뒤늦게 피어난 가을꽃,

   그래서일까 가을꽃은 자신을 치장하기보다는

   빨리 씨앗을 맺고 익히기 위해 정열을 불사른다.

   시들은 잎에 의존하기도 하고.

   조금이라도 햇살 가득한 곳에서는 마음껏 볕을 마시느라

   제 모습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서 있다.

   숙살(肅殺)이라고 하였든가…

   가을 기운에 제 이파리를 말려가며 영양분을 열매에 모으기 여념이 없으니

   이 높은 곳에서 살아가는 가을꽃들의 허름한 모습이 더욱 예뻐 보이는 까닭이다.

 

 

 

 

 

노고단(老姑壇)은 신라화랑들이

이곳에서 수련을 하면서

탑과 단을 설치하고 천지신명과 노고할머니께

나라의 번영과 백성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매년 풍양절(음력 9월 9일)이 되면

국태민안과 세계평화를 기원하는 산신대제를

갱정유도에서 봉행하여

노고단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 안내문 -

 

 

올해 풍양절에는

코로나가 물러나고

나라의 경제가 회복되기를 기원했으면 좋겠다는

나의 작은 기원을 올리며 노고단을 내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