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림산방과 신비의 바닷길을 지나 남도석성으로 향했다
고려 원종 때 삼별초군이 몽고군과의 항쟁을 위해 이곳에 쌓은 성이라고 전한다
기록상으로는 이 성이 1438년 이후에 세워졌을 거라고 추정했지만
고려 때 쌓은 성으로 말하기도 한다.
이곳에서 삼별초의 배중손 장군이 성을 쌓고
여몽연합군에 항쟁하다 사망했다는 주장인 것이다.
城(성)의 사전적 의미는
"주거·군사·정치상의 목적을 가지고 선택된 지형과 거기에 설계된 방어적 구축물" 이다.
하니 우선적으로 떠오르는 이미지는 방어 장벽이다.
남도석성은 평지성인 점에 비추어보면 순천의 낙안읍성과 비슷한 형태로 보이니
방어용 성이 아닌 행정적인 성 같은 느낌이 강했다
하지를 하루 앞둔 여름날의 오후에 찾은 남도석성 앞에 이르니
세월의 무게를 껴안은 돌의 묵직함이 나를 위축케 한다.
이리저리 나를 돌려세워 만나게 한 성문에는 아무도 없었다.
문화안내원도 없었고 성 밖 주민들의 도로공사 소리만이 가득하다
성큼성큼 성 안으로 들어서니 아! 펼쳐지는 성안의 풍경은 비현실적이었다.
밖은 공사 소리에 시끄러웠는데
침묵으로 둘러싸인 성안의 아늑한 분위가 나를 침잠케 하였던 것이다.
마치 추운 겨울 날 따뜻한 방 안으로 들어온 듯싶은 그런 안도감이 밀려온다.
텅 빈 곳에 유독 잘 정돈된 기와집 서너 채가 있으니
옛 관아를 복원해 놓았다는 설명이 있었다.
출입문으로 들어 와 남문으로 굽은 성을 따라 돌아 나오니 단운교가 보인다.
단운교는 남문 밖을 흐르는 세운천을 건너는 다리로
한눈에 보아도 다리를 쌓은 돌들의 모습이 예사롭지 않다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그대로 사용하여 1870년 경에 만든 다리라는데
거꾸로 박아 놓은 듯싶은 저 돌들은
어떻게 빠지지도 않은 단단함으로 수 백 년을 지탱하고 있을까.
큰 길을 건너 바로 만나는 쌍운교는 세운천이 바다를 만나기 바로 직전에 있었다
쌍운교 와 단운교는 전라남도 문화재자료 제215호로 지정되어 있으니
내 눈에도 예사롭지 않게 보이니 단연 문화재가 되어 있음은 당연한 것이겠지.
쌍운교는 단운교가 세워진 60년 후,
1930년도에 단운교의 방법으로 주민들이 세웠다고 한다.
울 어머니 보다 1년 늦게 태어난 다리로구나
다리는 이렇게 본연의 모습으로 세월을 지나며 가치를 발휘하고 있는데
울 어머니는 자꾸만 기억이 없으시고 흐릿해지시니
자연과 인간은 영원히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꼭 방어 산성이 아니더라도
돌담을 만나면 나는 그냥 친근함으로 와락 끌리곤 한다.
우리 어렸을 적 생활근거지에서 자주 만났던 이유도 있지만
돌이라는 사물의 질감이 안겨주는
따뜻함과 자연스러움에 한없는 매력을 느끼기 때문이다.
돌담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담을 이루기 위해 모여 있는 돌들은 자신들이 지닌 개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담의 기능인 가르기에 충실할 뿐 아니라 건축적 미학성을 함께 지니고 있다.
자연성과 이타적 조화를 이루며,
건축적 가치를 추구하며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느낄 때,
그렇게 친근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돌, 바위 자체가 자연에서 나온 것이면서
건축을 만나면
스스로를 감추며 어울려 사는 이타적 조화의 대표적인 자연물이기에
나는 돌담이나 산성을 만나면 그냥 그렇게 좋아진다.
이제 진도 답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 세방낙조를 지나야 한다.
길어진 낮 시간 덕분으로 해지는 모습을 볼 수 없지만
그나마도 기울기 시작한 햇살에 분위기를 느껴보며 이별을 고한다.
내가 오늘 느낀 것 중 하나는 삼별초 항쟁도 명량대첩도 실제 상황을 만나고 나니
책으로 배운 것보다도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며
외우지 않고도 절로 우리 역사의 길이 환히 보이니
지금의 이 느낌을 학창시절에 느꼈다면 100점만 맞았을 것 같았다.
진도 사람들에게는 배중손 장군의 의미가 매우 컸다고 한다.
몽고군에게 패한 뒤 삶의 고통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후 조선시대에 왜구의 침입이 빈번해지자
조정에서는 공도정책을 펴서 섬을 모두 비우게 했고
100년 가까이 유랑생활 끝에 진도에 돌아와 정착했던 역사 속에서 빚어졌던
그들만이 지닌 고유 정서가 오늘날의 진도를 예의 도시로 거듭나게 했으니,
진도씻김굿, 진도아리랑, 강강수월래 등 애환 어린 문화가 남아 있는 곳, 진도였다.
진도무형문화재인 진도씻김굿의 전수자 송순단씨가
바로 트롯 가수 송가인의 어머니이시니
음기가 센 진도가 예의 고장임을 증명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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