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산책시간에는 늘 같은 곳을 같은 방향으로 돌게 되는데
요즈음에는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다.
그렇게 걷다 만나는 호숫가 야트막한 둔덕에 잘 가꾸어 놓은 묘가 있고
묘 주변에서 타래난초가 꽃을 피우는 철이라는 예상으로
좀 더 밝은 시간에 꽃을 보려고 그렇게 반대 방향으로 돌고 있는 것이다.
며칠을 그렇게 돌면서 행여 꽃을 피웠을까하는 마음으로
기웃거려 보았지만 좀처럼 꽃을 만나기 어려웠다.
엊그제 비가 오락가락하는 날, 산책을 하면서 그 곁을 지나는데
어머! 옅은 분홍빛 무엇이 보이지 않는가.
얼른 묘 가까이 가 보니 어쩜~ 타래난초가 꽃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얼마나 반가운지 우산을 받을 만큼의 비니 아니어서
우산을 팽개쳐두고 열심히 꽃을 들여다보았다.
실타래처럼 나선형으로 오른쪽일까 왼쪽일까 타고 오르며
앙증맞은 분홍 꽃이 피어나는 모습을 보면 참으로 신비함이 가득할 뿐 아니라
꽃을 피우는 자태부터 남다르니 귀한 꽃 같은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
綏草 타래난초는
묘를 가꾸는 입장에서는 귀찮은 잡초같이 여겨질 수도 있으니
해마다 벌초를 해 놓은 추석 즈음에는
타래난초가 없어 졌을 거라고 혼자 애석해 하기도 하는데
타래난초는 용케도 때가 되면 여전히 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설에 따르면
식물들은 땅속을 투과하는 약한 빛을 감지해 자신의 위치를 감지한다고 하니
작디나 작은 들풀들도 과학적인 삶을 영위한다는 사실에 임하노라면
생명의 신비함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내가 해마다 만나는 타래난초 모습이
해를 거듭할수록 부실해지고 있어 안타깝지만
이렇게 만난 순간 안겨주는 기쁨은 최고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