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친구가 자연산 굴을 가져오셨다. 그 분은 시내에 거주하시지만 원래 고향이 섬(계화도)인지라 자주 왕래하면서 고향집을 관리하신다고 하였다. 이참에도 그렇게 섬에 가서 채취한, 제법 묵직한 무게의 자연산 굴을 가지고 오셔서 굴이 입을 벌리면 이렇게, 이렇게 손질하라고 알려 주었지만 나는 건성으로 알았다고,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가리비인가? 하는 의아심을 가질 정도로 내가 알고 있는 굴의 모습과 많이 달랐다.
퇴근하여 집에 와서 우선 서너 개만 굴을 까서 무국을 끓이고 싶어 손을 댔지만 세상에~~ 굴은 절대 입을 열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찌면 입이 벌어질까 싶어 껍질을 깨끗이 씻어 찜통에 넣고 쪘는데 아니! 굴은 더 단단히 입을 다물어 버린 것이다. 별의별 도구를 다 들이댔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할 수 없이 망치로 때려 열고 속살을 채취하여 국을 끓였다. 구수하니 참 맛이 좋았다. 내 입속으로 들어간 굴들이 모든 걸 포기하고 제 지닌 맛을 마음껏 풀어낸 듯싶었다. 나머지는 잠시 놓아두고 입을 벌리면 손질하기로 하고 우선 식사를 마쳤다.
설거지를 마치고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갔다. 과도, 펜치, 망치를 곁에 두고 살짝 벌린 입안에 과도를 밀어 넣고 속살과 껍질부분의 단단한 이음새를 칼로 잘라내면 속살과 이탈된 껍질 쪽이 더 벌어지는 것이다. 그때, 워낙 힘이 세서 내 손 힘으로는 껍질을 열 수 없으니 펜치로 잡고 얍! 힘을 주면 쩍 벌어지면서 온전한 속살을 보여주는 것이다.
손질을 하면서 헤아려보니 35개였다.
23개까지 입이 벌어진 틈을 타서 어찌어찌 해 놓았는데 나머지는 도통 입을 열려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벌어지면 얼른 칼을 집어넣는 순간 굴은 입을 꽉 다물어 버리면서 칼을 함께 붙잡아 버리는 것이다. 어찌나 힘이 센지 칼이 빠지지 않았다. 몇 번이나 그렇게 하다가 급기야 내 왼쪽 엄지손가락을 칼로 베어 버렸다. 힘을 준 칼이 굴 껍질 속을 들어가지 못하고 비켜지면서 내 손을 스친 것이다. 깜짝 놀랐다. 피가 엄청 난다. 얼른 반창고를 붙였지만 자꾸만 피가 배어나오니 그 순간 세 개의 반창고를 바꾸어 붙이노라니 잠잠해진다. 그래도 끝까지 해야 한다.
할 수 없이 껍질 끝을 망치로 때리고 펜치로 꺾으면서 구멍이 나면 다시 칼을 집어넣어 활짝 여는 방법으로 나머지 모두를 손질하고 나니 밤 9시 30분이 되었다. 손이 얼얼하다.
굴은 어떻게 거친 껍질 안에 이처럼 보드라운 속살을 품고 있을까. 속살이 잘 자라도록 거친 물살을 피하기 위해 바위에 붙어사느라 껍질을 그렇게 바위처럼 거칠게 만들었을까. 이런 굴에게 모정이라는 표현을 한다면 지나침일까? 거친 굴을 손질하며 살아가는 이치의 절묘함을 다시 한 번 느껴본다. 가장 마음에 든 굴 껍질을 세세히 바라보노라니 신기하게도 굴은 자기 집을 예쁘게 장식하며 자신들의 방식대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일찍이 흑산도에서 유배생활을 하던 정약전은 그의 자산어보에 “길이가 한 자 남짓하고 두 쪽을 합하면 조개와 같다. 생김새는 일정하지 않고 껍데기는 두꺼워 종이를 겹겹이 발라 놓은 것 같다. 바깥쪽은 거칠고 안쪽은 미끄럽다“ 고 자세히 기록해 놓았는데 지금 자세히 보니 그의 말이 조금도 틀리지 않았으니~ ‘두 쪽을 합치면 조개와 같다’라는 표현에 진정 동감이다. 그 당시에는 양식업이 없었을 터이니 분명 자연산 굴을 묘사했을 것이고, 지금 나는 자연산 굴을 앞에 놓고 있는 것이다.
이 나이에 자연산 굴 손질이 처음이라니 이, 첫 경험을 언제 또다시 무엇으로 경험하며 살아갈 수 있을지 잠시 생각이 멈칫해 진다. 조금 전 훌렸던 피를 굴은 자신이 지닌 영양분으로 채워 줄 것이니 굴을 험하게 다룬 내가 미안해진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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