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일도 서성항 대합실 위의 케이크 조형물
내가 생일도라는 섬에 관심을 가지게 된 이유는 야생화로 인한 것이었다. 이른 봄 다른 지역보다 훨씬 일찍이 꽃을 피운 복수초, 노루귀, 산자고의 모습을 알려주는 사진들을 볼 때면 꼭 한 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여건이 맞지 않아 마음만 동동 띄우며 지냈던 세월이다.
12월 기념일을 한참 지난 토요일 남편과 생일도를 찾았다. 내가 벼르고 있던 봄은 아니지만 높이가 적당한 섬 산을 오르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기에 이마저 봄을 찾다 기회를 놓칠지 모른다는 마음을 앞세운 것이다.
우리의 계획은 전남 약산도 당목항에서 9시 40분에 출발하는 배를 타는 것이었지만 어쩌나! 근 3시간을 달려 당목항에 도착하니 2분 차이로 배는 이미 뱃머리를 돌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 작은 항의 배 시간도 아주 정확하게 지키고 있었다. 다음 배는 11시 20분~~ 할 수 없이 약산도 일주도로를 드라이브하며 시간을 보냈다. 이제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생일도 서성항에 도착하면 곧바로 백운산 등산을 하려고 했지만 남편의 일정상 오후 3시 배를 타고 돌아와야 하기에 시간이 넉넉지 못하다. 다행히 백운산 중턱의 학서암까지 임도가 나 있다하니 그곳까지 차로 오른 후, 그곳에서부터 백운산을 오르고 나머지 시간을 봐서 용출봉까지 오르느냐 아니면 정상에서 바로 내려오느냐 결정하기로 했다.
▲ 약산도 당목항에서 생일도 들어가는 배를 타기위해 후진하는 차들
▲ 태극기를 휘날리며~
▲ 남편이 찍어 줌
▲ 선실
▲ 흔적 없이 지워지는 뱃길
▲ 양식장 부표들이 그림처럼 떠 있다.
▲ 생일도가 보이네~
완도의 조그마한 섬 생일도는 말 그대로 낳은 날을 뜻하는 生日이다. 섬 주민들의 마음 씀씀이가 아이처럼 순수한다하여 섬 이름을 그렇게 부르고 있단다.
▲ 원래 계획으로는 저 나무 테크를 타고 오르면서 트레킹을 시작해야 하는데
우리는 오른쪽 도로를 타고 씽 달렸다.
당목항에서 생일도까지는 20분 정도의 배를 타면 된다. 배는 적당한 크기의 철부선이었다. 배 정원도 50명이라고 하는데, 더 기다렸다 더 많이 태울 마음은 전혀 없는 듯 배는 정시에 출발했다. 그 바닷길은 온통 양식장의 부표로 가득했다. 바다에도 마치 줄을 그어 놓고 내 것 임을 알리고 있는 것 같으니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받는 이로움의 크기는 도대체 얼마 만큼인 것일까.
우리 집 방만한 선실에 앉을 생각도 아니 하고 그냥 바닷길을 바라보며 가노라니 금세 생일도가 보인다. 백운산이 보이고 선착장 매표소 지붕위에 커다랗게 올려 진 생일케이크가 보인다. 조금은 촌스러워 보이기도 했지만 이곳의 특산물인 미역을 연상하면 그리 낯선 풍경은 아닌 듯싶다. 생일날에 미역국 많이 드세요 하는 뜻으로도 보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초는 왜 6개일까??
나무테크를 올라 생일송을 바라보고 내려와 곧바로 학서암까지 차로 올랐다. 구불구불 차로 오르다 보니 이 길을 차로 오른다는 것은 손해 보는 것 같았다. 내려서 조금씩 오르면서 풍경을 조금씩 마음에 품어보는 일이야말로 이 섬을 찾은 보람이 될 것 같았다. 나는 속으로 내려 올 때는 이 백운산 자락을 휘돌고 있는 임도를 따라 걸어야겠다고 다짐한다.
▲ 생일송
▲ 생일분교
분교앞 도로를 타고 학서암까지 오른다.
▲ 멀구슬나무
섬에 오면 많이 만나는데 이 나무에 유난히 새들이 많이 들락거린다.
▲ 띠풀과 산국
▲ 당산나무
섬 사람들은 당산나무를 바라보며 안녕과 복을 기원한다
▲ 학서암 스님
▲ 학서암 범종각
학서암은 300년이 넘는 내력을 지니고 있는 자그마한 암자다. 우리가 들어설 때는 사람이 보이지 않았는데 이곳저곳 조심스레 구경하다보니 스님이 차로 올라오신다. 여스님이셨다. 우리 보고 자꾸 차 한 잔 하고 가시라고 하는데 정중히 사양하고 부처님께 인사만 드리고 나와 바로 산을 올랐다. 등산로는 학서암 뒤쪽으로 연결 되어 있었고, 남편은 다시 차를 몰고 섬 일주를 한다면서 내려갔다. 호젓한 길에 들어서니 호젓한 마음이 들어온다.
▲ 백운산 정상 오르는 길
백운산 오르는 길 곳곳에 야생화들이 많이 자라는 곳이라 했는데 시기가 시기인 만큼 그 어느 것도 보이지 않았다. 작은 오솔길의 마른 풀들이 그냥 포근했고 잎 하나 달려 있지 않은 나무들이 왜 그렇게 따듯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마음이 한없이 차분해진다. 그렇게 차분한 마음으로 가쁜 숨을 쉬며 소사나무?와 동백나무 사이를 10여분 걸어 오르니 암릉길 능선에 닿았다. 섬 산은 조금만 올라도 거칠 것 없는 바다를 보여주어서 정말 좋다. 이제 정상에 이르는 능선을 타고 걸으며 이리저리 마음대로 해찰 할 수 있으니 정말 좋다.
▲ 너럭바위를 만나고
문득 너럭바위를 만난다. 바위에 올라서니 아! 이토록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다니!! 절로 감탄이 나온다. 저 아래 학서암이 보인다. 암자에 이르는 길과 암자. 그리고 산이 정말로 너무나도 조화롭게 펼쳐져 있으니 그만 바위에 앉아 넋을 놓고 바라본다. 약간 흐릿한 하늘 아래의 바다 위에는 양식장 부표들이 조각품처럼 떠 있고 크고 작은 섬들이 가득하다. 선명한 날씨 아래의 풍경도 좋지만 오늘처럼 조금 가라앉은 날씨 아래의 풍경들은 더 없이 차분하고 얌전해 보인다.
▲ 학서암과 산등성 그리고 바다, 섬
참으로 아스라한 풍경이다.
바다에 떠있는 작은 섬들을 하나하나 헤아리며 바라보노라니 어쩌면 생일도 전체는 이 백운산 하나의 덩어리가 아닐까. 백운산을 중심으로 빙 둘러 마을들이 자리하고 있는 작은 섬, 생일도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항이 있는 서성리, 갯가해변이 아름다운 용출리, 금빛 모래사장의 해변이 있는 금곡리 등 마을들은 각기 제 마을만큼의 빛을 발하고 있으니 하나의 백운산을 끼고 서로 다른 형제(마을)들이 살고 있는 것이라는 섬인 듯싶다.
▲ 소나무도 바다를 바라보려고....
▲ 학서암을 배경으로 셀카놀이
바위에 오래 앉아있다 보니 한기가 든다. 얼른 일어나 학서암을 배경으로 셀카 놀이 한 번 하고 정상을 향해 걷는다. 중간에서부터 오르기 시작해서인지 넘 수월하다. 오르는 길 곳곳의 편안한 너럭바위들은 자연 그대로의 조망처가 되어 주니 몇 발자국 오르고 바다 한 번 바라보고, 또 오르다 바다 한 번 바라보기를 반복해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배 시간이 고무줄 늘어나듯 늘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버무리며 아기자기한 길을 걸어 드디어 정상에 닿았다.
▲ 참으로 평화롭다
▲ 용출봉과 멀리 보이는 청산도
▲ 정상에 이르는 길
▲ 잎 하나 없는 나무들
▲ 쑥부쟁이
▲ 정상에서~
시간을 붙잡고 싶어 일부러 따뜻한 모과차를 한 모금씩 마시며 둘러본다.
내가 지나온 길, 가야할 길들을 가늠해 본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용출봉 까지는 못 오를 것 같다. 테마공원까지 내려가서 그곳에서 임도 따라 걸어야겠다는 생각을 다잡고 일어선다. 이곳 정상에 나의 어떤 모습들이 남겨질까. 몇 번을 뒤돌아본다. 앞으로 가는 길의 돌탑들이 나를 반긴다. 이 돌탑들은 언제 누가 쌓은 것일까. 어찌 이 외로운 길가에 탑을 쌓았을까. 하나하나 다른 모습의 돌탑을 바라보며 걷고 이제는 내려가야 한다.
▲ 금곡리 해수욕장이 보인다.
▲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망대, 그 너머 용출봉 그리고 청산도
▲ 지나온 길
▲ 소박한 돌탑들이 길손을 맞이하고 있다.
▲ 정상을 뒤 돌아 보며
▲ 바우손들도 바다를 향해 자라고 있다
▲ 청미래덩굴의 유혹을 떨치지 못하고
▲ 섬 산의 이정표는 귀엽기도 하다
▲ 테마공원 정자 지붕이 보인다.
▲ 테마공원에는 십이지신 조형물이 있었는데
아마도 생일도라는 이름에 걸맞게 구상한 듯싶었다.
▲ 이 돌계단을 내려서면 임도를 만난다.
테마공원에서부터 임도를 따라 걸었다. 산 속에 갇혀 있는가 싶다가도 한 고비를 돌아서면 금방 먼 바다풍경이 보인다. 곳곳에 초록 그물들이 펼쳐 있는 곳은 다시마를 말리기 위한 곳이란다. 생일도 주민들의 가난을 벗어나게 해 준 다시마란다. 경사 급한 임도를 만나면 뒤로 걷기도 하면서 그렇게 40여분을 걷고 보니 용출리에 닿았다. 아니?? 남편을 금곡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남편에게 전화하니 이쪽으로 오겠다고 한다.
▲ 팔손이 나무가 허전해 보이네~
▲ 줄고사리
▲ 생일도의 누리장 나무열매는 수더분하다
참 예쁘게 익어가는 열매인데..
▲ 사위질빵의 갓털
▲ 다시마를 말리기 위한 장소
▲ 용량도
▲ 구실잣밤나무 군락지
▲ 먼나무
▲ 띠풀과 억새의 고운 모습
그 짧은 시간 동안 잠깐 해변에 내려 섰지만 유명한 장소를 마음 놓고 걷지 못하고 나를 태우러 온 차에 올랐다. 그래도 해변가의 구실잣밤나무 군락지를 지나고, 가로수로 멋진 자태를 뽐내는 먼나무도 보았다. 생일분교 앞 당산나무도 보고 생일송을 만나러 다시 언덕에 올랐다 내려서니 서성항이다.
아침에 조금 더 서둘러 9시 40분 배를 탔더라면 처음 계획대로 섬의 곳곳을 만날 수 있었는데... 하는 아쉬움이 짙게 남았지만 섬 산 정상을 올랐다 내려온 것으로 만족하며 애써 아쉬움을 달래본다.
▲ 3시 배를 타기위해 다시 서성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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