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백학봉, 쌍계루의 연못 반영 풍경
(백양사 백암산)
올해도 어김없이 수능한파가 찾아왔다. 여태 예전과 달리 높은 기온을 보이던 11월의 날씨가 수능 하루 전날 갑자기 비를 내리더니 수능일 아침 영하권으로 떨어진 것이다.
어쩌면 수능 일을 맞아 긴장 상태에 있는 수험생들을 각별히 챙겨 주라는 의미일지도 모르겠다. 비행기마저 땅위에서, 하늘의 구름위에서 이착륙을 못하고 맴을 돌면서 기다려주는 국가적인 대사일인 것이다. 12년간 이 한순간을 위해 정진해온 수험생들에게 최선을 보여주는 마음은 아무리해도 지나침이 없을 것이니 나는 이날이 되면 그냥 뜻 모르게 마음이 애잔해지곤 한다. 나는 이제 수능을 치루는 수험생이 없는 나이가 되었지만 해마다 이날이 되면 각별한 마음이 되곤 한다.
▲ 낙엽길을 걷는 등산객들
우리 둘째 아들은 큰 아들과 달리 신경을 써주지 못하고 성적에 대한 관심도 비교가 될 만큼 챙겨주지 못한 생활을 했었다. 그러다 아이가 고 2가 되던 어느 날, 나는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일을 하고 있다는 핑계로 그저 나 위주로 생활만 하면서 아이를 위한 그 어느 정성도 보이지 않고 있음에 깜짝 놀라는 마음이 들었던 것이다.
종교적인 믿음도 없는 나는 그 무엇으로 정성을 모아 줄까 하는 고민을 하다가 울 아파트 뒷산을 이른 아침 매일 한 번씩 올랐다 내려오면서 내 정성을 보여주기로 작정 했던 것이다. 하여 아이가 고2가 되던 11월부터 고3이 된 11월 수능 전까지 365번 산을 다녀오자고 다짐했고 실천에 들어갔다. 못 가는 날도 있었지만 그런 날은 일요일에 한 번 더 다녀오면서 수능 전날까지 365번을 채웠던 것이다. 물론 그 누구한테도 말하지 않고 나 혼자만의 다짐이었고 실천이었다, 어쩌면 내가 좋아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을 택한 엉터리 정성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 해 수능일이 하필이면 아이의 생일이었다. 미역국을 끓이지는 않았지만 생일과 미역국은 자동 세트였으니 그 부담감 또한 만만치 않았으니… 나는 얼른 미역의 미끄럼을 타고 합격 안으로 쭈욱 들어가기를 혼자 기원했었다.
▲ 약사암에서 ▼
또 하나는 교수인 울 남동생이 지금은 아니지만 몇 년을 계속 수능 출제위원이 되었던 것이다. 수능일 한 달 전, 동생이 떠나기 전, 어머니께 수능 출제 들어갑니다 하고 인사하고 동생이 집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어느 곳으로 가는지, 어디에 있는지를 한 달 동안 아무도 모르고 있다가 수능 끝나는 시간에서야 전화를 받고 안도 했던 기억들이 선명하니 남아있으니 지금까지도 수능일이면 늘 관심이 쏠리곤 한다.
▲ 계단길을 수 놓은 단풍잎
▲ 고목에 떨어진 단풍씨앗이 싹을 틔웠을까
분재처럼 자라고 있었다.
▲ 멀리 장성호가 보인다.
▲ 고목도 풍경을 이루고....
▲ 여기서부터 2.2km 걸어야
정상 상왕봉(741m)에 도착한다
수능 일이었던 어제 둘째 목요일,
날씨는 조금 쌀쌀했지만 언제 간 밤에 비가 왔을까 싶을 정도로 하늘은 청명했다. 우리지역 농협여성산악회를 따라 등산을 했다. 개인적으로 산행을 하는 습성이 들어서 산악회에 따라 나서지 못했지만 친하게 지내던 지인 두 명과 함께 가입신청을 해놓고 한 달에 한번 가는 산행을 즐기자고 했던 계획에 첫 번째 산악회 등산이었던 것이다. 목요일이라는 부담감이 있었지만 한 달에 한 번 주어지는 휴가를 사용하기로 했다. 장소는 지금 한창 단풍의 절정을 이루고 있는 백양사 백암산이었다. 지난봄에 백양사의 고불매를 만나러 갔다가 꽃을 만나지 못하고 그냥 산을 올랐다 온 그 코스 그대로 산행이었다.
▲ 대팻집나무 열매
▲ 간밤에 눈이 살짝 내렸나 보다
▲ 소나무의 멋진 자태
한 번 다녀온 등산길이어서 더욱 궁금했다 그 풍경 그대로일지.. 아니면 변화가 있을지… 물론 계절의 변화를 품고 있었고, 수많은 계단 길옆에 쉼터를 조성해 놓았으니 새롭게 다가온다. 오늘은 그냥 산길을 걷는 일에 집중하자 마음먹었다. 여러 사람이 함께하는 산행이니 그들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단체 행동에 어긋나는 일인 것이다. 열심히 걸으며 좋은 공기를 온 몸으로 받아들이자 하면서 열심히 걸었다.
▲ 정상에서 바라본 가을 산
▲ 하산길 계곡
초반의 수많은 계단 길에서는 엄청 많은 땀을 흘렸지만 정상의 능선을 따라 걸을 때는 엄청 추웠다. 응달진 곳에는 살짝 눈이 있었고 바람이 부니 얼굴도 손도 시려웠다.. 준비해간 넥워머를 얼굴까지 두르고 열심히 걷고 앞서 내려오는 하산 길, 약간의 시간 여유가 있어 마음 놓고 단풍을 구경하며 걸었다. 햇살에 반짝이는 단풍나무 잎들은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는 듯 다정스럽게 손을 잡고 예쁨을 뽐내고 있었다. 오늘 수능생에게 보내주는 따뜻한 서로의 마음을 보듯 반가웠다. 사람들도 나무들도 늦은 가을을 보내는 따스한 마음들을 만난 하루였다.
▲ 부처님도 백학봉을 바라보고 있으시네~~
11월, 늦가을의 정취가 하늘에도 땅에도 연못에도 가득 가득 채워졌다.
무작정 따라 나선 등산에서
절정의 가을을 만나면서
다시 찾아 올 내년의 가을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만 같은
변덕스러운 내 마음~
많이 아주 많이 가을이 되어버린 내 마음과 모습을 함께 만나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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