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빗물에 정갈해진 산책길
토요일 오후,
가족 간의 좋은 만남의 시간을 가지고 돌아오는 길~
그냥 마음이 허무하게 무너져 내린다.
모두들 안정적으로 잘 꾸려나가며 살고 있는데
나는 여태 무엇을 이루며 살아왔을까
태풍은 소멸 되었다는데 바람은 사납고 비는 꾸준히 내리고 있다,
저녁을 대충 먹고 우산을 받쳐 들고 산책을 나섰다.
그냥 내 몸을 고되게 하고 싶었다.
비에 젖을 거란 생각으로 7부 바지를 입고 맨발에 샌들을 신고 나섰다.
저녁 7시 무렵의 산책길은 사람 하나 없이 고요했다.
호수 따라 펼쳐진 물 빠짐이 좋은 마사토 산책길은 참으로 정갈했다.
태풍이 몰고 오는 바람과 비의 소식에
그 많던 사람들은 집에서 조심하고 있나 보다
덕분에 오늘 산책길은 온통 내 것이 되었다.
간혹 빗물이 저희들끼리
고운 산책길을 도화지 삼아 무늬를 이루며 그림놀이를 하고 있다가
불청객인 나를 만나 화들짝 놀라는 듯 내 발밑에서 첨벙거린다.
부드러운 물의 감촉이 참 좋다.
연꽃들은 입을 다문 채 얼굴을 숙였고 연잎들도 축 처져 있었지만
제 빛을 잃지 않고 있으니 연을 품은 저녁 풍경은 화려하면서 차분했다.
길 두렁의 실새삼들도
기세등등하게 다른 식물들을 칭칭 감아올리며 저녁을 맞이하고 있었다.
바라보는 이 아무도 없는데도 바닥분수는 혼자 열심히 솟구치기를 반복하고 있다.
물빛다리도 오늘 빗물을 만나 물빛을 머금고 제 이름값을 제대로 하고 있는데
다리 위를 걷는 이는
오직 나 혼자 뿐이다. 나는 완전한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으니
아, 누군가가 다리위의 모습을 사진이라도 찍는다면
어쩌면 지금 나는 풍경이 되고 있을 터인데
얼마나 멋스런 풍경이 되었을까
그렇구나, 내 삶의 흔적들도 나를 따라 풍경이 되고 있을 텐데
하여 다른 사람들이 바라보면 아름답게 여길 수 있을 것인데
나는 그렇게 내 아름다운 삶의 풍경을 바라보지 못하며 울고 싶었나 보다
우리 모두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간직하고 살아가며
태풍이 몰고 온 사나운 바람과 세찬 빗줄기에도 제 모습을 잃지 않는
빗물처럼, 연꽃처럼, 실새삼처럼, 바닥분수처럼 물빛다리처럼
제 흔적들을 풍경으로 승화 시키며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 분명 할진대…
▲ 빗물이 그린 그림
▲ 연
▲ 실새삼
▲ 바닥분수
▲ 물빛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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