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산에서 내려오는 시간은 7시가 채 되지 않은, 아침 햇살이 부챗살처럼 퍼져 들어오는 시간이다. 산 초입에 접한 아스팔트 위에 무언가가 반짝인다. 무어지? 하고 자세히 바라보니 맨홀 뚜껑이다. 사람들 발에 밟히고 자동차 바퀴에 짓눌리는 맨홀 뚜껑이 유난히 반짝거리는 까닭은 뚜껑에 새겨진 은행 나뭇잎이 반질반질해졌고 그에 햇살을 받아 유독 반짝였던 것이다.
매일 이 길을 지나면서도 맨홀 뚜껑의 존재조차도 의식을 못했던 나였는데 느닷없이 관심이 쏠리면서 여타의 뚜껑들과 달리 왜 은행잎을 새겼을까 하는 생각에 머문다. 맨홀 뚜껑은 아래에 오수관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문득 나 혼자 생각에 웃음을 머금고 말았다.
은행에서 추출한 징코민은 우리의 혈관을 보호하고 확장하여 혈액순환을 좋게 하는 효능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이 맨홀 뚜껑을 제작한 사람은 오수관의 흐름이 막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을까? 이를 제작한 사람의 의도가 나와 같은 생각이라면 그 사람의 익살스런 마음이 재밌다.
길 본연의 임무는 사람들과 탈 것들의 왕래를 위한 것이다. 한 도시의 얼굴일 수도 있다. 그 도시가 깨끗하려면 우선 하수관의 흐름이 좋아야하는 것도 상식이다. 도시의 중심만이 아닌 변두리의 환경도 깨끗해야만 진정한 도시일 것이다. 시내 한 중심이 아닌 우리 뒷산 초입 길 위의 맨홀 뚜껑에 새겨진 은행잎에서, 도시를 사랑하고 자기 임무를 다하고자하는 얼굴 모르는 한 사람의 마음을 만난 참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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