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들과 남원 추어탕으로 점심식사를 한 후 헤어져야 했다
서울 식구들이 KTX타고 올라 가야해서
남원역으로 가는 길에 만복사지에 들렸다.
1597년 정유재란 때 왜적의 침입으로 남원성이 함락되면서
고려시대 문종 때 창건한 만복사는 불에 타 소실되었다.
전라북도 남원시 왕정동에서 절터가 발굴되면서
이 터에 대웅전을 비롯한 많은 건물들이 있었고,
수백 명의 승려들이 머무는 큰 절이었을 것으로 추정되었지만
현재는 오층석탑, 불상 석좌, 당간지주, 석불 입상 등
불에 타지 않은 몇 가지의 석조물만이 남아 있어 만복사지(萬福寺址)로 불린다.
이 절터가 유명한 것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세종대왕이 천재라고 극찬했던
매월당 김시습(梅月堂 金時習,1435~1493)선생이 남긴 한문소설,
금오신화 중의 한 편 소설 ‘만복사저포기’ 의 무대가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학창시절에 김시습의 금오신화를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집으로 꼭 읽어야할 우리 고전이라고 배웠다.
금오신화는
<만복사저포기 萬福寺樗蒲記><이생규장전 李生窺牆傳><취유부벽정기 醉遊浮碧亭記>·
<남염부주지 南炎浮洲志>·<용궁부연록 龍宮赴宴錄> 등 5편의 단편소설로 이루어 졌으며
이중 〈만복사저포기〉는 죽은 여자와 사랑을 하는 내용이다.
▲ 석인상 따라하기
바람이 내 옷자락을 풍성케 해 주면서 석인상 옷자락의 주름을 흉내 내 주었다.
▲
▲ 석탑부재
만복사터 발굴 당시 발견된 석탑부재를 한 곳에 가지런히 모아두었으며
이로 해서 만복사에 오층석탑 외에도 다른 석탑이 있었으리라 짐작한다.
▲ 석조여래입상 보호 전각
‘만복사지’의 쓸쓸한 터 위를 생각에 잠기며 돌고 있는 남동생은
매월당 김시습의 한숨 소리를 듣고 있기나 할까.
간간히 불어오는 바람에 내 발 끝에서 낮은 키 씀바귀 꽃이 흔들린다.
김시습의 자화상 영정과 부도탑이 있는 부여 무량사 이야기
클릭 ☞ http://blog.daum.net/panflut0312/3480429
▲ 사진출처 / 인터넷 검색
<만복사저포기 줄거리>
전라도 남원에 양생(梁生)이라는 노총각이 있었다.
그는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만복사라는 절에서 방 1칸을 얻어 외롭게 살고 있었다.
어느 날 그는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께 소원을 빌었다.
저포 던지기 내기를 하여 자신이 지면 부처님을 위해 법연(法筵)을 열고,
부처님이 지면 자신에게 좋은 배필을 달라고 소원을 빈 다음
혼자서 공정하게 저포놀이를 했는데 양생이 이기게 되었다.
양생이 탁자 밑에 숨어 기다리고 있자
15, 16세 정도 되는 아름다운 처녀가 들어 와 외로운 신세를 한탄하며
배필을 얻게 해달라는 내용의 축원문을 읽은 다음 울기 시작했다.
이를 들은 양생은 탁자 밑에서 나와
처녀와 가연을 맺은 뒤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헤어졌다.
얼마 뒤 양생은 만날 약속 장소에서 기다리다가
딸의 대상을 치르러 가는 양반집 행차를 만나는데
자신이 가연을 맺은 처녀가 3년 전에 죽은 그 집 딸의 혼령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양생은 처녀의 부모가 차려놓은 음식을 혼령과 함께 먹고 난 뒤 홀로 돌아왔다.
어느 날 밤 처녀의 혼령이 나타나
자신은 다른 나라에서 남자로 태어났으니 양생도 불도를 닦아 윤회에서 벗어나라고 했다.
양생은 처녀를 그리워하며 지리산에 들어가 약초를 캐며 혼자 살았다고 한다.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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