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마음따라 발길따라

추사 김정희고택을 찾아서

물소리~~^ 2019. 4. 21. 22:41





▲ 추사 김정희 고택 솟을대문



    올 해 들어 여러 일들이 겹쳐오는 바람에 나들이다운 나들이를 한 번도 하지 못하고 4월 중순을 맞이했다. 막막하기도 하고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으로 엄습해오는 시간 속에서 그저 지금 순간에 최선을 다하자며 스스로를 다독였던 것 같다. 화살처럼 순식간에 지나는 시간들 앞에서 그저 신문 한 페이지도책 한 권도 못 읽고 지나는 바보가 되어버리는 것 같은 허탈함 속에서도 문득문득 반일정좌(半日靜坐) 반일독서(半日讀書)라는 말이 자꾸만 떠올랐다.


이는 추사 김정희가 집 기둥에 써 놓고 하루 반절은 고요히 앉아 생각을 키우고, 반절은 독서를 하고 싶은 마음을 적어 둔 것이라는 것을 오래 전 책을 통해서 읽었기 때문이다. 왜 뜬금없이 이 말이 자꾸 떠올랐을까. 깊은 소용돌이 속에 빠져 지내느라 건강도, 또 다른 일들에서도 완전히 자유롭게 벗어날 수 없는 내 처지에 비유해서 그렇게 고요한 시간을 가지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배가 꼬이듯 아파오는 증상도 조금씩 다스려지는 것 같고, 내 앞에 던져진 일도 질서가 잡혀가며 한 숨 돌려도 될 것 같은 토요일에 무작정 예산에 있는 추사김정희 고택을 찾아갔다. 제주도에서 만난 추사 유적지는 유배지에서의 기록이었지만 이곳 예산의 고택은 김정희가 나고 자란 곳이다.








▲ 사랑채



▲ 석년(추사가 직접만든 해시계)

나의문화유산답사기 저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은

'글씨도 멋있지만 뜻도 그윽하다' 고 하였다



▲ 사랑채 뒤편



▲ 안채





▲ ㅁ자형태의 안채 내부 ▼




▲ 반일정좌 반일독서 - 주련 -







▲ 안채 뒤편



▲ 쪽문을 나서면 우물





▲ 영당 오르는 길



▲ 수선화를 사랑한 추사를 위해 곳곳에 자라는 수선화



▲ 추사가 좋아했던  제주수선화



▲ 추사영정



▲ 추사 가문 대대로 사용했던 우물

한 때 물이 말랐던 우물이 추사 김정희가 태어나던 해에 물이 솟기 시작했고

인근 산의 나무들이 살아나기 시작했다고 한다.








▲ 우물가의 향나무? 자태가 눈길을 끌어간다.



▲ 안채 쪽문과 우물




고택 옆에 위치한 김정희 묘

 


 




▲ 묘지 건너 추사기념관




▲ 백송이 보여 추사가 연경에서 가져온 나무인 줄 알고 깜짝 놀랐는데......















이 집을 지은 주인은 김한신으로 추사의 증조할아버지이고 영조임금의 사위다.

영조는 둘째딸 화순옹주(비운의 사도세자와는 이복형제)의 사윗감으로 김한신을 택해 결혼시켰다. 하니 화순옹주는 김정희의 증조 할머니인 것이다. 추사 김정희는 사실 명문가의 후예이며, 이러한 왕가와의 혈연이라는 연유로 훗날 무고하게 제주 유배까지 가게 된 것이다.


김한신은 임금의 사위가 되어 서울과 예산에 저택을 하사 받는다.

안내문을 보면 예산의 이 집은 53칸 규모였는데 충청도 53개 군현에서 한 칸씩 건립비용을 분담하였다고 되어 있다. 지금은 그 반절 규모로 복원이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김한신은 서른아홉 살에 세상을 떴다. 사도세자와 말다툼을 하다가 세자가 던진 벼루에 맞아 죽었다고 한다. 이에 화순옹주는 울분을 참지 못하고 식음을 전폐하니, 영조가 옹주의 마음을 돌리려 했지만 듣지 않고 곡기를 끊은 지 14일 만에 화순옹주도 남편을 따라 갔다.


영조는 화순옹주가 열녀는 되지만 불효를 했다하여 열녀문 세우기를 반대했으나 훗날 정조임금이 내렸다. 정조는 고모의 열녀문을 세워준 것이다. 정조는 자신의 아버지인 사도세자의 잘못을 조금은 갚아주는 마음이었을까. 화순옹주는 이렇게 조선 왕실의 유일한 열녀가 되었다.



화순옹주 홍문













백송공원의 백송



▲ 200여년 전 김정희가 청나라 연경에서 가져와 심었다는

백송(천연기념물 제106)은 백송공원에서 자라고 있었다.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넓고 아담한 장소에서 추사의 모든 것을 둘러볼 수 있어 좋았다.

고택에 스며있는 역사와

그 시대를 풍미했던 훌륭한 우리 선조의 정신을

직접 눈으로 보고 음미할 수 있었으니 오랜만의 나들이에 마음이 조금은 안정이 된다.

이제 추사가 남긴 필적을 확인하기 위해 화암사를 찾아갈 것이다.

내비가 30분 정도 소요된다고 알려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