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제가 함께한 것은 순전한 우연이었다.
가을을 살아가는 나무들의 변화는 어쩌면 그렇게도 화려함으로 치장을 잘 하는지 아무리 태연한 척 하려해도 기어이 끌려가고 마는 우리 마음이다. 어느새 10월의 막바지~ 무언가 모를 허전함이 자꾸 스쳐 지나는 날 하루, 우리 세 자매가 뭉치기로 했다. 일산에 거주하는 여동생은 한 달에 한번 어머니께 내려와서 어머니의 일상을 챙겨주곤 한다. 언니는 늘 옆에서 보살펴 주시고, 멀리 있는 동생은 이렇게 일부러 내려오는데 나는 근거리에서 살고 있으면서도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만 자주 드릴 뿐 실질적인 효도를 못하고 있다.
동생이 이번에 토, 일요일에 걸쳐 내려온다는 연락을 받고, 마침 단풍철이고 하니 우리 세 자매가 어머니를 모시고 단풍나들이 하자는 계획을 세웠었다. 어머님이 걷기에 불편하시니 단풍 좋기로 유명한 무주 적상산 전망대 까지 드라이브하자는 언니의 생각에 따르기로 했다. 나는 올 가을 별다른 단풍 맞이를 못하고 지내는 터에 내심 기다려지는 것이다. 그러던 차, 토요일 오후 늦게 남동생이 연락을 했단다. 지금 어머님께 내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지?
남동생은 11월 24일에 치르는 중등임용고사 출제위원으로 위촉되어 3일부터 출제에 들어간다고 한다. 하면 24일 까지는 연락도 안 되고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가 될 뿐만 아니라, 시험이 끝난 며칠 후에는 태국의 한 대학에 3개월 동안 지도교수로 가게 되었단다. 올해가 동생한테는 안식년이란다. 하여 내년 2월 까지 어머니를 뵐 수 없을 것 같아 인사하러 내려온다는 것이다.
일요일 아침,
정말 우연한 일치로 우리 형제는 딸린 식구 없이 오롯하게 모였다. 우리 모두는 남동생 차에 타고 어머니와 함께 단풍놀이를 하게 된 것이다. 울 어머니는 오랜만에 우리 자식들하고 함께 있다고 좋아하신다. 우리가 모이면 우리 어렸을 적 일부터 아버지의 생각, 일찍 간 형제 등 이야기가 그칠 새 없이 나온다.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이제는 모두 추억이고 즐거움이다.
적상산이 가까워질수록 산의 단풍들은 제각각의 아름다움으로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간다. 나무들의 이런 기척들은 도대체 무엇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살고자하는 욕망의 빛일까. 삶의 욕망이 이처럼 아름다운 것이라면 욕망을 욕심내어 볼 만 하지 않겠는가.
왕복 2차선의 도로에는 차들이 밀려 한동안씩 정체가 시작되고 있었다. 제 몸의 겨울나기를 위해 말라 비틀어져 가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무게감이 없는 나뭇잎들이 모여 이루는 힘은 저 수 많은 자동차를 끌어당기는 어마어마한 큰 힘이었다.
전망대 거의 다 와서 우리는 차를 돌리고 말았다. 꼼짝도 하지 않는 정체된 차들이 빠져 나가기를 기다리기에는 우리 어머니에게 너무 불편한 시간이었다. 되돌아오는 길, 간이 주차장에 차를 주차하고 단풍을 구경하고 마음껏 즐겼다. 남동생은 사진사, 우리 세 여자들은 단풍나무 아래서 옆에서 모델이 되느라 난리가 났으니 울 어머니는 차 안에 앉으셔서 차창을 내리고 우리들의 이런 모습을 바라보시고, 산을 곱게 물들인 단풍도 바라보신다.
우연히 만난 하루, 가을날은 자신들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었다. 단풍나무만이 가을 숲을 아름답게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함께 우거진 잡목들이 있기 때문에 더욱 고운 빛을 띄운다고 하였다. 수종에 따라, 멀리 또 가까이 보이는 원근법으로 산은 스스로 조화를 이루며 한 폭의 그림을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바람이 불어오면 나뭇잎들은 제 각각의 모습으로 제 몸을 우수수 날리기도 하고, 간간히 스치는 빗방울에 촉촉이 젖은, 그래서 더 선명한 빛깔을 보여주는가 하면, 햇살을 받고 아니 받는 틈새를 타고 요술처럼 반짝여 주고 있으니… 아! 이 가을 정말 좋구나! 우리나라의 아기자기한 이런 모습을 그 어디에 견줄 수 있을까.
▲ 무주 와인동굴 입구
산 아래 내려와 한 식당에 들어 가 점심식사를 했다. 버섯전골과 산채비빔밥을 먹었다. 울 어머니 기분 좋으시니 식사비도 모두 내시고 아들 차 기름도 넉넉히 넣어 주신다. 나제통문 쪽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태권도원 앞을 지나는 도로를 달리는데 멀리 천변의 길가에 벚나무들이 붉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아련한 빛의 나뭇잎을 달고 서 있으니 우리 모두의 입에서 예쁘다는 말이 절로 절로나온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동생은 기어이 핸들을 돌려 그 길로 접어들었으니… 뜻밖의 호사였다. 벌레에 먹힌 듯 아닌 듯싶은 벚나무 잎들은 순한 빛으로 단장하고서 길손을 불러들이고 있었다. 천천히 길을 달리는데 아니!! 어디쯤에 아주 우람한 느티나무들이 또 다른 빛으로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냥 차에서 내려 낙엽 잔치를 하고 말았다.
오늘 단풍나무, 벚나무, 느티나무들의 축제에 빠져 든 우리는 조연이었을까? 주연이었을까?
가을 하루는 온통 우리를 위해 존재한 듯 돌아오는 길에서 요란한 천둥번개와 비를 만났으니 절정을 이룬 단풍도 이제 저물어 가려는지.. 오늘 원없이 가을을 만나고 친정식구들과 함께한 참으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 벚나무 길을 달리고
▼ 느티나무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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