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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여행 13 (트로이목마 유적지)

물소리~~^ 2018. 10. 21. 10:51







▲ 트로이 목마를 재현해 놓은 목조 상

이 건축물은 영화 트로이에서 사용했던 것이란다.



우리는 트로이 목마 유적지를 가기 위해 차낙칼레라는 도시를 거친다.

차낙칼레는 1차 대전 당시

오스만 터키군이 연합군을 물리친 곳이지만

전쟁 당시 연합군과 터키군 합쳐 약 50만 명의 사상자를 낸 결전지였다니!!

▲ 트로이를 알리는 이정표 옆을 달리는 트럭은 평화롭기만 하다.

 

트로이는 차낙칼레 인근에 있는 히살륵 마을의 고대도시 유적지로

호머의 대 서사시 일리아드의 주요장면인

그리스군이 목마를 이용해 전세를 바꾸었다는 트로이 전쟁의 현장이다.

현재 지명인 히살륵은 성이 있는 곳이라는 뜻이며

이곳은 기원 전 3000년 전부터 촌락을 이루고 이 시기를 트로이 1기 시대라 하니

지금으로부터 약 5,000년 전의 역사를 품은 유적지다.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 이야기는 오랫동안 신화일 뿐이라고 믿어 왔으나

1868년 독일인 슐리만의 발굴로 실재했던 사건과 지명이었음이 드러났다고 한다.

발견 당시 퇴적층은 7층이었는데 맨 아래층에서 황금유물을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후 밝혀진 것은 9개 지층이었으니 한 번 폐허가 된 도시위에

또 다른 도시가 건설되는 등 9개의 도시가 쌓여 있음을 발견했단다.

후에 검증된 된 것으로

맨 아래층에서 발견된 유물은 청동기시대의 것임이 밝혀졌다고 한다.

 

우리는 트로이 목마 상을 시점으로 발굴 센터를 통로 따라 둘러보았다.


▲ 오전 8시 40분 경에 도착

그곳에는 이미 많은 관광객들이 모여 있었다.


▲ 동쪽 벽과 문

트로이 6기 시대에 지은 벽


▲ 동쪽 문을 따라 먼저 관람해야 하는데

관광객이 너무 많이 우리는 반대편 남쪽문으로 돌기 시작했다

어차피 관람 통로는 하나 뿐이었으니....

그런데 우연일까? 우리는 유적지마다에서 남쪽문으로 입장을 하고 있었다.



▲ 오데온

트로이 9

기원 전 150년 경에 해당하는 시기로 로마시대에 해당

로마의 황제들은 로마 건국시조인 아이네니아스가 탄생한 이곳에 관심이 많았음.

하여 카이사르 황제가 신전을 건설하고 아우구스투스황제는 오데온과 극장을 건설하였다고 한다.



성역

트로이 7

성벽 바깥쪽에서 의식을 행하던 곳



성벽

트로이 6기 요새 위에 트로이 7기 성벽의 일부분

발굴 당시 발견 된 커다란 용기들로 부엌용 건물로 추정




성 안으로 들어가는 경사로

트로이 2

경사로 양쪽으로 성채의 둥근 벽이 뻗어 있다.


▲ 우물이 있었던 자리


슐리만의 참호

당시의 주거지인데 비 전문가인 슐리만이 발굴하면서

자기의 생각대로, 마구잡이식 발굴로 훼손 되었다고 한다.



▲ 성벽(요새벽)의 흔적

트로이 1기의 요새벽, 청동기 시대의 성벽으로 낮고 단순한 형태


▲ 숫자 표시는 트로이의 기수를 의미한다는데

트로이 유적지 중에서 나온 유물은 대부분 이곳에서 나왔단다.





▲ 트로이 1기 요새 벽



메가론(흙벽돌 구조물)

메가론(흙벽돌 구조물)

아래쪽과 위쪽이 서로 달라 보이니

이 또한 시기의 변화가 쌓인 곳? 이라 해야겠다. ▼

트로이 2기 시대 기원전 2290 ~2200 사이에 만들어짐.

이곳에서 발굴된 유물로 의식을 치르던 장소로 추정 한단다

진흙담의 유실을 막기 위해 간이 지붕을 씌웠다고 한다.


▲ 무심히 바라보면 그저 돌들이 쌓여 있을 뿐인데도

그 안에는 무궁한 세월의 흔적들이 있고

그 흔적을 찾아나서는 우리 사람들의 마음에는 무엇이 자리하고 있을까.

까맣게 잊힌 곳에서 살아 숨 쉬고 있는 역사는 얼마나 외로울까.


▲ 저 넓은 들판은 원래 바다였다고...

하니 바닷가에서 트로이 유적지를 찾아 나섰던 사람들은

설마 지금 이곳이 바로 그 땅 , 트로이라는 생각을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상전벽해라는 말을 이곳에 와서 실감해 본다.



아테나 신전

트로이 8기에 지어진 신전이 있던 자리


작은 박물관 뜰에 토기와 황토관이 전시되어 있다

에페소에서의 것과 같은 것들이라는 생각



가이드는 우리에게 화장실 갈 시간은 주었지만

박물관에 들어가 볼 시간은 주지 않았다.

이곳에서 배를 타고 이스탄불로 건너야 하는데

배를 타는데 엄청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고...



트로이 전쟁

이 전쟁은 신화일까? 역사일까? 를 두고 의견들이 분분하였다. 유적을 둘러보면 역사적 사실이 맞는 것 같은데 전쟁의 기원과 진행을 살펴보면 신화 속 신들의 이름이 등장하기 때문이다.

 

신화 속 트로이 전쟁은

성대한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해 분노한 여신 에리스가 가장 아름다운 여신에게라 적힌 황금사과를 여신들 사이에 던진다. 이 사과를 놓고 헤라, 아테나, 아프로디테가 서로 싸우라는 의미였는데 그에 적중하여 세 여신들은 서로 자기가 제일 예쁘다고 다투다가 그 판정을 트로이 왕자 파리스에게 맡긴다.

 

세 여인은 파리스의 환심을 사기위해 서로 공약을 하는데 헤라는 부의 권력을 주겠다 하고 아테네는 전쟁의 승리를, 아프로디테는 최고의 미인을 주겠다고 하는데 파리스는 아프로디테의 공약을 선택한다. 아프로디테는 약속대로 가장 아름다운 여인 헬레네를 소개하는데 그녀는 이미 유부녀였다. 스파르타 왕의 부인이었던 것인데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다.

 

파리스가 헬레네를 데리고 트로이로 가 버리자 화가 난 메넬라오스 왕은 그리스 연합군을 조직해 전쟁을 시작한다. 이 연합군에 그 유명한 아킬레우스와 오디세우스 등 그리스 영웅이 포함된다. 그렇게 신들 사이에서 시작된 전쟁은 인간의 역사로 옮겨와 10년 동안이라는 긴 싸움을 하게 된다.

그리스는 트로이 공격에 매번 실패하기를 거듭 하던 중 어느 날 항구에 커다란 목마를 남겨두고 모두 사라져 버린다.


트로이 군사들은 그리스 군들이 퇴진 한 것으로 알고 트로이 목마를 성안으로 들여놓는데 그 과정에서 성벽을 일부 허물기도 하였다. 트로이군들이 자신들이 전쟁에서 이겼다고 축하연을 벌이고 모두 잠든 사이 목마 안에 숨어있던 그리스병사들이 빠져나와 성문을 열고 결국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고 한다.

 

▲ 영화 '트로이' 의 한 장면

트로이 군사들이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다 놓고 축제를 벌이고 있는 장면

사진출처 / 인터넷 검색


훗날 이전쟁의 진정한 의미를 찾는 사람들은 단순한 신들의 전쟁이 아닌 트로이가 자리한 흑해와 에게해를 지나는 교통의 요지로서 유럽과 아시아로 진출하기 위한 영토 전쟁이었을 거라고 한다. 목마의 아이디어는 오디세우스가 냈다고 하니 전쟁의 영웅이 충분하지 않은가. 그는 전쟁이 끝나고 돌아가는 바다에서 사이렌의 유혹을 물리치기도 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들어도, 들어도 헷갈리는 신화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얼마만큼 믿어야 할지이렇게 그 긴긴 세월 동안의 흔적을 단 1시간 안에 돌아보면서 과연 나는 무엇을 얻고 있는지 모르겠다. 이야기의 사실 확인도 못하고 그저 단순히 목마 한 번 바라보는 마음이 더 크지 않았는지!!

 

이곳을 발굴하기 시작한 독일인 슐리만은 7살 때, 선물 받은 책 일리아드 이야기를 읽고 평생을 호기심으로 지니다가 사업으로 번 막대한 돈을 발굴에 쏟아 붓기 시작했고 결국 성공했지만 그의 무자비한 발굴방식에 훗날 또한 거센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비록 결과는 좋지 못했지만 어릴 적부터의 호기심을 저 버리지 않고 기어이 발굴을 시도한 슐리만을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다고 혼자 씁쓸하게 생각의 마무리를 지었다.

   


트로이 목마 유적지를 나와 우리는 카페리호를 타고 이스탄불로 건너가야 한다.

그런데 배에 승선하기 위한 차의 행렬이 끊임 없었다.

한 바퀴 돌던 우리 버스 기사는

어느 순간 한 자리가 비어 있음에 살짝 끼어들었는데 난리가 난 것이다.

안내요원의 불가함을 알리는 것은 물론,

뒤차들의 경적 소리, 기어이 뒤 운전사들이 나와 항의를 하니 우리 버스는 결국 후퇴했다.

우리 기사 분은 우리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노력했지만 규칙을 어길 수는 없는 법!!

결국 우리들만 먼저 배를 타고 건너서 점심식사를 하고, 버스는 순서대로 타고 건너오기로!!

버스 안의 우리들은 엄청 긴장을 했던 시간이었다.


▲ 다르다넬스 해협(유럽과 아시아를 갈라놓고 있다)

에게해에서 마르마라해로 들어오는 다르다넬스해협의 입구에 있었던

트로이(차낙칼레)는 그렇게 교통의 요지가 되었으니

아시아, 유럽 그 어느나라도 점령하고 싶었던 땅이었을 것이다.



▲ 40여분의 배를 타고 우리는 다시 유럽에 속하는 이스탄불에 도착.



▲ 점심식사 고등어케밥

맛있게 먹었다.


▲ 고등어케밥집 입구에 걸린 물고기 모형

입에 재앙을 물리친다는 악마의 눈을 물고 있다.



▲ 버스가 무사히 도착하고, 이동 중 차창 밖으로 만난 시장 풍경

우리의 오일장 처럼 장이 열리는 날이라는데

올리브가 엄청 많이 보였다.


▲ 이스탄불에 도착하여

다음 장소로 이동하던 중 잠깐 블루모스크가 있는 광장에 다시 왔다.


▲ 점심 먹은 시간이 오전 11시 40분 쯤이었는데

이 사진이 알려주는 시간은 오후 5시가 채 못 되었는데

서울정이라는 곳에서 한식을 먹었는데 저녁식사였는지??

지금 생각하면 시간이 조금 이해가 안 된다.

모두들 오랜만의 한식이라고 즐겁게 식사를 했다.


▲ 이스탄불은 워낙 교통이 혼잡하여 버스 대기하는 곳이 많이 불편하였다.

우리는 버스에서 내려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또 한참을 걸으면서 만난

고 가옥,  아주 아주 오래된 가옥인데 현재 사람이 살고 있단다.


▲ 이곳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 마르마라해



▲ 사람들이 엄청 많았다!


아, 우리는 오늘밤 이스탄불 야간 투어를 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