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잎이 누렇게 변한 대나무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그 여왕의 의미에 편승하여 우리는 가정의 달이라고 온갖 행사를 치루고 있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이 있었고, 그에 4월 초파일 까지 5월에 끼었다. 하나하나 챙기는 즐거움도 있겠지만 웬만하면 5월은 행사의 달이라 하여 하나의 의미로, 모든 것을 함께 축하해주는 어느 하루를 정해 기념했으면 하는 마음이 크다. 앞으로 나는 그렇게 해 나갈 것이라고 다짐을 해 본다.
큰 아이는 스승의 날에 수업을 하고 징검다리 연휴인 21일에 쉬었고, 작은 아이는 21일을 연차 사용을 하면서 연속 쉬었다. 친정아버지 기일 외에는 뭐 딱히 번잡하게 보내지 않고 그냥 일상 속에서 연휴를 보내고 어제 모두들 떠났다. 성인이 된 아이들이지만 떠난 후의 허전함은 여전히 밀려온다. 아직 내 임무를 다하지 못하고 있다는 그런 책임감 때문일 것이다.
▲ 이른 아침의 하늘
아침 일찍 일어나 또 다시 베란다에 나섰다. 아, 날씨가 참 좋다. 그 좋음을 하늘이 먼저 알려준다. 비 개인 후의 청명함이 진정 좋은데 오늘은 산책 나서기가 싫다. 몸에 한기가 느껴질 때까지 먼 풍경을 바라보다 문을 닫으려 시선을 내리는데 저 아래의 한 풍경이 내 눈에 들어온다.
우리 아파트와 주택의 경계에서 자라는 대나무가 누렇게 변해진 잎을 매달고 있는 모습이다.
아! 죽추 현상이로구나. 엊그제 21일은 소만(小滿) 절기다. 천지 만물이 푸르름으로 성장하며 온 세상을 채워주는 시기에 왜 대나무는 저리도 풀 죽은 모습일까. 사철 푸른 기상을 지니고 있어 예로부터 뭇 선비들의 사랑을 받는 몸이 아니던가.~~ 하지만 이에는 그러한 까닭이 있다. 대나무는 이제 막 자라고 있는 죽순들에 제 몸의 영양을 모두 내려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치 산모들이 아이에게 영양분을 주느라 빈혈을 겪고 있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우후죽순이라는 말이 있듯 죽순은 하루가 다르게 쑥쑥 자라고 있으니 실로 많은 양분이 필요한 것은 사실일 것이다. 이에 먼저 자라고 있는 어머니 대나무들이 자신의 양분을 보내 더 빨리 튼튼하게 자라게 하다니… 이런 현상을 죽추, 대나무의 가을이라고 한단다. 일 년 내내 푸른 잎으로 지내느라 언제 단풍들 기회조차 없으니 이렇게 빈혈을 겪고 있는 모습을 대나무의 가을이라 말하는 이치도 좋지만 나는 대나무의 모성이라 크게 감동하며 애정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과연 나는 얼마만큼의 모성을 지니고 있을까. 대나무를 바라보며 문득 나의 경우를 되돌아본다. 나는 아이들을 참 쉽게 키웠다. 결혼 전부터 직장생활을 하다가 큰 아이를 낳고 난 후 3~4년 동안만 쉬었을 뿐 계속 일을 했다. 줄기차게 일을 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 아이들은 잘 자라주었다고 자부 하는데 요즈음은 내가 너무 무심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자주 드는 것이다. 계속 일을 하다 보니 나의 대인관계는 그야말로 제로다. 친구들도 만나지 못하고 하물며 주변 사람들과도 많이 어울리지 못하는 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니 아이들 결혼할 시기가 되니 저희들이 마음에 맞는 짝을 찾는다면 몰라도 내가 알음알음해서 주선하는 능력이 나에게는 전무한 것이다.
어제 아침에도 작은 아이가 식사 후, 환으로 된 약 여러 개를 먹고 있는 것이다. 무슨 약이냐고 물으니 요즈음 들어 얼굴에서 땀을 아주 많이 흘린단다. 진찰을 받아보았지만 별 이상은 없으니 아마도 한의원을 혼자 찾아 간 모양이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쿵! 무너진다. 세상에 엄마가 되어가지고 이런 일 조차 스스로 하게 하다니…아니 최소한의 관심도 없었으니… 과연 지금까지 살아 온 나에게 남겨지는 것은 무엇일까. 허허롭기만 하였다.
내가 한없이 초라해지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대나무의 모성이 새삼 위대해 보이는 까닭이다. 내가 아이한테 해준 일은 직장으로 떠나기 전 점심을 보양식으로 해 준 것밖에 없다. 그것도 음식점에서… 그래놓고 아이가 떠난 후, 점심장소에서 가까운 스카이워크를 찾아 올랐다 왔다. 내 모성은 무늬만 있는 것 같다.
▲ 죽순이 어느새 누렇게 변한 기존 대나무보다 높이 자랐다.
▲ 죽순을 보호하기 위해 철망을 둘러놓았으니
올 해 죽순들은 마음 놓고 쑤욱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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