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아침에 일어나면 베란다로 먼저 나가 밖의 풍경을 바라본다.
싱그런 초록이 가득한 풍경에
마음과 몸을 확 깨우면서 뒷산을 오를 힘을 챙기기 위해서다.
꽃도 나무들도 날마다 새롭게 변신하는 풍경들은
나른한 몸의 유혹을 이기지 못하고 미그적거리는 내 마음을 화들짝 깨운다.
보이는 저 풍경들을 가까이서 확인하고픈 마음을 일으켜 세워주며 옷차림을 챙겨주는 것이다.
요 며칠 그렇게 내 눈에 들어오는 풍경은
초록 사이에서 외톨박이처럼 보랏빛 꽃을 피운 오동나무다.
오동나무 꽃 향을 맡아보고파 얼른 밖으로 나와 뒷산을 오른다.
오동 꽃에서는 어머니의 분향이 느껴진다.
▲ 아침 햇살 가득한 산등성의 오동나무
산에 오르면 오동나무는 더 멀리 하늘에 오르기라도 할 태세로 하늘을 향해 있다.
나무 곁을 지나며 숨을 들이키며 꽃향기를 맡고
떨어진 오동 꽃을 바라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를 며칠~~
오늘 뜻밖의 장소에서 고개를 젖히고 바라볼 수 있는 지근거리의 나무를 만났다.
사진을 찍었다.
옛날 말에 딸을 낳으면 오동나무를 심는다고 하였다.
딸이 커서 시집갈 때면 그 오동나무로 장롱을 만들어 주려는 것이다.
그만큼 오동나무는 성장 속도가 빠른데, 그 이유는 유난히 큼지막한 오동잎으로
광합성을 빨리, 많이 하여 생성한 양분으로 몸체를 불리기 때문이란다.
장롱 아닌 또 다른 쓰임새로 알려진 것은
소리의 전달 성능이 좋아 악기를 만드는 재료로의 쓰임이다.
조선시대의 문신 신흠은 그의 시에서
“오동은 천년이 지나도 가락을 잃지 않고,
매화는 일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라고 했으니
가히 오동나무의 귀함은 일찍부터 알려진 것이라 하겠다.
급하게, 빨리 일을 처리하면 부족한 틈이 생기기 마련인데
오동나무는 그렇게 빨리 자라면서도
장롱으로도, 악기로도 좋음을 챙기는 일에 소홀함이 없구나.
자연스레 키운 보통이 높은 경지에 오를 수 있음을
오동나무에게서 배워보는 아침이었다.
오동에 듣는 빗발 무심히 듣건 만은
내 시름 하니 잎잎이 수성(愁聲)이로다
이후야 잎 넓은 나무를 심을 줄이 있으랴
김상용(1561~1737)
내 마음에 근심이 많으니
온 사물이 시름소리를 내는 듯싶다.
넓은 오동잎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도 시름의 소리일지니
시인은 이제 절대로 잎 넓은 나무는 심지 않겠다고 한다.
일찍이 이 시를 접해서일까
오동나무를 바라보면
어머니의 분향을 품은 보랏빛 꽃에서는
두근대는 설렘을 일렁이게 하는 봄날의 흥이 있는가하면
넓은 잎에서는 까닭모를 슬픔이 묻어나는 가을날의 시름을
함께 떠올리는 복합적인 마음이 버무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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