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달래가 피어나며 온 산을 붉게 물들이고 있다. 꽃 분홍 진달래의 자태가 참 곱다. 색깔은 화려하지만 결코 지나침이 없다. 얇은 잎으로 피어나 바람에 하늘거리는 모습은 오히려 가녀린 모습이다. 햇볕을 받아 투명하게 비치는 꽃잎에서 투명한 소리가 들린다. 투명한 소리는 음향이 되어 나의 마음을 잔잔하게 일렁이게 한다. 자태가 고운 투명한 진달래 꽃잎을 마주하면 유난히 서럽다. 고운 빛을 머금은 채 고요한 봄바람에 일렁이는 고운 자태가 서럽다니…
고려 개국공신 복지겸이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고 있을 때, 효심 가득한 그의 딸이 아무리 간호를 해도 낫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는 그녀의 꿈속에 신선이 나타나 진달래로 술을 담가 마시면 낫는다고 알려 주었다고 한다. 딸은 정성을 다해 술을 담았고 그 술을 마신 아버지는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지극한 효심에 진달래는 그만 제 서러움을 끌어안아 버렸는지도 모른다. 천년이 흐른 세월을 살아온 꽃모습에서 무언가 아릿하게 젖어 옴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삶이 작은 꽃 한 송이에 고스란히 스며있기 때문일 것이다.
중학교 음악시간에 가곡 바우고개를 배우는 시간이 있었다. 이 곡은 작사 작곡 모두 이흥렬선생님이 지으셨다고 하신다. 그 때 나는 손을 들고 질문을 했었다. 바위가 맞는데 제목을 왜 ‘바우’라고 하였는지를… 선생님께서는 바우는 고개 이름을 나타내는 고유명사라고 답해 주셨다. 일제의 탄압에서 신음하는 조국산천을 바우고개로, 무궁화를 진달래꽃으로 비유하여 민족의 울분을 대신한 곡이라고 알려 주셨다.
그 사실을 알고 나서 인지 바우고개 노래를 부르거나 들을 때면 참으로 서러운 마음이 되곤 하였다. 진달래꽃이 피는 봄이 되면 이 바우고개의 2절 노랫말이 유난히 더 그리움에 젖어들게 하곤 한다. 서러움을 안고 있는 진달래 꽃잎을 바라보노라니 부드러운 햇살과 고운 빛들이 물감 번지 듯 내 안으로 들어온다. 낮은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1. 바우 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님이 그리워 눈물 납니다
고개 위에 숨어서 기다리던 임
그리워 그리워 눈물 납니다
2. 바우 고개 핀 진달래 꽃은
우리 님이 즐겨 즐겨 꺾어 주던 꽃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님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3. 바우 고개 언덕을 혼자 넘자니
옛 님이 그리워 하도 그리워
십 여년간 머슴 살이 하도 서러워
진달래꽃 안고서 눈물 집니다
1976년에 상. 하 권으로 발행된 오래된 나의 가곡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