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홍노루귀
변산아씨를 만나고 싶다.
지금 산골짝 어디쯤에 앙증맞은 제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으니 예쁘고 단아한 모습의 변산아씨에 대한 보고픔은 자꾸만 커지고 있다. 남편에게 슬쩍 마음을 비치니 그래? 하면서 함께 다녀오자고 한다. 내가 변산아씨라 칭하는 자는 ‘변산바람꽃’이라는 이름을 가진 봄꽃이다. 이름답게 변산바람꽃은 변산에서 처음 발견되어 붙은 이름인데 복수초와 함께 봄을 알리는 대표적인 꽃이다.
국립공원인 변산반도의 등산로는 6~7곳이 있다. 실제 정상은 의상봉(509m)이지만 그곳은 군사시설이 있는 곳으로 출입이 통제되기에 주변의 신선봉(486m), 쌍선봉(459m) 등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봉우리를 오르내리며 기기묘묘한 형상의 바위들을 만나며 스릴과 함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변산바람꽃을 실제로 만나고 싶어 작년에도 이맘때 쯤 내변산을 올랐지만 소원을 이루지 못하고 바람만 맞았다. 올 해 봄기운이 들면서 또다시 들썩이는 마음에 한 줄기 희망을 만들었다. 확실함은 없었지만 꽃은 만나지 못할 지라도 새로운 등산로를 따라 산을 오르고 싶기도 하였다. 오늘 찾아가고자 하는 곳은 쇠뿔바위코스다. 이곳은 암릉이 많은 위험구간으로 그동안 통제되어 있다가 2011년 5월에 재개방 된 곳으로 23년 만에 열린 코스였다.
등산로 이름도 쇠뿔바위코스다. 두 개의 우람한 바위가 동서의 위치에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소의 뿔처럼 생겼다 해서 붙여진 바위다. 집에서 한 시간 동안 달려 등산로 초입 주차장에 도착했다. 지도로 익힌 등산로 따라 주차장이 있는 마을에서 소 뒷다리를 타고 올라, 엉덩이를 지나고, 소 등을 밟고, 쇠뿔에 도착한 후, 같은 코스로 되돌아 내려오기로 계획했다.
▲ 주차장에서 바라본 의상봉
▲ 오늘 오르고자 하는 쇠뿔바위
봄기운이 완연한 주차장에는 산악회 버스 몇 대와 승용차들이 있었으니 모두 쇠뿔바위를 찾아온 사람들일 것이다. 마을에 이르는 길섶 곳곳에는 봄까치꽃들이 만발했고 살짝 스치는 바람결도 참으로 부드럽다. 아, 마을을 감싸고 있는 커다란 바위, 쇠뿔바위와 의상봉이 한 눈에 보이니 마음이 설렌다.
마을 초입에 들어섰지만 그 어디에도 등산로 안내 표지판이 없었다. 왜일까? 엄연한 국립공원인데… 마을을 보호하기 위함일까? 그럼에도 알음알음 찾아오는 산객들이 있으니 어딘가에는 등산로가 있을 거란 믿음으로 마을 모정에서 갈라진 길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 오른쪽 길을 택하여 걸었다. 웬일인지 마을 깊숙이 들어가는 길이었다. 낯선 사람을 만난 개들의 짖음이 마을의 고요를 깨트리고 있으니 조금 민망하다.
저쪽에서 몇 사람이 배낭을 메고 걸어오고 있으니 얼른 그 길을 따라 나섰다. 마을을 지나는 계곡 물소리가 봄소리를 담고 있었다. 산 초입에 닿으니 두 갈래 길이 나타나고 한 곳에 등산로가 아니라는 안내문이 있었다. 안내문이 없는 길을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길은 오롯하게 나 있었지만 이정표 하나 없는 국립공원의 등산로답지 않음에 자꾸만 고개를 갸웃거리기 시작했다.
정말이지 한 번도 쉼 없는 오르막길이었다. 하지만 푹신한 흙의 기운에 그리 힘들지는 않았지만 칙칙한 나무로 가려진 등산로는 시야가 트이지 않았다. 간혹 사람들 소리가 들렸지만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남편은 길이 있으니 염려 말라며 천천히 오르자고 한다.
▲ 비정상적인 등산로
칙칙한 나무들로 시야가 트이지 않았다.
▲ 봄을 맞이하는 새싹
▲ 갑자기 맞닥뜨린 쇠뿔바위
(왼쪽이 서쇠뿔바위, 오른쪽이 동쇠뿔바위)
▲ 갑자기 만난 쇠뿔바위앞에서
마음의 여유를 느끼며 주위에 혹시 꽃이 있을까 찬찬히 살피며 올랐다. 그렇게 1 시간쯤 걸었을까? 어느 순간 시야가 확 트이면서 눈앞에 나타난 우람한 바위!! 아, 이곳이 어디지? 저 아래 우리가 올라온 마을이 보인다. 바위에 앉아 한참을 둘러보니 어쩜! 우리는 정상적인 등산로가 아닌, 언제부터 있어온 길을 따라 올라온 것이었다. 즉, 소 앞다리를 타고 곧바로 쇠뿔바위 밑에 도착했던 것이다. 난감했지만 뿌듯하기도 했다. 이곳에서 어떻게 저 바위에 올라가지? 하며 주위를 살피는데 산악회 시그널이 한 두 개씩 나뭇가지에 걸려 있었다. 아,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 또 있었나 보다.
▲ 맑은 하늘아래 가지끝에 새움이 나오고 있는데
충영은 끄떡없이 살아가고 있다.
▲ 청림마을
▲ 드디어 고래등바위에 올랐다.
한참을 앉아 쉬고 쇠뿔바위 밑을 빙 돌아 나섰다. 낙엽들이 발목까지 덮는 길이었다. 간혹 물줄기도 보인다. 높은 바위 위에서 보이지 않는 사람들 목소리가 가깝게 들려오니 반가웠다. 거대한 바위 밑을 돌아 바위와 바위 사이의 깊은 골을 따라 올랐다. 산악회 시그널이 우리를 인도하는 듯싶어 고마웠다. 아! 드디어 소 등에 올라오니 많은 사람들이 앉아 점심을 먹고 있다.
▲ 동쇠뿔바위
▲ 서쇠뿔바위 전망대
▲ 고래등바위에서 서쇠뿔바위전망대 가는 길
▲ 한 컷에 담아지지 않는 고래등바위
소등이 맞을 것 같은데 정식명은 고래등바위 란다. 어찌나 넓은지 사진 한 컷에 담기는 어려웠다. 앞에 동쇠뿔바위가 있고 건너편 서쇠뿔바위에는 전망대도 있었다. 잠시 길을 찾아 따라 오느라 꽃 생각을 잊어버렸다. 동, 서쇠뿔바위와 고래등바위를 넘나들며 놀다가 준비해간 점심을 먹고 이제 여기서 내려가야 하는데... 오늘도 아씨를 못 만나나 보다고 아쉬움을 달래며 내려오기 시작했다.
▲ 전망대에 서있는 모습을 고래등바위에서 남편이 찍었다.
(나, 양손 들고 있음)
서쇠뿔바위에서 바라본 풍경이 정말 좋다.
지장봉과 투구봉(삼각봉) 그리고 의상봉, 의상봉 뒤로 설핏 보이는 새만금방조제~~
▲ 지장봉, 삼각봉이 나란히 의상봉을 오르는 듯싶다.
지장봉을 우회하여 내려가야한다.
▲ 동쇠뿔바위에서 자라는 소나무들의 멋진 자태
뒤 왕관모양의 봉우리는 개암사 뒤 울금바위다.
▲ 곳곳의 기암절벽에 절로 탄성이 나오고...
▲ 아직도 잔설이....
▲ 오늘 처음 만난 이정표
청림마을로 내려가야한다.
12시 55분, 아직도 산 곳곳에는 잔설이 있었다. 처음으로 내려가는 길의 이정표를 만났다. 쇠뿔바위의 높이가 480m라고 이정표가 알려준다.
이제 정상적인 등산로를 따라 내려오기 시작하면서 문득 오를 때 순간 잘못 판단으로 들어선 길과 내려갈 때의 길이 서로 다름을 확인한 순간, 같은 목표점을 두고 같지 않은 길을 걸을 수 있었음에 감사했다. 하산 등산로는 새로 개방하면서 정비한 듯 수직계단을 타고 한참을 내려 가야했다. 만약 오를 때 정상적인 이 길을 택했다면 무릎이 고장 날 뻔했다. 우리가 무심코 걸었던 길은 아마도 마을 사람들이 이용한 길이지 않았을까 막연히 짐작해 본다.
▲ 지장봉
▲ 지장봉에서 바라본 쇠뿔바위
▲ 지장봉 오른쪽으로 거북이 한 마리 오르고 있네?
지장봉에서 호쾌한 바위의 기운을 느끼며 내려오며 만난 갈림길에서 모두가 헷갈려한다.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마다 준비해 온 지도를 꺼내며 의논한 결과 택한 길이 정상 등로였다. 덕분에 안도하며 걸었지만 아, 이곳에 안내판 하나만 있었더라면 참 좋을 텐데…하는 아쉬움과 함께 생각을 나누며 도출한 공론의 정당함을 이 등산길에서 깨달아 보았다. 지장봉을 뒤로하고 마지막 갈림길에서 두 번째 이정표를 만났다. 0.3km만 내려가면 청림마을에 도착한단다.
이 길만 내려가면 오늘 일정은 끝나는데 어쩌나! 꽃을 만나지 못한 허전함으로 터벅터벅 내려오는데 아니! 문득 아주 작은 꽃 하나가 눈에 띄는 게 아닌가!! 환호성을 지르며 꽃 앞에 쪼그려 앉으니 남편은 만났어? 하면서 덩달아 좋아한다. 노루귀였다. 파설초라고도 부르는, 털이 보송보송한 아주 작은 귀여운 꽃! 이렇게 숨어 있었다니! 비록 변산바람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반가웠다. 서운함을 씻겨준 참 이쁜 꽃이다. 남편이 소원 풀었냐고 묻는다.
▼ 변산바람꽃을 기대했는데 만나지 못하고
대신 노루귀를 만났다
그나마 얼마나 반가웠는지~ 참으로 감사한 시간이었다.
▼ 흰노루귀
'마음따라 발길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세 자매는 바래봉 철쭉길을 걸었다. (0) | 2018.05.14 |
---|---|
백양사, 백암산의 봄 (0) | 2018.03.25 |
신시도 대각산 (0) | 2018.03.04 |
주목나무 그리고 아니? 내 차가... (0) | 2018.02.25 |
상고대를 기대하며 향적봉으로 (0) | 2018.02.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