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의 마음의 여유로움을 느끼며 맞이한 주말이다. 동안 지난해의 정산을 위한 수많은 숫자들과의 시름도 끝나고 중간중간 만끽한 올림픽의 뜨거운 열기도 이제 하루만 지나면 끝이 난다. 일에도 올림픽에도 열정과 마음을 쏟은 만큼 홀가분함과 아쉬움으로 간직하려하니 나 혼자만의 간절함이 스쳐 지난다.
이 계절을 이렇게 끝내야 하는가. 문득 산에 가고 싶다는 생각과 함께 덕유산에 가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이다. 제 집 드나들 듯 자주 다녀온 덕유산이건만 그렇게 유명한 덕유산의 상고대다운 상고대를 한 번도 만나지 못한 것이다. 지난 강추위와 어제 살짝 내린 눈에 상고대의 희망을 걸어보면서 식구 모두의 일정을 살펴보니 오! 만사형통이다.
남편은 토요일에 서울 출장이 잡혀있고 큰 아이는 새로 발령받은 학교의 준비 때문에 학교에 오가느라 분주하다. 작은 아이는 주말에 내려오긴 하지만 취미로 배우는 바이올린 연습이 있으니 지 걱정하지 말고 엄마 시간 즐기라 한다. 이제 덕유산의 설천봉까지 오르는 곤도라가 문제다. 추운 겨울날씨에 산행은 무리이기에 일단 곤도라를 타고 올라가 향적봉과 중봉을 다녀오려면 곤도라 탑승이 필수인 것이다.
주말에는 곤도라를 예약해야하기 때문에 홈페이지에 들어가니 아뿔싸! 오전 시간대는 예약완료가 되었고 13시 시간대의 예약 건이 딱 한 개 남아 있다. 물불 가리지 않고 예약을 했다. 그 시간대면 다녀오기에 시간이 조금 부족할 것 같기도 하지만 혹시 모를 예약부도로 인한 건이 내게 돌아 올 수 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행운을 기대하며 토요일 오전 9시에 출발했다.
곤도라 탑승장 까지는 약 2시간이 소요되는데 열심히 달려 1시간 30분 만에 주차장에 도착, 하지만 스키 타는 사람들과 산행하는 사람들로 인하여 주차장은 이미 만차, 만차였다. 탑승장과 멀리 떨어진 주차장에 간신히 들어가 빙글빙글 돌고 있자니 안내원인 듯싶은 사람이 코너 한 자리를 가리키며 이곳에 주차 가능하다고 한다. 반가움에 조심스럽게 주차를 하고 몇몇 차들이 드나드는 것을 지켜보았지만 별 무리가 없기에 주차완료를 하고 탑승장으로 향했다. 주차장에서만 15분이 소요되었다. 간신히 매표소에 순서가 닿아 사정을 이야기하고 11시 탑승권으로 바꿀 수 있느냐고 물으니 이미 예약한 사람의 특권으로 13시를 취소하고 11시로 다시 예약하면 가능하다고 한다.
만약 예약을 하지 않았다면 절대 불가! 보람없이 집으로 되돌아가는 일을 간신히 벗어났다.
▲ 곤도라탑승을 기다리는 사람들
예약안내소를 찾아가니 얼른 얼른 처리를 해 준다. 이미 나와 같은 경우가 많은지라 안심했다. 11시 탑승권을 받아들고 탑승을 기다리는데 아!! 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행렬 끝이 보이지 않는다.
11시부터 기다려 11시 32분에 탑승, 휴!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온다.
곤도라를 타고 오르면서 바라본 풍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다. 해가 뜨지 않고 안개가 많이 낀 날씨여서 아직은 상고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지만 그리 튼튼하지? 못한 자태에 조바심이 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러다 해가 뜨면 그야말로 순식간에 녹아내리기 때문이다. 설천봉에 12시 조금 못되어 도착했다. 설천봉에는 이미 스키 타러 올라온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높이가 있어서인지 바람이 제법 차갑다. 넥워머를 두르고 아이젠을 착용하고 곧바로 오르기 시작했다.
▲ 설천봉에서 곤도라 탑승장까지 스키를 타고 내려가면 얼마나 스릴이 있을까.
등산로가 아닌 곳의 눈은 사람의 무릎까지 빠질 정도의 눈이었지만 등산로는 사람들의 발자국으로 반질반질해져서 아이젠 없이는 경사 길은 아주 힘들었다. 사람이 워낙 많은지라 좁은 등산로는 저절로 오르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형성되어 있었다. 벌써 올랐다가 내려가는 사람들은 아예 아이젠을 벗고 미끄럼을 타고 내려가면서 ‘영미 영미 영미’를 외치니 모두가 웃고 말았다. 올림픽의 열기가 이곳에도 후끈하다. 모든 국민이 한 마음으로 뭉칠 수 있는 시간들이 참으로 고맙다.
▲ 산 스스로 화가가 되어 그린 풍경화
▲ 잎을 떨구지 못한 신갈나무
나무들은 잔가지에 조심스럽게 눈을 얹어놓고 있었지만 상고대로 바라보기에는 조금 아쉬웠다. 그럼에도 먼 풍경과 함께 빚어내는 나무들의 자태가 참으로 멋지다. 우람한 바위에도 설핏 얼음 꽃이 피었다. 지나는 길섶에서 지난여름에 만났던 꽃 이름들을 하나씩 불러보며 '눈 속에 묻혀있지만 잘 지내지?' 하며 속으로 인사를 건넸다. 어느 날 갑자기 또 다시 찾아온다 해도 그들은 내 부름에 환한 모습으로 화답할 것이다.
▲ 향적봉에 오르는 사람들
향적봉에 오르니 수많은 사람들이 향적봉에서 내려갈 줄 모른다. 모두들 추운 날씨에 종주는 엄두를 못 내고 그냥 다시 돌아 갈 것이니 여유롭게 즐기고 있었던 것이다. 향적봉의 한 바위에 걸터 앉아 차 한 잔을 마시며 산의 겨울 모습들을 감상하고 중봉으로 향했다. 중봉까지 다녀올 참이다.
'마음따라 발길따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신시도 대각산 (0) | 2018.03.04 |
---|---|
주목나무 그리고 아니? 내 차가... (0) | 2018.02.25 |
'머물수록 매물도'에서(2) (0) | 2017.12.12 |
'머물수록 매물도' 에서 (1) (0) | 2017.12.11 |
가을정취 억새꽃 은빛물결 (0) | 2017.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