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서산
오늘 사진은 거의 역광을 받고 있다.
이곳저곳에서 붉게 타는 단풍으로 유혹하는 손길에 응하지 못하는 내 마음만 자꾸 타오르는데 맞출 수 없는 시간이 야속하기만 하다. 토요일 남편과 아이들 모두 일정이 잡혀있는 날, 홀로 가을을 만나기로 작정했다. 홀로 나서는 길은 무조건 가까운 곳만을 허락한다는 말에 충남의 오서산을 오르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산행 들머리까지 차로 1시간 10분이면 닿을 뿐 아니라 우리나라 5대 억새명산에 속하는 790m 높이의 산이었기 때문이다. 그래 가을을 알려주는 것이 어디 단풍뿐이랴.
오서산은 서해안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바다에서도 보이는 까닭으로 ‘등대산’으로 불린다고 한다. 일찍이 충남 보령 태생의 토정 이지함은 이 오서산을 일컬어 ‘기가 너무 세서 눈이 멀 것 같아 눈을 가리고 지난다.’ 고 했던 산이다. 보령을 들어서서 들머리를 찾아가는 길에서 이지함의 묘를 일러주는 안내 표시판을 지나치면서 새삼 이 산이 지닌 명성을 새겨보노라니 오늘 찾아오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부풀기 시작한다.
▲ 등산로 초입
▲ 주차장에서 바라본 오서산
오른쪽 봉우리로 올라 저 긴 능선을 걸어야 한다.
▲ 만수국아재비
꽃말은 '사랑받고싶어요'
▲ 갈림길에서 오른쪽, 시루봉 방향으로 간다. ▼
들머리로 정한 성연주차장에 9시 45분에 도착했다. 벌써 주차장은 많은 차들로 가득 차 있었다. 차에서 내리니 바람이 만만치 않게 불면서 모자를 벗겨버릴 기세다. 웬 바람? 하면서 살짝 걱정이 된다. 추울 것 같아 준비해 간 조금 더 두꺼운 겉옷으로 입고 산행을 시작했다. 마을 지나는 임도에 들어서니 아늑함이 번져온다. 주민들은 우리의 행보에는 개념치 않고 하시던 일들에 열중이시다. 이 공기 좋은 곳에 사는 마음들은 어떨까. 한 순간 부럽기 조차하니… 아기자기한 마을을 지나 갈림길에 이르러 시루봉 방향으로 접어들었다.
▲ 등산로에는 가을이 가득하였다.
▲ 까실쑥부쟁이
▲ 이곳부터 본격적인 등산이 시작된다.
드디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계단 등산로를 만나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한데 이곳부터 시루봉까지는 완전 된비알 코스였다. 근 700m를 오르는 동안 계속 이어지는 산허리를 타고 오르막 경사길에 온 힘을 쏟느라 산이 보이지 않았다. 체력이 현저하게 줄어들었음을 실감하면서 쉬기를 반복하며 천천히 올랐다.
▲ 나무의 표피가 넘 단정한데... 이름을 몰라 미안했다.
11시에 시루봉에 도착했다. 이제 조금 편안하게 능선을 따라 오르내리면서 걷는 길이기에 얼마나 안도가 되던지… 끓여온 따듯한 차 한 잔을 마시며 한참을 앉아 쉬었다. 햇살이 참 좋다. 하늘은 징하게 푸르기만 한데 먼 곳의 시야는 맑지 않으니 오늘 조망이 좋지 않을 것 같다. 몸이 조금 편안해지니 마음이 한 없이 좋아지면서 힘들다는 생각 대신 나머지 일정을 잘 해 낼 것 같은 희망에 다시 기운이 일어난다.
▲ 시루봉
임도가 끝난 시점부터 이곳까지 된비알 코스
계속 차고 오르는 등산로~~
너무 힘들어 몇 번을 쉬었는지 모른다
이제 내 체력이 예전 같지 않음을 절실히 깨달았다.
▲ 떡갈나무 잎에 무수한 구멍들이 나 있으니....
▲ 오를수록 간혹 단풍나무를 만나긴 했지만
수분이 많이 부족했을까. 나뭇잎들이 버석 말라있었다.
▲ 시루봉을 지나면서부터
능선을 따라 걷기 시작하는가 싶더니
억새를 만나고 시야가 터지며 풍경이 정말 좋았다.
▲ 참빗살나무
▲ 저 아래 주차장이 보인다.
시루봉을 벗어나 조금 더 걸으니 아, 조망이 트이기 시작한다. 완전한 능선에 오르면 좋은 풍경들이 많을 텐데 갑자기 만난 조망에 산객들은 너도나도 사진을 찍으며 길을 막고 있으나 누구 하나 나무라지 않으며 서로 사진을 찍고 찍어준다.
▲ 산부추 한 송이도 가을풍경에 취해있다.
▲ 전망 좋은 바위에 올라
▲ 내가 걸어야 할 능선
이제 억새들이 각각의 제 멋을 뽐내며 우리를 맞이하고 있다. 아직도 꼿꼿하게 허리를 곧추세우며 제 멋에 취해있는 억새가 있는가 하면, 고개를 조신하게 숙이며 거칠 것 없는 햇살에 제 몸을 부풀리고 있는 얌전한 억새들도 있었다. 알려진 것보다 군락을 이룬 곳이 넓지는 않았지만 힘들게 올라온 마음을 녹여주는 그들의 모습은 충분했다.
790m의 정상에는 여지없이 정상석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 앞에서 인증 샷을 하느라 붐비고 있다. 이 산에는 정상석이 두 곳에 있다고 했다. 하나는 보령시에 속하는 지역의 정상석과 홍성시에 속하는 정상석이 있다고 했으니 인파에 밀려 사진 찍기를 그만두고 내처 걸으려 하니 한 사람이 사진을 부탁한다. 찍어주고 나니 나를 찍어준다기에 어색하게 응하고 사진을 찍었다.
▲ 내가 걸어온 능선
▲ 철 없는 개나리
억새는 가을바람을 품고 있는 것처럼 스쳐만 지나도 몸을 살랑거린다. 멀리 보이는 홍성쪽의 조망대에는 사람들이 꽉 찼다. 조망대는 조망대 역할을 포기하고 산객들의 식탁이 되어주고 있었다. 봉긋한 바위 위에 앉아 풍경을 마음에 새기며 햇살의 비타민 영양제를 듬뿍 받은 뒤 하산을 시작했다.
▲ 패랭이꽃 한 송이가 방긋~~
하산 길은 문수골을 경유하는 쪽으로 선택했다. 산을 오르면 길이 허락하는 한, 같은 길을 걸어 되돌아오지 않는다는 내 신념 따라 택한 길이다. 한데 그 길을 택한 사람은 겨우 두 어 명 밖에 되지 않았다. 모두들 반대편으로 내려가거나 왔던 길 다시 따라 되돌아가는 경우였다. 호젓한 산길을 걷는 일에 익숙해 있던 나도 조금 망설여졌지만 선택을 후회하지 않겠다는 신념 따라 내려오니
아, 용담꽃이 나를 환영하며 낙엽더미 속에서 웃고 있지 않은가~~
▲ 나는 문수골을 경유하여 내려갈 참이다.▼
▲ 미역취
▲ 문수골을 걷기로 한 나를 환영하는 용담꽃
아, 문수골에는 억새 대신 단풍들이 막 물들고 있었으니 오늘 나는 억새와 단풍을 모두 만나는 행운을 받은 하루였다. 계속 계속 내려오는 길, 자칫 지루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오늘은 정말 마음 가벼운 하산 길이었다.
▲ 문수골의 단풍
▲ 문수골이 끝난 지점에서 만난 임도표지판
계곡 끝에서 만나는 임도는 아침에 오를 때의 갈림길까지 이어주고 다시 마을을 지나는 임도를 따라 나와 주차장에 닿았다. 5시간 동안의 산행이었다.
마을길에 서있는 두 그루의 감나무가 내가 다녀온 오서산 배경을 보듬고 나를 배웅해 주었다.
▲ 산국
▲ 내가 걸었던 오서산의 능선이 참 아름답다
▲ 갈림길
문득 아침에 올랐던 오른쪽 길을 따라 다시 산 정상에 오른다면? 하는 아련함이...
▲ 나를 배웅하는 감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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