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정말 호젓한 길이었다.
진정한 해품길이 장군봉에서부터 시작되고 있었으니 이 좋은 길을 마다하고 일찍이 내려간 사람들에 으스대고 싶었다. 바다 빛에 물들고 태양에 바래지고 바람에 다듬은 맵시로 멋을 낸 억새들의 잔잔한 춤사위가 진정 환상적인 오솔길이다. 굽어졌는가 하면 곧은길로 나서고, 때로는 낮아졌다 높은 곳으로 끌어 올리는 이들의 현란함은 이곳 해품길이 아니면 만나지 못할 길이었으니 절로절로 노래가 흥얼거려진다.
억새풀 사이에서 놀던 흑염소들이 느닷없는 침입자인 나를 피해 도망간다. 소매물도가 커졌다 작아졌다하면서 줄곧 나를 따라 나서고 있다. 풍경에 취해 있는데 남편에게서 전화가 온다. 건성으로 전화기를 들고 어디쯤이라고, 풍경이 이래 저래하다고 일러주다 돌에 걸려 넘어졌다. 모자가 벗겨질 만큼 크게 넘어 졌는데도 다친 곳은 하나도 없다. 그만큼 길이 푹신하고 좋았던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 소매물도 전망대가 보인다.
▲ 나의 독무대가 되어준 전망대
이곳에 서서 노래를 불렀다
소매물도 전망대를 끝으로 이제 다시 매물도 대항마을 쪽으로 돌아서는 길,
울창한 나무 사잇길을 한참 걷고 나니 꼬돌개가 나타난다. 이 지역은 기슭에서 물이 잘 나와 섬에서 논농사를 지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고 또 심한 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이었다고 한다. 200여 년 전 매물도 초기 정착민들은 두 해에 걸친 흉년과 괴질로 주민 모두 한꺼번에 '꼬돌아졌다'(꼬꾸라졌다의 방언)고 해 붙은 이름이란다. 꼬돌개에서 바라본 바다 풍경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얼마만큼 걷다 그 풍경을 다시 보고자 길을 다시 되돌아가 꼬돌개에 서 보았다. 지난 시절의 슬픈 이야기를 품은 풍경은 그지없이 아름답기만 하다.
▲ 울창한 동백나무와 후박나무
▲ 흑염소들이 꽁무니를 보이며 달아난다.
▲ 섬을 지키는 나목
▲ 장군봉을 다시 바라보다
▲ 산국들이 의젓하게 나를 배웅하고.....
▲ 대나무 사이길
대항마을이 보이자마자 계단식 논의 흔적을 알리는 안내판이 있다.
초기 정착민들이 피와 땀으로 일군 논으로 이제는 더 이상 농사를 짓는 사람이 없어 풍경으로 남아 이 섬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었다. 마을에 들어서서 파란 선을 따라 걷는데 폐허가 된 옛날 집들이 많이 있다. 바람을 피하기 위해 깊숙한 자리에 지은 집 지붕 아래에 마루도 있고 방문도 있으니 저곳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은 하마 이곳을 떠났을까. 아니면 시대에 맞춰 저쪽에 큼지막한 팬션을 지어 생활방식을 달리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사람도 집들도 시나브로 변하고 있지만 하늘과 바다는 변함없이 이 섬을 지키고 있는 것만 같았다.
▲ 계단식 논의 흔적
▲ 돌담과 집터만 남아있다.
▲ 풍경은 그지없이 평화롭기만 하다.
▲ 꽃이 진 수국이 바다를 향해~~
▲ 송악으로 뒤덮인 돌담
▲ 섬 생활에 가장 필요한 물 저장탱크
▲ 대항마을을 뒤돌아 보며...
▲ 대항마을과 당금마을을 이어주는 고개
대항마을을 지나 불쑥 오른 고개를 올라 바라보니 당금마을이 보인다.
당금과 대항은 이 고개를 사이에 두고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었을 것이니 모든 것이 불편했던 섬 마을 사람들의 마음이 이곳을 통해 교환 되었을 것이다. 문득 지금 저 바다에서 두 배가 하나의 그물을 끌어 모으고 있는 그런 마음이었을 것이다.
▲ 어선 두 척이 그물을 당기고 있는 그림같은 풍경
▲ 털머위도 두 어선을 응원하고 있는 것 같은데...
▲ 당금마을선착장이 보인다.
멀리 보이는 선착장의 풍만한 여인의 자태가 평화롭다.
내려가서 저 여인 옆에서 사진을 찍어야겠다고 다짐한다.
▲ 오른쪽 나란히 서 있는 전봇대따라 내려오는 길이 대항마을에서 넘어오는 길
당금마을의 집집마다, 폐교의 옥상에도 올려진
커다란 파란 물통들이 이곳이 섬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어쩜, 그물을 거의 다 당겼을까?
그들이 하는 일이 무언지 몰라서인지 더욱 궁금하였다.
▲ 이제 나란히 서서 무엇을 하는것일까.
▲ 당금마을 어느 집 사철나무도 싱싱하게 자라고...
▲ 긴 대나무로 지붕을 묶어둔 센스~~
▲ 생활민박집들의 멋진 간판
오후 들어 바람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어느새 변덕 심한 마음으로 나갈 일이 조금 걱정 되었지만 다행히 2시 배는 운항을 하는데 마지막 배 4시 30분 출항은 확실치 않다하니 매물도는 오늘 나와 친한 마음을 나눈 보답을 해 주는 것 같았다. 내 언제 다시 이곳을 찾아올까.
문득 홀로 남은 매물도가 떠나는 나를 위해 들려주는 ‘떠나가는 배’의 노래가 들려오는 듯싶다.
▲ 조형물 해품녀를 닮았나요??
▲ 나를 태우고 떠날 배가 들어왔다.
▲ 매물도의 그리움을 남겨두고....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가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 실은 저배는 야속 하리
날 바닷가에 홀로 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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