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나무의 숙명

물소리~~^ 2018. 1. 18. 22:05








날씨가 많이 풀어졌다.

그냥 그렇게 내 몸도 풀어지면서 움츠리지 않아도 되니 좋다.

활동범위가 넓어진 것이다.

아침 일찍 베란다에서 바깥 풍경 바라보는 일도 잦아졌다.

산등성에는 앞서 내린 눈들이 아직도 쌓여있는데

눈들도 제 몸피를 자꾸만 줄여가면서 묵직한 무게감으로 지면을 누르고 있다.


눈을 한 줌 들어 꼭 쥐면 물이 주르륵 흘러내린다.

, 이 차가운 물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나무들은 얼마나 발이 시릴까.

꼼짝없이 움직이지 않고 서서 시린 발을 견뎌야하는 

그 무엇이 이토록 그들을 삶으로부터 초연하게 하였을까.

어쩌면 나무들은 자신들에게 주어진 숙명을 고스란히 받아들이며

시린 발을 견뎌 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뒷산을 오르다 보면 드문드문 리본으로 멋을 부린 소나무를 만나곤 한다.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에 리본을 묶어 놓고, 번호를 부착해 놓고

곧 베어 나갈 나무임을 알리는 표시이다.

이런 나무 곁을 지나면서 나는

소설 주홍글씨의 주인공 헤스터가 가슴에 달고 있던 주홍글씨 A를 연상하곤 한다.

 

세계문학에 한창 심취해 있던 사춘기 시절,

나의 뇌리에 가장 강하게 각인된 문학소설은 나다니엘 호손의 '주홍글씨'였다.

애정이 없는 결혼생활을 하던 주인공 여인 헤스터는

외간남자인 젊은 목사와의 불륜으로 아이를 낳고

평생을 가슴에 주홍색으로 쓰인 글씨 A를 달고 다닌다는 일종의 윤리소설이다.


헤스터는 사람들이 보내는 비난의 눈길에도 굴하지 않고

부정한 행위, 간음을 뜻하는 글자 A(Adultery)를 자신의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참회의지를 묵묵히 지켜냄으로 천사를 뜻하는 A(Angel)로 스스로 승화 시켰다.

그렇게 주인공 헤스터는 자신의 굴레를 벗어나지 않고

제 자리에서 자신의 의지로  천사가 되어 날아올랐으니

불행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킨 이야기는 명작이 되어 길이 전해지고 있다.


나는 의젓하게 리본을 달고 추위를 견디는 나무를 바라보며 주홍글씨를 떠 올린다.

비록 지금은 병든 몸으로 곧 베어나갈 운명이지만 

지금까지 살아오며 숲을 위해 최선을 다했노라며

마음을 가지런히 하고 생각을 맑게 지닌 모습으로

조용히 제 몸을 승화시키고 있는 모습을 느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