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계 연도(會計年度)는 모든 사업체들의 한 해의 재무제표를 계산하는 기간이다. 보통 12월을 마감으로 하기 때문에 12월이 지난 새해 1월이 되면 지난해의 모든 업무 마감처리에 바쁜 나날을 보내곤 한다. 바쁜 1월을 보내면서 때론 힘듦의 호소도 하지만 어느 한 가지를 매듭을 짓는다는 단순한 의미를 부여하면 그리 어렵지 않게 즐거운 마음으로 임할 수 있다.
만약 일 년이라는 단위의 마침이 없이 계속 이어지는 날들이라면 얼마나 지루할까? 그 지루함에 또한 얼마나 무기력해질까하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그러기에 결산을 하여 맺어놓고 다시 시작하는 것이 단정한 매무새의 차림 같아 개인적으로는 참 좋아하는 회계연도이다.
오늘 토요일이지만 여러 일 들 중 하나, 직원들의 지난해 연차 정리를 하기 위해 자청하여 근무를 했다. 며칠째 이어오는 일을 마무리 할 심산이다. 눈도 많이 오고 추위도 대단하니 사무실에 앉아 일하는 것이 더 나은 시간일 수도 있다. 다행히 점심 무렵부터 추위가 풀리더니 눈들이 녹기 시작한다. 오후 2시 조금 넘어 내가 계획한 일이 끝나고 나니 마음은 자꾸 창밖으로 내 닫는다. 정리를 하고 공원산을 오르기 위해 밖으로 나오니 겨울 공기가 상큼하니 기분이 좋아진다.
공원에 이르는 길목의 집 처마에는 고드름이 줄 지어 달려 있다. 우리 어렸을 적에는 저 고드름도 장난감이었는데… 각자 고드름 하나씩 들고 서로 쳐서 부러지지 않는 고드름이 이기는 놀이였다. 지금 저 고드름이 그 시절에 있었다면 이처럼 단정히 남아 있지 못했을 것이다. 고드름은 자신들이 잊어짐이 서운 했을까? 눈물을 뚝뚝 떨어트리고 있으니 가지런함이 조금은 애잔하게 보인다.
며칠 강추위로 사람들도 공원에 나오는 것을 참았나 보다. 오늘은 많은 사람들이 눈 쌓인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그냥 사무실에 준비해 둔 가벼운 운동화를 신었기에 조금 걱정이 되었다. 눈 녹은 물이 신발을 적시기도 했지만 살짝 녹은 눈이 제법 미끄러웠기 때문이다. 산기슭은 눈이 많아 겨우 사람 다니는 길 정도만 발자국이 나 있었다. 참으로 깨끗한 길이다. 조심조심 올라 능선에 이르니 눈 덮인 호수가 보인다. 마치 하얀 도화지를 펼쳐 놓은 곳에 앙상한 나무를 그려 놓은 듯 호수와 나무는 서로의 배경이 되어 주고 있으니 정말 멋지다.
눈을 살짝 얹어놓고 서있는 겨울나무를 바라보노라면 아련한 추억 하나가 떠오른다. 초등학교 방학 숙제로 빠지지 않았던 풍경화 그리기는 그림에 너무나도 소질이 없던 나에게는 가장 난감한 숙제였다. 어느 해 겨울방학 그리기 숙제로 도화지에 덩그마니 눈 맞은 큰 나무 하나만을 그렸었다. 그걸 본 우리 오빠가 이건 풍경화가 아닌 정물화라고 놀리는 바람에 엉엉 울었지만 별 수 없이 숙제물로 제출을 했는데 아, 글쎄 선생님은 내 그림을 교실 뒤 게시판에 붙여 놓으셨던 것이다. 얼마나 좋은지 집에 와서 마구 자랑을 하던 철부지적 추억은 언제나 나를 행복하게 한다. 눈 오는 날의 나무는 그래서 더욱 예쁘다.
▲ 앉아서 미끄럼 타고 내려온 자국
산길은 눈이 많아 푹신하기도 했지만 양지쪽은 질척했다. 남겨진 발자국들은 눈 위에서는 미끄러울까봐 조심하고, 질척거린 눈에서는 젖지 않으려 조심하는 발자국임이 역력히 보인다. 눈은 사람들 마음까지 찍어 내고 있으니 더욱 조신하게 걸어야겠다고 다짐하는데 내리막길은 나를 빤히 바라보며 어떡할 거냐고 묻고 있다. 나의 대답은~~ 미끄럼 타는 것이다. 쪼그리고 앉아 발에 힘을 주니 어쩜~~ 쭉쭉 잘도 내려가지 않는가!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온다. 누구 보는 사람이 없으니 신나게 미끄럼타고 내려오니 얼마나 좋은지… 하하 정말 재밌다.
복잡했던 머리가 개운해진다. 내 마음을 밝게 해준 눈길에 고맙다며 일어서는데 청미래덩굴의 빨간 열매들이 숨어서 나를 보고 있었는지 깔깔거리며 아는 체 한다. 겨울산의 일등 멋쟁이~ 반갑구나! 너희들 사진 찍어줄게 모른 척 해줄 거지? 으름장 놓는 나를 햇살이 눈 위에 인증 샷을 하고 말았다. 꼼짝없이 내 마음을 들켜버린 신나는 어느 겨울날 오후였다.
▲ 인증 샷(shot)
('인증 숏'이 맞는 표기라는데 어감이 어색해서인지 '샷'으로 많이 사용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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