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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떨켜가 없는 참나무는…

물소리~~^ 2017. 12. 29. 22:22








   아침 일찍부터 동동거리며 출근준비까지 마치고 난 후의 2~30분의 짧은 자투리 시간은 나의 금쪽같은 시간이다. 신문 한 면을 펼쳐보기도, 차 한 잔을 들고 풍경을 바라보기도 하며 안온함을 즐기는 시간인 것이다. 오늘은 더욱 겨울날씨답게 가라앉아있다. 차분함과 고즈넉함 속으로 파고드는 회한~ , 지난 일 년이 갑자기 아쉬워진다. 붙잡고 싶다. 거실도 주방도 모두 불을 끄고 창 앞에 섰다. 오디오에서는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이 흐른다. 우연일까. 이 음악의 주제는 신의 섭리, 순환이라고 하니 지금 시절에 어쩌면 가장 적절한 음악이 아닐는지


앞으로의 새날에 대한 기대보다는 지난날들을 떨쳐 보내야 하는 아쉬움이 더 크게 일렁이는 지금의 내 마음은 무엇일까. 지금의 안온함을 온통 내 것으로 만들고 싶다. 창밖으로 보이는 뒷산 나무들의 실루엣이 우뚝우뚝하다. 문득 지난 일요일에 만난 상수리나무가 생각난다.


한겨울인 요즈음의 모든 나무들은 잎을 떨어트리고 나목으로 서서 내년을 위한 양분을 비축하고 있는 터, 도토리열매를 맺는 참나무들은 잎을 떨어트리지 못하고 그냥 서있는 것이다. 과학적으로는 참나무에는 떨켜층이 없어서 나뭇잎을 떨어뜨리는 힘이 없어서라고 한다. 떨켜층이 생겨나는 까닭은 나무들이 추운 겨울을 지내기 위한 영양분을 비축하기 위해 잎으로 가는 양분의 맥을 막아버리는 수단이라고 하였다. 떨켜를 만들지 못하는 참나무의 나뭇잎은 봄에 새 잎이 나오면 그때서야 밀려 떨어지는 것이란다.


사람들은 이 나무를 바라보며 떠나야 할 때, 떠나 보내야 할 때, 결정을 못 내리고 망설이는 마음을 곧잘 비유하며 아쉬움을 나타내곤 한다. 헌데 나는 좀 다른 생각이었다. 참나무는 지난 세월 속에 남겨진 떨쳐 버리기엔 소중한 그 무엇을 보듬고 있는 것이 아닐까. 텅 빈 겨울 산을 지키며 잎이 없는 나무를 스치는 바람의 허전한 외로움을 달래주는 유일한 친구가 아닐까. 남들이 다 가지고 있는 떨켜를 갖지 못해 누렇게 변색된 나뭇잎일망정 남이 하지 못하는 일을 해 내고 있음으로 혼자 비유 했었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이 생각들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아픔을 겪고 난 후의 변화일 것이다. 물론 살아오며 만났던 소중한 모든 것까지 비워낼 필요는 없겠지만, 가슴과 머리를 가득 채운 좋지 않은 기억이라면 과감히 버려야한다는 생각이다. 비운 자리에 새롭게 비축된 영양분을 거름삼아 더욱 튼튼한 날들을 채워 나갈 수 있을 거란 믿음이다.


문득 닥친 지독한 어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마음 안에 갈구하는 어떤 간절함이 있을 때, 그 간절함을 호소할 수 있는 그 무엇의 대상을 만나게 되면 나는 무엇을 이루게 해 주소서가 아닌 지금 저를 살펴봐 주세요.라고 호소한다. 내가 하는 짓에 따라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의 결과를 내려달라는 마음이다. 이 또한 얼마나 거만한 마음이겠느냐마는 그렇게 마음을 뱉어내고는 후다닥 도망치기에 급급한 것이 나의 진심이다.


그러기에 혹시 모르게 닥쳐올 그 간절함의 결과를 담아내려면 지금 순간 가슴 싸하게 저며 오는 이루지 못한 지난 일 년의 회한들을 미련 없이 떨어 내야할 것 같다. 겨울 산을 스치는 바람이 외로울망정 섭리를 거스르며 참나무 혼자 별나게 살아감이 더욱 큰 외로움으로 남아 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버려야할 것을 버리지 못한 욕심이 내재되어 있어 어느 순간 나에게서 표독스러움이 보인다면 얼마나 슬플까.


누가 뭐라 한들 참나무는 여전히 누런 잎을 달고 한평생의 겨울을 살아갈 것이다. 절대 변하지 않을 그들의 일상이지만 하나도 같지 않은 잎으로 겨울을 나고 있다. 다만 나 혼자 그들의 모습을 이렇게 저렇게 내 뜻에 따라 달리 바라보는 변덕스러움을 지녔을 뿐이다. 한 해를 보내는 시점에 서서 참나무의 떨어지지 않는 나뭇잎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었으니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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