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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맘의 글방

나만의 봄빛을 품은 봄동

물소리~~^ 2018. 2. 13. 08:55






   일요일 아침, 올림픽경기 중계를 보다보니 점심때가 가까워졌다. 아침을 간단히 먹었기에 점심을 든든히 먹어야하는데 마땅한 찬이 없어 어쩔까 서성이다 무심코 동네 마트를 찾았다. 야채코너를 도는데 그만 내 눈을 꽉 붙잡는 것이 있었다. 어쩜, 봄동 이었다. 속 모습을 전혀 감추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네 활개를 쫙 펴고 방정맞게 자리 차지하고 있지만 야들야들하게 싱싱한 모습에 그만 군침이 돌았다. 겉절이를 하려고 냉큼 집어 들었다


유난히 추운 겨울 찬바람으로 옷깃을 여미게 하는 날씨인데도 봄을 알려주는 존재처럼 반갑다. 이른 봄에 노란 빛을 품고 나오는 봄동을 바라보면 내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잔잔한 설렘이 함께 솟구친다. 봄동을 사가지고 와서 가장 바깥쪽의 줄기부터 하나씩 떼어나가면서 마지막에 내 손에 남겨진 그 연한 연둣빛 노랑 한 잎을 손에 들고 그 빛이 주는 느낌을 음미하노라니 하늘을 날을 듯했던 그 기분이 슬며시 나를 뒤 덮는다


5학년 겨울방학 때였다. 나는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학교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신작로를 따라 이어진 작은 농수로에는 겨울이라 물은 전혀 없이 지난여름 무성했던 풀들이 누렇게 시들은 채 어지럽게 들어선 모습을 보며 천천히 걷는데 무언가가 눈에 띄었다. 무어지? 그걸 찬찬히 바라보던 나는 그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아주 연한 노란빛 털실이 내 주먹보다 훨씬 크게 둥그렇게 감긴 채 떨어져 있었던 것이다. 어머나!! 얼른 수로에 뛰어내려 그것을 집어든 순간 나는 뛸 듯이 기뻤다. 세상에 이렇게 예쁜 노란색의 털실이 흠 잡을 데 하나 없는 온전한 모습으로 그곳에 떨어져 있다니나는 행여 누가 볼세라 얼른 집어 들고 뛰듯이 집에 와 얼른 작은방으로 들어갔다


그 당시 어머니들은 그 누구 할 것 없이 삼삼오오 모여앉아 털실로 옷을 짜곤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아이들을 제외한 동네 여자들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털실로 옷을 뜨며 겨울을 보낸 것 같은 기억이 생생하다. 손을 재빠르게 움직이며 따듯한 털실 옷을 만드는 모습이 하도 신기하여 나도 해 보고 싶다고 끼어들기라도 하면 대바늘 두 개와 아주 쓸모없는 실 몇 가닥을 주면서 이것가지고 놀아라.’ 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행여 색깔 고운 실이라도 더 얻을까하며 옆에 앉아 있다가 골라내는 부실한 실을 집어 들고 홀쳐매며 길이를 이어 나가곤 했다.


길이가 30cm 넘는 것은 거의 없을 정도의 조각실 이었지만 우리는 그 실을 잇고, 잇고 또 이으며 한 뭉치의 실타래를 만들어 놓고 털실 짜기 흉내 내기에 여념이 없었다. 고작 직사각형 모양의 판 하나를 만들고 풀고 짜고 또 풀고 하며 고운 빛깔과 온전한 길이의 털실을 갖고 싶어 했던 마음은 이 세상 그 어느 것에도 견줄 수 없었다. 그런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있던 나에게 이음새 하나 없고 노란색 병아리를 닮은 빛깔마저 고운 탐스런 실이 굴러들어 왔으니 그 내 마음을 어찌 표현하리오.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좋아했다.


초록색을 옆에 끼고 노랗게 물이 든 봄동의 여린 잎빛을 연둣빛노랑이라고 나는 말하곤 한다. 그 작은 잎의 생김새가 앙증맞게 귀엽기도 했지만 스스로 배어나는 그 고운 빛에 나는 아마도 털실이 가져다 준 그 표현 할 수 없는 고왔던 감정을 그대로 대입하며 내 봄빛으로 저장하고 있나보다. 내가 나의 봄빛을 연둣빛노랑이라 자신 있게 말 할 수 있음은 내 의식 속에 깊게 각인된 체험에 의해 채색되어진 나만의 고유한 빛일 것이다. 그 고유의 빛은 적어도 나에게는 꿈을 이룬 현실의 찬란한 빛이었다.


남의 것이었던 낯선 털실은 고운 빛으로 나에게, 내 것으로 익숙해지면서 내 의식 깊은 곳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30cm도 안 되는 실들을 이어가면서 온전한 것들에 대한 꿈을 이어갔던 탓일까. 그 날의 그 흥분은 어쩌면 내 꿈과 현실이 일치되는 찰나였는지도 모르겠다. 살아가면서 그런 순간을 만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작은 꿈을 이어가다 보면 온전한 꿈을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은 지금도 늘 마음 저변에 자리하고 있다. 그 한 순간의 경이로움은 연둣빛노랑을 대 할 때 마다 알 수 없는 마음의 동동거림을 느끼게 한다.


오늘 사온 봄동의 여린 노란빛을 동동거리는 마음으로 지그시 깨물어 본다. 그 야무진 빛을 먹으면서 간절한 꿈속으로 현실에 있는 나를 끌어들이며, 그 고운 빛이 나를 투과하는 순간 일렁이는 잔잔한 마음을 마음껏 느껴 보았다. 이제 곧 우리 뒷산에서 제일 먼저 봄을 알리는 연둣빛노랑의 생강나무 꽃이 필 날이 가까워졌다. , 뭉실한 부드러움과 함께 전해오는 그 빛을 기다린다. 아무리 작은 꿈일지언정 계속 이어간다면 언젠가는 꼭 이루어진다는 희망의 빛으로 연둣빛 노랑을 늘 기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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