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정령치 마애불상군을 돌아보고 내려오려는 찰나 마애불 전망대 난간에서 커다란 잣송이를 보았다. 어머나~ 잣? 이네! 반가워하며 줍기 위해 손을 대니 끈적거렸다. 깜짝 놀라 얼른 제자리에 놓고서 상한 잣이어서 끈적거릴까? 하며 의심을 품었었다. 나로서는 온전한 잣송이를 처음 만났기 때문이다. 또한 깊은 산속에서 아무 것이나 줍는다는 행위에 조금 두려움이 앞서기도 하였던 것이다. 그냥 내려오려다가 어쩌면 딱 하나가 그곳에 얹혀 있었다는 사실에 자꾸만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
우연한 잣송이가 아니라 주변에 많은 잣나무의 열매일 뿐이라는 단순함을 앞세우니 못 가져올 이유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끈적거림은 잣송이의 당연한 것으로 소나무의 송진과 같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서 그 끈적거림에 무서움을 느꼈던 내가 우습기도 하였다. 어쨌든 끈적거림으로 손에 오래 들고 있을 수 없어 우의주머니에 넣고 내려왔던 것이다.
곱게 벗겨진 잣 알맹이만을 사서 먹곤 하였기에 처음 본 온전한 잣송이가 신기하기만 했다. 언젠가 tv에서 잣 따는 일이 극한직업이라고 소개해 주는 장면을 보면서 참 마음 졸이기도 하였다. 산중에서 자라는 잣나무는 15~20년을 자라고서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는데 왜 잣은 꼭대기에만 달려 있을까.
잣은 조금은 희소가치와 비싼 가격으로 외국산 인줄 알고 있었는데 우리나라 특산이라고 하여 더욱 놀라웠다. 명나라 때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는 신라송자(新羅松子)라 칭하기도 하였다니 우리나라 특산물임에는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잣나무를 한국송 또는 한국오엽송이라고 하는 이름에서도 우리나라의 특산물임이 드러나는데도 그동안 한 번도 우리의 특산물이라고까지는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 잣송이
(형광등 불빛 아래서 사진을 찍어서인지 원래의 잣송이와 다른 색상이 되었다)
▲ 깃 같은 껍질
아무렇게 만든 것이 아니라 일정한 패턴으로 야무지게 사이마다 끼어 있었다.
▲ 겉껍질을 떼어내니 참 단정하고 예쁘다
집에 돌아 와 저녁 늦게 잣의 내부를 세세히 보고 싶은 마음에 하나하나 조심스럽게 해부?를 시작했다. 어쩜 이리도 섬세하게 과실(果室)을 꾸미며 살아가고 있을까. 겉껍질을 떼어내니 단정한 매무새의 옷차림이 나왔다. 마치 자신을 숨기기 위해 거친 옷으로 변장을 하고 있었다고 알려 주는 것 같았다.
다시 그 속의 열매를 하나씩 빼려고 하였으나 쉽게 빠지지 않는 것이다. 어느 정도 힘을 주어 수실을 헐겁게 한 후, 뾰족한 무엇으로 꺼내야만 방을 빠져 나오는 열매~~ 또 한 겹의 단단한 옷?을 입고 있었다.
빽빽한 수실마다에서 빠져 나오는 알맹이들의 數에 또 한 번 놀랐다. 상한 것 하나 없이 모두 실한 열매였다. 참으로 옹골진 마음이 되어 흐뭇해서 알맹이 수를 세어보니 모두 194개였다. 참 많이도 나왔다.
열매도 열매였지만 알맹이를 빼낸 껍질의 아름다움에 또 한 번 감탄을 했다. 정말 예쁜 집이었던 것이다. 색감도 안정적이며 안온할 뿐 아니라 부드러우니 열매들은 그 속에서 얼마나 평화스럽게 살찌우며 잘 살았을까. 참으로 신기하기만 하였다.
아직 마지막으로 입혀진 단단한 껍질을 벗기지 못하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다. 알맹이보다도 잣의 내부를 세세하게 알게 된 것이 뿌듯했다. 알맹이 빠진 송이도 부엌 창가에 장식물로 세워 두었다. 열매를 키우기 위한 잣송이의 섬세함과 단단함, 온유한 빛~ 모두는 잣이 살아가는 방법이었을까! 나무로 살아가며 좋은 향기까지 우리에게 이로움을 주고 있는 잣나무의 모성이 깊기만 하다. 무엇 하나에도 깊은 정성을 다하지 못하는 나에게 자꾸 힘을 실어주는 잣송이를 오래도록 바라볼 참이다.
♠♠♠♠♠
일요일에 마음잡고 잣을 까기 시작했다.
아무리 해도 자꾸 빠져나가면서 껍질이 벗겨지지 않는 것이다.
망치, 펜치 다 동원 해 보니 그 중 으뜸은 망치였다.
하지만 그것도 힘을 잘 주어야지
부족하면 껍질이 열리지 않고
지나치면 으깨져 버리곤 하니
자잘한 잣 하나에 들이는 정성이 보통이 아니었다.
내가 그동안 사먹은 잣알에는 얼마만큼의 수고로움이 묻어있을까.
으깨진 잣을 주워 먹으면서 다 까놓고 보니
또 얇은 막이 입혀져 있었다.
들은 풍월대로 살짝 볶아 껍질을 벗겨내니 깔끔한 잣이 탄생!!
몇 알 되지 않은 잣!
한 입에 털어 넣어 먹어버려도 될 그럴 양이지만
잣을 헤쳐 보며 많은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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