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단상(短想)

산책길에서의 상념

물소리~~^ 2017. 6. 15. 15:17






   저녁식사 준비를 하지 않는 날! 퇴근 후의 저녁시간이 여유롭다. 마음이 여유로우니 나의 즐거움을 챙겨보고 싶다. 서점에 다녀올까? 했지만 오랜만에 저녁산책길을 나서보자 하고 나섰다. 양파 덕분에 아침산책으로 바꾼 지 25일여만이다.


그새 길어진 낮 시간 끝에 어스름 내리기 시작하는 시간의 산책길이 참 좋다. 일상의 번거로움이 차단된 그지없이 평화로운 풍경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서산으로 막 기우는 해가 반갑다며 산책길 위에 나의 긴 그림자를 내려주며 동행하라한다.




그동안 산책길이 참 많이 변한 것 같다. 계절 따라 꽃들은 피었다 졌고, 나무 잎들은 더욱 무성히 자라 있었다. 그런데도 철부지 바람은 초가을처럼 쌀쌀하게 불고 있어 웬일인가 싶은데 가로등 아래에 매달린 스피커에서는 한 가수가 차라리 하얀 겨울에 떠나요~~’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 그러고 보니 바람은 노래 따라 제 몸의 온도를 낮추고 있었나 보다.



▲ 띠

호숫가에서는 띠들이 하얗게 몸을 부풀리며 바람결 따라 멋스럽게 머리를 쓸어 넘기고 있다. 지금이야 고상하게 라는 이름으로 불리지만 우리 어렸을 적에는 삐비라는 이름으로 부르며 여린 순을 따서 먹기도 했다. 비릿한 달콤함을 전해주며 입안에서 부드럽게 씹히던 그 맛을 요즈음 아이들은 알기나할까?



▲ 개머루

으름덩굴 사이에서 개머루가 이제 마악 열매를 맺으려하는데 으름들은 보이지 않는다. 으름도 머루도 정겨움 가득하다. , 뽕나무집 뽕나무들이 수난을 당하고 있었네~~ 오가는 사람들이 오디를 따느라고 가지를 당기곤 했는지 한 가지가 애처롭게 찢어져 있는데 땅에는 미처 줍지 못한 오디들이 발길에 밟힌 채 널려 있다.



▲무성히 자란 蓮

어머나~ 들도 큰 잎을 씩씩하게 펼쳐 나가고 있다. 이제 7월이 되면 정갈한 하얀 빛, 고운 분홍빛의 연꽃들이 피어나겠지. 푸르다 못해 검은 빛이 감도는 연잎들의 기세가 정말 의기양양하다.



▲ 굴피나무


▲까치수영(염)



까치수염(), 고삼도, 산딸기들도 계절을 거스르지 아니 하고 제 몫을 해내고 있으니 산책길의 풍요로움이 마음에 가득 차오른다. 이 계절을 이루는 모든 것들에 극존칭으로 존대하고 싶다.



산책길에는 많은 사람들이 나와 자전거를 타고 휙휙 스치는가 하면, 숨을 헉헉거리며 달리기도 하고, 삼삼오오 끼리끼리 모여 걸으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부부인 듯싶은 분들이 내 앞서 나란히 걸어가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이야기의 내용은 들리지 않지만 목소리가 커졌다 작아졌다하니 무언가를 열심히 토론하고 있는 것 같다. 반대편에서 걸어오던 한 남자와 마주친, 나란히 걷던 부부의 남편이 반갑게 악수를 나누며 인사하는 동안 부인은 그냥 씽씽 걸어간다. 아마도 부인과는 모르는 사이인가 보다. 이야기를 나누는 두 사람 옆에 얼추 가까이 다가서는 내 귀에 들리는 말은 마누라와 함께 운동 나왔다고 하는 소리였다.


순간 마누라라는 말이 귀에 거슬렸다. 마누라는 자기 부인을 타인에게 낮추어 부르는 말로 알고 있지만 어감이 퍽 좋지 않다. 나부터도, 아마 대부분의 여자들은 이 말을 싫어할 것이다. 하지만 막연하게 싫어만 할 단어는 아니다.


어감이 좋지 않은 '마누라' 라는 단어는 투박한 사투리 같지만 엄연한 표준어이며 원래 마노라 에서 비롯한 말로 이는 극존칭어라고 하니 아연실색 할 수밖에 없다. 마노라는 조선시대 왕이나 왕후, 세자. 세자빈 등 남녀 구분하지 않고 가장 높이는 칭호로 사용된 말이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조선 후기에 들어와 신분제도가 무너지면서 늙은 부인이나 아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그 후 점차 아내를 허물없이 부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얘기할 때 아내를 낮춰 일컫는 말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는 어찌하여 지극히 높은 사람을 일컫는 말에 난색을 표하며 싫어하는 마음이 되었을까. 진실을 몰랐기 때문이라고 말할까? 아니면 진실을 알려고 노력이나 했을까그에는 구구한 세월 탓도 있겠지만 내 생각으로는 순전한 어감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조금 전 나는 이 계절을 이루는 아름다운 것들에 극존칭어로 존대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면 계절의 모든 것들은 내가 의미도 모른 채 불러주는 극존칭어를 싫어할까? 아니야. 우리보다 훨씬 너그러운 마음으로 살아가는 존재들이기에 무턱대고 좋아하지는 않을지라도 은근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것이라고 나 혼자 우쭐거려본다.



산책길이 거의 끝날 무렵에 만나는 음악분수가 오늘은 물줄기를 올리지 않고 있다. 고장 났나? 했는데 커다란 현수막이 음악분수를 대신하여 입장을 알리고 있다.

, 정말 이 가뭄~ 얼른 끝나야 하는데.’ 이 어려움 앞에 극진한 마음을 앞세워 소망하면 비님도 감동으로 답을 해 줄까? 산책길의 여러 상념들이 버무러지면서 내 발걸음을 이끌고 있었다.








'단상(短想)'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붓이 되어 삶을 그리다.  (0) 2017.06.23
주인으로 살아가라고....  (0) 2017.06.17
위기를 기회로!!  (0) 2017.06.12
뻐꾸기 울음소리에.....  (0) 2017.06.05
작은 창을 통해  (0) 2017.04.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