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디언의 한 부족은 5월을 ‘들꽃이 시드는 달’이라 하였다고한다. 어쩌면 달력상 봄이 끝나는 달에 붙인 딱 어울리는 명칭이 아닐 런지… 들꽃 피우는 임무를 마친 봄은 서둘러 자리를 양보하려하고, 나무 꽃을 피워야하는 여름은 마악 달리려고 출발선 상에 서있는 참 아름다운 계절이다.
내가 적을 두고 있는 산악회에서 6월에 서산 팔봉산을 간다는 공지를 받았다. 따라가고 싶은데 날짜가 업무상 바쁜 시기라 망설이고 있는데 남편이 먼저 참 좋은 산이라며 한가한 지금에 다녀오자고 한다. 토요일 오전 9시 40분에 집을 나섰다.
우리나라에는 우뚝 솟은 봉우리 개수로 불리는 산들이 많다. 팔봉산은 이름처럼 8개의 봉우리가 이어진 산이다. 높이 327m의 강원도 홍천의 팔봉산이 유명하지만, 오늘 우리가 가려는 서산의 팔봉산도 362m의 높이로 그에 못지않은 유명한 산이라고 한다.
두 팔봉산은 높이로 서로 키 재기 하듯 비슷한 높이의 낮은 산이지만 8개의 봉우리를 넘나들며 만나는 풍광의 차별화를 지니고 산객들을 부른다고 한다. 서산팔봉산의 유명세에는 긴 역사도 한 몫 한다. 조선 광해군 때 편찬된 서산의 읍지인 《호산록》에 "서산 서쪽 바닷가에 있는 산으로 정상의 여덟 봉우리가 마치 바둑돌처럼 줄지어 있다"는 기록이 있다고 하니 오늘 덤으로 역사를 더듬어보는 시간이 될 것 같아 기분이 좋아진다.
▲ 양길리주차장
2시간을 달려 산행 들머리인 양길리 주차장에 도착, 11시 40분부터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 주차장에서 바라본 1봉과 가운데 2봉, 오른쪽 3봉
주변의 감자밭에는 감자꽃들이 한창이었다
6월 17일 부터 감자축제가 열린다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 등산로 입구에는 농산물을 판매하는 노점들이 있었다.
▲ 샘터가 있었는데 음용부적합하다는 안내문
주차장에서 1봉을 오르는 안부까지는 완만하면서도 작은 숨이 차는 알맞은 굽이의 숲길이었다.
울창한 소나무와 잘 가꾸어 놓은 듯싶은 홍단풍의 여린 잎들이 마치 가을 단풍 길을 보여 주는 듯 차분하다.
흙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계단을 따라 오르며 조금 힘들까하는 마음이 앞서는 순간 제1봉과 2, 3봉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난 1봉의 몸통부분이 눈에 꽉 차니 전체적인 모습을 볼 수 없었지만 바위들의 우람함에 탄성이 절로 난다. 이곳에서 1봉까지는 올랐다 다시 내려와야 한다. 온통 바위투성이의 제1봉 정상까지 4발로 기다시피 올랐다. 해발 210m의 낮은 봉우리지만 감히 함부로 낮다고 말 할 수 없는 경외스러움을 절로 챙겨보았다.
에고~~ 1봉 정상 표시석은 왜 그리도 앙증맞을까. 우람한 바위에 비교되라고 일부러 그렇게 작게 만들어 세운 것 같으니 기획자의 익살스러움이 웃음을 자아낸다. 아마도 정상석에 집착하지 말고 풍광을 바라보라는 의도일 것이라고도 생각되어지니 또 다른 배려의 마음도 느껴진다. 앉기도 서기도 옹색스러워 배낭으로 인증샷?을 하는데 한 사람이 서로 찍어주기를 청한다.
▲ 이 사이를 지나야 1봉 정상에 오를 수 있다.
▲ 1봉 꼭대기에 앉아 바라본 풍경, 갯벌과 바다 그리고 올망조망한 집들이 참으로 다정하다
허리 불편함으로 높이 오르지 못하는 남편은 1봉을 내려와 원점 회귀하였다. 바위틈 사이길이 위험하다고 그냥 내려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배낭을 내려놓고 바위틈을 지나는 모험을 택했다. 숨이 차게 오르는 헐떡거림, 아슬아슬한 낭떠러지의 아찔함을 이겨내고 꼭대기에 올라 앉아 풍경을 바라보노라면 참으로 알 수 없는 편안함과 성취감이 밀려온다. 어쩌면 이런 느낌으로 몸과 마음을 힐링 하고파 산을 찾는지도 모르겠다.
▲1봉에서 바라 본 2봉과 정상 3봉
2봉을 오르기 위해 철 계단을 오르는 사람들이 아슬하게 보인다.
▲ 2봉을 오르기 위해 지나야하는 밧줄과 철계단
그리고 '사람주나무'
▲ 2봉을 오르기 위한 철 계단 중간의 전망대에서 바라본 팔봉산 제1봉 의 전체 모습이다.
안내문처럼 감투나 노적을 쌓아올린 모습은 잘 모르겠지만, 바위 하나하나의 모습에서
하트모양, 짐승이나 물고기 닮은 바위들을 찾아 볼 수 있다.
▲ 우럭바위
▲ 거북바위
아마도 팔봉산의 매력은 1봉에서 3봉까지의 길 인 것 같다. 군데 군데 전망대에서의 풍경이 좋고 등산로 곳곳에서 의미 있는 모습으로 길손을 반기는 바위들의 이야기에 절로 재밌는 마음이 되니 힘겨움은 절로 떨어져 나가는 것 같다.
▲ 앞의 남자코끼리와 뒤의 여자 코끼리 ^^
제2봉은 아래 봉우리에서 올려 볼 때보다 막상 오르니 시야가 좁아져 밋밋한 봉우리라 생각하는 찰라 이 밋밋함을 기막히게 반전시키는 바위가 있었으니 코끼리 바위였다. 가까이에서는 코끼리 모습을 사진에 닮으려니 구도가 맞지 않을 만큼의 우람한 바위였다.
▲ 2봉에서 3봉을 바라봄
▼ 3봉을 향하여
▲ 누군가가 바위에 물개의 얼굴을 새겨 놓은듯~~(^+^)
▲ 헬기장
▲ 소나무는 힘들겠지만 내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나니~~
▲ 오늘은 유난히 단정하게 잘 자라는 노간주나무가 자주 눈에 띈다.
▲ 용굴을 통과하지 않는 우회 철 계단
제2봉에서 정상인 제3봉까지 오르는 길은 제법 가파르지만 팔봉산에서 가장 걸을만한 재밌는 길이었다. 바위로 이뤄진 산이다 보니 등산로 곳곳이 철 계단으로 이어지거나 좁은 바위 사이를 아슬아슬하게 지나야 한다. 거대한 바위 아래에 추락주의라는 위험표시가 있었고, 좁은 돌 틈 사이의 길에 머리조심 하라는 표시가 있었음에도 나도 모르게 머리를 찧고 말았다. 세상에!! 온 몸이 멍~~ 하는 울림이 한동안 지속되어 놀랐다. 이 놀람은 앞으로 계속 이어지는 굴들을 통과하지 못하고 우회로를 선택하는 계기가 되었다.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을 선택하는 순간에서 머뭇거리지 말라는 아주 강한 지시였던 것이다.
험준한 길을 만나면 우회로를 따라가는 사람, 일부러 거친 길로 올라 아슬아슬한 정상의 바위 끝에 서는 사람, 중간에 하산길 따라 돌아가는 사람, 내리막이 끝나자마자 시작되는 오르막을 달리듯 가는 사람, 이 모두는 등산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다. 이 가운데 내 모습은 어떤 모습일지 진정한 마음으로 찾아보며 반추해보는 시간도 가질 수 있는 등산이 아닐까.
▲ 철 계단의 보폭이 높거나 좁지 않아 참 편안했다.
▲ 바위와 초록의 氣 겨루기
서로의 강함이 위험했지만 바위는 편안함으로 초록은 상쾌함으로 서로를 지켜주고 있었다.
▲ 한 아저씨가 아이스크림을 팔고 계셨다.
이곳까지 어떻게 지고 올라오셨을까요? 하고 물으니
'쎄 빠지게 지고 왔지요" 하며 시원스레 웃으며
정상석 오르는 길을 친절하게 알려 주신다.
▲ 정상에 오르는 철 계단들!!
▲ 해발 362m 팔봉산 정상이다. 바위 꼭대기에 앉아보니 내가 마치 신선이라도 된 듯싶다.
저 아래의 마을 풍경들이 참으로 편안하다. 살아가는 모습이 저토록 다감하고 순한 모습이라면 한 번 멋지게 살아보고 싶다는 의지도 생겨나니 산은 높이로만 위엄을 보이는 것이 아니다. 낮지만 가는 골목마다에 기묘한 암릉들의 경치를 펼쳐놓고 오르는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고자하는 정성은 그 어느 높은 산 못지않게 깊은 뜻을 품고 있는 것이다.
이제 정상을 넘어 4봉을 향해 가는 길~
4봉부터는 조금 여유로운 길이라고 말하는데 나로서는 더욱 오늘 산행의 의미를 갖게 해준 시간이었다. 힘이들지 않으니 주위를 살펴볼 수 있는 여유로움으로 자잘한 풍경들과 눈 맞춤 하였다. 팔봉산을 찾아와 8번을 오르고 8번을 내려오는 일을 반복하면서 우리 삶의 여정 또한 그렇게 오르내리막 길을 걸어야한다는 것, 진부하지만 명백한 현실임을 다시 음미해 보았던 것이다. 이는 또한 내 자신의 마음이기도 할 것이니 등산길에서 늘 챙겨보는 마음일 것이다. 이러저러한 생각들에 발길도 잠시 한 눈을 팔았었나 보다.
8봉에서 내려오는 마지막 길에서 길을 잘못 선택하는 바람에 한참을 돌아와야 했으니…
▲ 4봉
▲ 4봉에서 3봉을 바라보다
▲ 4봉 바위틈에서 자라는 나무
▲ 4봉에서 8봉을 바라봄
▲ 5봉
▲ 아무리 낮아도 가파른 오름을 올라야 하는 길도 있었다.
▲ 6봉
▲ 정상인 3봉의 다른 이름은 어깨봉이라고 하였다.
그 뜻의 이해를 못했는데 멀리 바라보니 그 이름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었다.
▲ 7봉
▲ 8봉
▲ 8봉에서 다시 한 번 바라봄.
▲ 선바위
▲ 애기나리 군락지를 발견하고 기뻐한 마음은 잠깐~~
길을 잘못 택했다는 사실을 깨닫고서는...
갑자기 밀려드는 두려움에 주차장에 도착하는 순간까지
사진찍는 행위조차 잊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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