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각시붓꽃
토요일이지만 월말 일처리가 급하게 되어 사무실에 나왔다. 얼추 일의 윤곽을 잡아놓고 이제 풀어나가기만 하는 과정까지 오니 홀가분한 마음이 들면서 이 화창한 봄날이 문득 아깝다 여겨지니 마음이 바빠진다. 오후 2시 35분, 가까운 월명산에 다녀오자고 차림을 서둘렀다. 사무실에 여벌의 등산복 차림을 챙겨두고 있기에 마음만 먹으면 쉬이 다녀올 수 있다.
산 초입에 들어서니 나무들의 연초록 잎들이 안겨주는 부드러움, 청량함에 마음이 둥실 떠오른다. 한참을 서서 그들을 바라본 후, 걸음을 떼기 시작했다. 오늘은 그 아무것도 사진을 찍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들은 늘 자신들의 변함없는 모습일 뿐인데 나는 언제나 호들갑스럽게 마음을 방방 뛰어 올리며 반가움을 전하는 내 행위가 문득 공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늘은 그저 걸으면서 그들의 표정을 살펴보며 말없이 음미해 보고 싶다는 빈약하기 짝이 없는 내 변이지만 어쨌든 그리 작정하고 나니 보이는 풍경들에 조금 덜 미안하기도 하다.
따사로운 햇살과 간들간들 부는 바람을 듬뿍 받으며 피어나는 잎들이 참으로 건강하다. 나무와 풀들은 어느새 꽃을 지우고 열매자리를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그늘 진 곳의 나무 잎은 아직도 제 힘을 싣지 못하고 이럴까 저럴까 싶은 마음으로 망설이는 듯싶으니 조금 안쓰럽기도 하지만 그들은 결코 제 때를 비켜가지는 않을 것이다.
산등성을 오르내리기도 하고 능선을 걷기도하면서 눈에 들어오는 풍경들에 마음 흡족해해 하면서 풍요로움을 만끽하였다. 그런데, 그런데 갑자기 나를 기어이 쪼그려 앉히고 만 그 무엇이 나타났으니!!!
각시붓꽃! 이었다. 세상에나! 어찌 이리도 티 없이 깨끗한 모습으로 피어났을까. 이제 막 걸음마를 배우기시작한 아가들의 귀여운 몸짓처럼 아직 땅위에서 불쑥 일어서지 못하고 그렇게 땅에 딱 붙어 세상구경을 하고 있었다.
사진 찍지 않겠다고 작정한 마음은 이미 줄행랑을 쳐 버렸다. 그 자리에 서서 발걸음을 뗄 때마다 나타나는 각시붓꽃에 연신 환호성을 지르고 말았다. 오늘 만나는 그 무엇도 사진을 찍지 않고 바라만 보겠다는 어쭙잖은 마음마저 한 순간에 던져버리는 나의 변심을 편하게 해주려는 배려인 듯, 각시붓꽃은 거친 산등성 나무 덤불 속, 또는 잡초 사이에서 방긋방긋 웃고 있었다. 저들의 맑은 웃음을 담고 있는 참마음을 뉘라서 알까.
누군가로 하여금 스스로의 결심을 허물도록 할 수 있는 그윽한 그 무엇을 지닐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고운 보랏빛 작은 꽃 한 송이의 힘은 참으로 위대하였다.
꽃이 피기 전, 꽃봉오리의 생김이 붓 모양을 닮아 붓꽃이다.
붓꽃 중에서 아주 작고 귀엽게 생겨 각시붓꽃이라고 부른다.
'각시'의 사전적 의미는 '갓 결혼한 새색시'이지만.
'작은'이라는 뜻도,
'아름다운' 또는 '여리고 수줍은'이라는 뜻을 가지기도 하니
각시붓꽃은 '새색시처럼 아름답고 키 작은 붓꽃'이라는 뜻일 것이다.
각시붓꽃의 전설
어떤 선녀가 하늘나라에서 잘못을 범해 인간 세상에 내려오게 되었습니다.
스무 살이 되면 하늘로 올라가게 되어 있었죠.
인간세상의 가난한 집 딸로 태어난 선녀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마저 앓아누워 갖은 고생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어머니를 치료하기위해 하늘로 올라갈 때 가지고 가야 할 여의주를
강물 속 이무기에게 주고 신비의 약초와 바꾸어 어머니의 병을 낫게 하였습니다.
스무 살이 가까워지자,
어머니에게 그 사실을 고백하고 선녀는 그만 죽고 말았습니다.
딸을 뒷산에 묻고 울고 있는데 갑자기 회오리바람이 일어나며
선녀가 나타나 큰 절을 올리고 하늘나라로 올라가는 게 아니겠어요?
선녀의 무덤은 없어지고 그 자리에는 예쁜 꽃이 피었는데 그 꽃이 각시붓꽃이랍니다.
각시붓꽃의 꽃말은 '기쁜 소식'입니다
참으로 행복한 시간을 선물 받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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