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모임이 별로 없다. 서울생활을 접고 남편 따라 내려 온지 어언 30년이 되었지만 일을 가지고 있으니 주민들과도 가끔씩만 만나는 생활이기도 했고, 이곳은 남편의 고향일 뿐 나로서는 온전한 객지였기에 참 많이도 서먹했고 정을 붙이지 못한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내가 안 돼 보였는지 남편은 이곳 지방 국립대학원의 평생교육원 여성지도자과정에 입학을 시켜 주었고 그렇게 일 년을 다 마치고 수료를 했다. 30대에서 60대 까지 다양한 연령층으로 한 반을 이루었던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결성이 된 모임은 근 17년을 이어오고 있었던 나의 가장 큰 모임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이어온 모임에서 참 많은 경험, 여행을 하면서 좋은 사람들과 인연을 맺어왔는데 이제 그 모임을 해체하기로 했다. 우선 나부터 근 1년 반을 회비만 내고 모임 참석을 못했을 뿐만 아니라 이러저러한 이유들로 자꾸 빠져 나가는 사람들이 많으니 이제 그만 하자는 의견일치를 보았던 것이다. 하여 동안 비축했던 경비로 마지막 여행을 다녀오자는 의견을 모았고 제주도에 2박 3일 일정으로 여행을 다녀오게 되었다. 40명이 넘은 인원이었는데 이제 11명이 남았고 여행 참가자는 9명이었다.
참으로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그렇게 젊고 생기발랄했던 사람들의 얼굴에서 이제 세월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니 감회가 새롭다. 여럿이 단체 여행을 하다보면 풍경이나 그 어떤 역사적 이야기보다는 서로간의 수다가 더 즐거운 법이다. 먹고 수다 떨고 웃으며 그렇게 지난 2박 3일! 나로서는 아픔 후 처음 나서는 단체장거리여행이었기에 남다른 느낌임을 숨길 수 없었다.
제주에는 그간 여러 번 다녀왔다. 하여 그동안 가보지 못한 곳을 가 봤으면 하는 바람으로 우리 나름대로 일정을 정해보긴 했지만 우선 렌트카 기사분의 일정에 따르기로 했다. 그런데 우연의 일치인지 코스 대부분이 우리의 바람대로 되었으니 참 좋다.
우도에 다녀왔고, 올레길 5코스의 일부 큰엉해안길의 해안 절벽을 걸을 때는 아찔하기도 했지만 한없이 머물고 싶은 마음으로 정말 행복했다. 드넓은 유채꽃밭에서 꽃보다 더 진한 노랑 웃음으로 유채꽃밭을 흥겹게 했고, 노루 농원에서 노루들도 만났다. 기사분이 운영하는 한라봉을 선물 받아 마음껏 먹어도 보았고 숙소 언니의 우리들을 위한 아낌없는 베풀음은 본받아야할 마음임을 깊이 간직하기도 했다. 쇠소깍이라는 다소 생소한 이름의 관광지에도 다녀왔다.
일행 중 제일 큰 언니는 고사리에 탐을 내 이른 새벽 홀로 고사리 꺾으러 나갔다 길을 잃기도 해 소동을 빚기도 했다. 한 분은 신분증을 가져오지 않으셔서 출발과 도착 공항에서 절차를 밟느라 고생하기도 했지만 무사히 마칠 수 있어 정말 다행이었다. 여럿이 함께 하니 더욱 챙겨주고 나누는 마음들이 참 좋았다.
가는 길 골목골목에 예쁜 꽃들도 만났다. 해안에서 해국의 어린 싹을 보았다. 가을이면 바다를 향해 보랏빛 그리움을 품은 꽃을 피울 것이다. 등대풀 꽃도 보았다. 제주도에서는 ‘개불낭’이라고 부르는 괴불나무 꽃도 보았다. 갯장구라는 이름의 꽃을 보았고, 잘 자란 후박나무를 원 없이 바라보았고 사나운 바람에도 끄떡없는 검은 돌담을 수없이 보았다. 돌담은 서로 간에 알맞은 구멍을 만들고 있기에 바람에 무너지지 않는다는 무언의 진리를 보여주고 있었다.
여행의 시간을 접어야 할 마지막 날은 비가 많이 내렸다. 공항가기 전에 성산 일출봉과 섭지코지를 다녀올 계획이었는데 비로인하여 차에서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해야했기에 아쉬움이 남았지만 이는 우리를 다시 한 번 초대하려는 제주도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짧은 여행에서 만난 사람간의 아름다운 마음과 신비한 자연의 경이로움의 선물을 받았다. 많은 선물의 무게에 몸이 짓눌렸을까. 하루 이틀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은 시간을 보냈다. 며칠 사이 우리집 군자란은 꽃대를 시원스럽게 쑤욱 올렸고, 우리 뒷산은 나무들의 연초록잎이 더욱 무성하여 빈틈이 없어 보인다. 정말 참 좋은 계절이다.
▲ 큰엉해안경승지
▲ 우도봉 오르는 길
▲ 우도 서빈백사장
이국적인 해변풍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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