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도 이제 하루를 남겨놓고 있고, 일 년도 겨우 한 달만을 남겨놓고 있다. 세월이 빠르다고 말 할 수 없었던 올 한 해였다. 얼른 얼른 지나 내가 온전한 몸이 되기를 바랐던 까닭이다. 하지만 더 깊숙한 마음속에서는 내가 해야 할 일들을 하지 못하고 또 일 년을 보냈다는 허무함이 가득하니 무엇에도 종잡을 수 없는 마음이다. 그래도 내 생활은 이어지고 있으니 무너져서는 아니 될 일이다.
저녁식사 후 하는 산책시간도 이젠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날씨가 추워지니 매일하던 에어로빅 줌마선수? 들도 실내로 옮겼는지 활기찬 음악소리를 들을 수 없다. 걷는 사람들의 숫자도 줄어들었지만 나는 완전 중무장을 하고 걷기를 계속한다. 한 시간을 걷고 되돌아오면 공원 내 한쪽에 일렬로 늘어선 11개의 운동기구들도 온전한 내 차지가 된다. 기구에 한 번씩 올라 주어진 동작을 따라 움직이다 보면 걷는 동안 한 동작으로만 굳었던 몸이 풀리는 느낌이 들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네 번째의 기구에 올라앉아 숨을 고르는데 가로등 불빛은 운동기구와 내 모습을 그림자로 내려주고 있다. 어쩜 기구의 양 손잡이가 마치 십자가처럼 보이고 나는 그 앞에 앉아 기도하는 모습일까? 하마 이 기구는 聖人이 되어 내 마음을 온전히 알아채고 있을 거란 생각에 머문다. 표현 하지 못하고 있는 온갖 애증의 내 마음까지도 알고 있을 것이니 갑자기 친근한 마음이 일렁인다.
기구는 나를 앉혀놓고 말한다. 자신은 이곳에 앉은 사람들의 육체적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라고 한다. 활력을 주어 새롭게 도전하는 힘을 실어주고 싶단다. 자신으로 인하여 숨이 가빠지고 그에 산소를 더 필요로 하는 가시적인 조건은 새롭게 도전하는 힘을 숨기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어디 나 뿐이랴. 이곳에 앉았다 간 모든 사람들, 남녀노소, 장삼이사, 필부필녀 모두를 다 투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 기구는 지금 순간의 나만을 특별하게 대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 모두 끌어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 하나를 바라보고 있을 것이다. 지금 현재 삶의 형태는 모두 다르지만 궁극에 이르는 삶의 방향은 똑같음이라고. 그 방향을 찾아가는 걸음이 씩씩하려면 늘 새롭게 도전하는 마음을 지녀야한다고 조근 조근 들려주는 그림자는 지금 한 순간 나의 일상 속 聖人처럼 위대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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