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상문

나의 봄빛, 연둣빛노랑이 소리로 들려올 때

물소리~~^ 2017. 3. 22. 15:33








창밖의 햇살이 마냥 따사로우니 아, 봄이구나 하는 반가움에 문을 열고 봄을 맞이하려하면 어김없이 매서운 바람이 훼방을 놓으며 나를 다시 문 안으로 들여보내고 만다. 봄의 경치를 즐기고 싶어 하는 내 마음의 賞春은 안달이 난다. 상춘곡이 아닌 賞春文 이라도 읽어야 적성이 풀릴 것인가.


책꽂이에서 윤대녕의 많은 별들이 한곳으로 흘러갔다라는 긴 제목의 책을 꺼내 들었다. 작가의 중 . 단편 소설이 수록된 책으로 그 중 상춘곡을 다시 읽어보려는 심산이다. 상춘곡(賞春曲)이라하면 사람들은 고교시절에 배웠던, 시험에 단골메뉴로 등장하는 그래서 무지하게 외워야했던, ‘홍진에 뭇친 분내 이내 생애 엇더한고로 시작하는 정극인의 상춘곡을 먼저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책꽂이에서 뽑아든 윤대녕의 상춘곡은 사뭇 다르다. 첫사랑이야기라 하면 너무 단순할까? 묘하게 조선시대 정극인의 고향이 정읍 태인 인데 윤대녕 작가는 고창 선운사로 배경으로 상춘곡을 풀어가고 있다. 우연한 지역의 일체감은 긴 세월의 두께 따라 자연스레 변하는 마음을 우리로 하여금 외우는 것이 아닌, 마음을 적셔주는 연서로 읽고 싶도록 하는 상춘곡이다.


벚꽃이 피기를 기다리다 문득 당신께 편지 쓸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오래전부터 나는 당신께 한번쯤 소리 나는 대로 편지글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막걸리 먹고 취한 사내의 육자배기 가락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내게 무슨 깊은 한이 있어 그런 소리가 나오겠습니까?’ 로 시작하는 글을 봄이면 한 번씩 읽고 싶은 마음이 드는 까닭은 작가의 퍽이나 다감하면서도 섬세한 문장과 표현력으로 봄의 동질감을 이끌어 주기 때문일 것이다.


나에게 봄빛은 연둣빛 노랑이다. 그 빛을 처음 발견한 것은 생강나무 꽃에서였다. 이른 봄 이른 아침 뒷산 오솔길에서 호랑지빠귀새의 울음소리를 벗 삼아 발맘발맘 걷다 문득 만나는 생강나무의 여린 꽃빛은 나의 숨을 멎게 할 만큼 고왔다. 연약하면서도 부드럽고, 제 안에 연두 잎 빛을 품고 피어 있는 생강나무의 꽃, 그 빛을 나는 연둣빛노랑이라고 명명해 주었고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그들을 조우하는 나만의 기쁨을 아낌없이 누리곤 했다.


그러다 윤대녕의 상춘곡에서 나만의 봄빛 연둣빛노랑에 소리를 담아주는 문장을 만나고 얼마나 놀라웠는지 모른다.

나는 문득 잠든 내 얼굴에 감겨드는 이상한 빛의 속삭임을 듣고 있었지요. 그것은 아주 은은하고 부드러운 생기가 느껴지는 빛이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으니 머리맡 문살 창호지에 바늘 끝 같은 것이 타닥타닥 튀는 소리 같았습니다, 오래 그 소리에 귀를 던져두고 있다가 나는 슬그머니 눈을 뜨고 보았지요. 그 순간 나는 얼마나 놀랐던지요. 그것이 문살 창호지를 투과해 들어오는 연둣빛 봄햇살 소리였다는 걸 어떻게 알았겠습니까.” -p 26 -


읽을 때 마다 내 감성의 곡선이 꿈틀거리는 문장이다. 또한 작가는 편지를 마치는 마지막 문장으로 당신은 여인이니 부디 어여쁘시기 바랍니다.” 라며 끝을 맺으니 마치 누군가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고 있다는 느낌이 내 안으로 번지며 나를 착한 마음으로 이끌어 준다. 어쩌면 이제는 홍진에 뭇친 분내보다도 이 문장을 외우며 살아갈지도 모르겠다.


이 중편 소설을 읽다보면 작가의 시적인 감성 따라 너울대는 내 마음도 좋지만, 책 속 선운사의 동백도 마애불도 도솔암도 선하게 떠오르며 마음으로 따라 나서면서 나의 지난 행적을 떠올려 보면서 아는 척하는 재미도 좋다. 만세루 기둥의 오랜 흔적에서 벚꽃을 떠올리는 작가의 감정이입은 클라이맥스가 아닐지이 봄 동백이 아닌, 춘백이 흐드러질 때 선운사를 다시 한 번 찾아가 작가의 마음 흔적을 따라 나의 봄빛 연둣빛노랑을 더욱 진하게 새겨 두고 싶다.






'감상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몬테로소의 분홍벽  (0) 2017.06.20
아주가 앞의 내 꽃자리  (0) 2017.04.28
로맨틱 콘서트 ‘봄날의 꿈’  (0) 2017.03.19
산상무쟁처 월명암  (0) 2017.03.15
한 사진을 바라보며.....  (0) 2017.0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