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주어진 모든 것을 사랑으로!!

감상문

한 사진을 바라보며.....

물소리~~^ 2017. 2. 16. 15:26







▲ 공원의 조각상



  통원치료가 잦았던 2015년 한 중반, 아마도 연꽃이 피어날 즈음이었을 것이다. 병원치료를 마치고 근방의 공원을 찾았다. 허방을 딛는 듯싶은 걸음걸이였지만 홍련 가득한 호수를 만나면 힘이 날까 싶기도 했고, 아픔으로 계절을 건너뛰어야만 했던 아쉬움이 나를 그곳으로 향하게 했던 것 같았다.


연꽃을 보고 돌아 나오는데 공원 한 곳에서 조각상 하나를 만났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그만 우뚝 서고 말았다. 뒤틀린 몸의 등 모습에서 마치 내가 지독히도 독한 약으로 인한 순간적 고통을 참기위해 몸부림친 내 모습이 저런 모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그냥 한참을 바라보다 무심코 사진을 찍고 돌아섰다. 지금도 그 조각상의 명제가 무엇인지, 누구의 작품인지 모른다.


며칠 전 늦은 밤, 이런저런 생각에 잠이 오지 않아 폰의 사진을 뒤적이는데 이 사진이 눈에 띄었던 것이다. 한참 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다나이드라는 단어가 떠올랐고 그에 이끌려 나오는 많은 이야기들에 그만 잠을 송두리째 잊으며 책을 뒤적였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나이드, 그리고 조각가 로뎅과 카미유 클로델의 얽힌 이야기였다.


다나이드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다나오스왕의 ‘50명의 딸들을 일컫는 말이다. 다나오스왕은 아이깁토스와 쌍둥이 형제인데 아이깁토스에게는 아들이 50명 있었다. 아버지가 죽자 두 쌍둥이 형제는 왕위 다툼을 벌이는데 아이깁토스는 자신의 아들 50명과 다나오스의 딸 50명을 결혼시켜 왕위를 차지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를 눈치 챈 다나오스는 딸들을 데리고 그리스의 아르고스로 도망가 그곳의 왕이 된다.


50명의 딸을 가진 다나오스왕은 어느 날 신탁(神託 : 신이 사람을 매개자로 하여 자신의 뜻을 나타내는 일)을 받게 되는데 그 내용은 자신이 사위에게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그런데 아이깁토스의 아들들은 그곳까지 쫓아와 끈질기게 결혼을 요구한다. 다나오스는 시달림 끝에 결혼을 허락하지만 사위에게 살해당한다는 신탁을 실현 시킬 수 없도록 딸들에게 결혼 첫날밤에 남편들을 죽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 중 맏딸이 아버지의 명령을 거역하고 남편 린케우스를 살려준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린케우스는 다나오스와 자신의 아내를 제외한 49명의 다나이드를 죽이고 아르고스의 왕이 된다.


결국 지옥으로 간 49명의 다나이드는 남편을 죽인 벌로 지옥에서 결코 채워지지 않는 밑빠진 항아리에 물을 퍼 나르는 형벌을 받게 되었고 그로인해 고통 받고 있는 그녀들의 모습을 형상화 한 것이 다나이드 조각상인 것이다.



다나이드(La Danaide, /로댕, 1885)


작품 속 다나이드는 바닥에 얼굴을 묻고 표정을 볼 수 없지만 풍성하면서도 부드러운 머릿결과 허리와 등의 굴곡에서 뜻 모를 여인의 비극과 슬픔을 유추해 볼 수 있음은 개인적인 시각적 나름일 것이다. 이처럼 다나이드 작품에는 상상을 초월하는 허무와 슬픔과 절망이 담겨있지만 역설적으로 비극이 있어 깊은 울림이 있는 것 같다.


다나이드 신화 속 이야기에 끌려 들어간 현실의 한 여인이 있었으니 그녀는 카미유 클로델로댕이 자신의 제자이면서 연인인 카미유 클로델을 모델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비운의 여인 다나이드를 형상화한 작품이 위 사진, 다나이드다. 절망에 빠진 다나이드의 뒷모습은 곧 카미유 클로델이기도 하다. 로댕으로부터 완전한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그렇지 못했기 때문이다.



▲ 카미유 클로델(1864 ~ 1943, 프랑스 조각가)


카미유 클로델은 로댕의 아내가 되어 예술의 동반자가 되길 바랐다. 하지만 로댕은 20여 년간 함께 살았던 오래된 연인 마리 로즈와의 관계를 청산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로댕은 카미유 클로델의 천재성을 인정하면서도 시기하는 마음이 있어 애매모호한 입장을 취하면서 로댕 자신의 연인인 로즈를 버리지 못하자 카미유 클로델은 결국 로댕을 떠나고 만다.


1889년 이후 작가로서 카미유 클로델의 활약이 활발해지자 로댕이 경쟁심을 갖게 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사랑과 갈등의 곡선을 그렸고, 1898년 완전히 결별하기에 이른다. 로댕의 작품활동 방해와 전시회의 연속 실패로 인하여 클로델은 심한 우울증에 빠진다. 그녀는 가족들에 의해 결국 정신병원으로 보내져 30년 동안 폐인처럼 살다가 비극적인 삶을 마쳤다. 카미유 클로델에 대한 이야기는 음악으로도, 책으로도, 영화로도 만들어져 길이 회자되고 있다.


도저히 신들의 이름을 다 외우기 어려운 신화들은 그림과 이야기로 전해오고 있다. 신화 속 이야기들은 어쩌면 우리들 삶의 이야기일 수 있고, 인류의 역사를 새겨볼 수 있는 거울이기도 할 것이다. 카미유 클로델의 비극이 조각상 다나이드와 닿아있음에 전율이 느껴진다. 공원의 조각상 여인에게서 다나이드를 연상한 나의 의식이 조금은 두렵지만 나의 삶도 누군가에게 비춰질 것이라는 희미한 책임의식도 함께 느껴지니 등을 곱게 펴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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